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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육각형의 섬을 여행하는 낭만

2010-03-31


어떤 간섭이나 방해도 없이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꿈꾸는 소설 속 주인공. 그녀는 여섯 개의 구역으로 나눠지는 섬을 하루에 한 조각씩 구경하는 계획을 세운다. 전시 <기하학 섬으로의 여행> 은 상상력이 넘치는 소설 속 주인공의 시점을 따라 6인의 조각 작가와 작품을 살펴보는 낭만적인 여행이다.

에디터 │ 이지영( jylee@jungle.co.kr)
자료제공 │ 갤러리 이앙

Prologue
「“저는 표면이 없는 평면을 발견했습니다.” 조소와 너털웃음 속에서 헌터가 커다란 흰 종이를 탁자 위로 들어 올렸어. 이 친구, 휴대용 칼로 중앙에서 약간 비껴난 종이 표면에 3 인치 정도 길이로 쓱 금을 그었어. 그리고 종이를 여러 차례 빠르고 복잡하게 접어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들어 올리더래. 그러자 종이의 한끝이 틈새로 빨려 들어가는 듯싶더니 그대로 사라지더라는 게 아닌가. 헌터가 대중들에게 빈손을 보이며 말했다네. “보셨죠? 표면이 없는 평면입니다.” 장내는 일순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네. 그리고 그 고요는 갈수록 더 굳어 갔어.」- 소설 <기하학 섬으로의 여행> 도입부


전시 <기하학 섬으로의 여행> 에는 이정헌, 이일, 임성훈, 임수진, 조영철, 박안식 6 인의 조형작가와 더불어 전시기획자이자 소설작가로 김남은이 참여한다. 이들은 조각 창작스튜디오인 ‘다각형발전소’의 멤버이거나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김남은은 이번 전시에 6 인의 조형작가들이 참여한다는 사실에 기인하여 육각형 형태의 상상의 섬을 배경으로 소설화시켜 이를 적극적으로 개입시켰다. 따라서 전시는 6인의 조형작가 및 조형 작업들간에 보이지 않는 관계와 필연성에 주목한 소설 작품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육각형 형태의 상상의 섬을 배경으로 각각의 작품들을 여행기 형식에서 풀어나가는 단편소설은 개별 작품들이 상호간의 유기적인 내러티브를 구성하도록 돕고, 필연적 관계의 형상들이 완벽히 드러날 수 있게 하는 하나의 장치로 작용한다. 이처럼 고유의 전시 형식을 벗어난 시도는 문학의 구조 속에서 ‘글’로 인하여 작품들이 그 의미와 맥락을 자가 변용시키며 하나의 퍼즐조각처럼 들어맞는 듯한 효과를 내고, 해석과 수용에 있어 새로운 관점의 의미 생성과 맥락 찾기를 기대하는 까닭이다.

프롤로그 도입 부분은 이언 매큐언(Ian McEwan)의 「입체기하학」에서 발췌한 내용으로 시작된다. 특히 ‘표면없는 평면’에 대한 언급을 통해 소설 전개에 대한 복선을 암시한다. 프롤로그가 상사의 시점에서 서술되었다면 본문은 부하직원이자 주인공인 ‘나’의 1 인칭 시점에서 여행기 형식을 차용하여 각 작가의 작품들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정헌의 ‘신부와 소녀’, 이일의 ‘가면’, 임성훈의 ‘호수’, 임수진의 ‘구름’, 조영철의 ‘동물’, 박안식의 ‘순환’ 등 각 작가의 작품 이미지를 토대로 각각의 에피소드들을 엮은 것이 하나의 픽션을 완성한 다. 마지막 에피소드에서는 주인공이 읽는 존 버거(J.P. Berger) 소설의 문장을 활용하여 각 작품들의 필연적 관계를 설명하는 결정적 단서로 제시하고 있다. 에필로그는 다시 상사의 시점으로 이동되어 결국 주인공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내용과 함께 도입부의「입체기하학」내용을 연결하여 인용함으로써 그녀의 행적에 대한 의문의 여지를 남기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작가는 “모든 관계와 현상에는 필연성이 존재한다고 믿으며, 그 보이지 않는 필연성에 주목하는 것이 흥미롭다.”는 말로 이번 전시의 색다른 시도를 설명하고 있다. 이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과 관계나 현상들이 어떤 필연성을 담보로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필연성이라는 명제는 의식 속에서 부유하는 사유나 관념의 언어화 과정에서 재정립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온 것. 예술 활동이 하나의 동일한 체계 안에서 발생하는 현상과 경험적 공유로 인한 상호작용을 전제로 한다면, 무의식의 영역에서 발현되는 형상을 언어로 전환함으로써 개별성은 보편성을 보장받고 보편성은 필연성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게 된다는 의미다. 의식의 바다에 존재하는 상상의 섬에서 발견되는 필연적 관계의 형상들, 거기서 드러나는 의미와 맥락효과는 해석과 수용의 새로운 지평을 열며 선험적 인식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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