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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남녀의 미래: No More Daughters & Heroes’ 展

2010-10-01


고양아람누리 아람미술관에서 ‘남녀의 미래: No More Daughters & Heroes’ 展이 오는 10월 7일부터 12월 12일까지 약 2달에 걸쳐 개최된다. 이 전시는 아람미술관과 독일에서 활동중인 독립 큐레이터가 공동 기획한 전시로서, 현대사회에 끊임없이 강요되는 성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에 대한 미래적 대안을 모색해보는 자리이다.

에디터 | 이영진(yjlee@jungle.co.kr)
자료제공 | 고양아람누리 아람미술관

급진적인 현대화로 의식은 개방되었지만, 여전히 우리는 출생하는 순간부터 딸과 아들로 구분되고, 아버지와 어머니로 성장한다. 이렇게 상징적인 이름들에 의존하여 정체성을 결정해야 할지, 아니면 단지 이름은 허상에 불과하다고 믿어야 하는지 각자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결단의 순간은 반복되기 마련. 우리는 신비스러운 다른 어떤 영역보다도 언제나 성에 대한 호기심에 사로잡혀 있다. 이것은 성이 은폐되어 있거나, 또는 완전하게 해명되지 않아서이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성은 우리의 삶에 언제나 끊임없이 반복되는 밀도 있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까닭에, 성에 대해 두려워하면서도 끊임없이 관찰하며, 말하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이번 전시는 ‘성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결론을 관람객들에게 섣불리 강요하려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작금을 살아가는 우리들로 하여금 다시 한 번 ‘성’이라는 단어 속에 은폐된 진실에 주목시킬 뿐이다. 권력과 담론을 통해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성의 의미는 남녀의 차이와 동일성마저도 모두 넘어선, 지극히 평화로운 소통 속에서 일깨워질 것이다.


2004년부터 2008년까지 베를린의 아트넷 매거진(artnet Magazin)의 디렉터로 활동한 토마스 엘러(Thomas Eller)가 선보이는 작품은 ‘Dopplepass(give-and-go)’다. 제목 또한 축구경기에서 두 명의 선수가 상대편의 움직임을 피해 빠르게 움직이면서 공을 주고받는 전략적 기술을 가리키는 축구용어이다. 이 용어로 운동선수와 예술가 사이에 존재하지 않는 공통점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내는데, 이 작품에서 ‘정체성’이란 단어는 인격의 확고한 동일성과 독자적 성격을 뜻하지 않고, 오히려 개별자들 간의 이름과 역할이 공유되고 교환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유동적이며 해체적인 차이로 전환된다. 하룬 파로키(Harun Farocki)의 작품 ‘이미지(Ein Bild)’는 1983년 성인용 잡지인 <플레이보이> 지의 촬영장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담고 있다. 이 작품은 성인용 잡지가 겉으로 보여주는 에로틱한 이미지가 만들어지기까지의 뒷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에로스와 감성은 사라지고 잡지를 읽는 독자가 원하는 기표적인 이미지만 생산된다.
러시아의 유리 라이더만(Yuri Leiderman)은 세계냉전시대라는 특수한 환경을 경험한 작가이니만큼 정치적, 사회적 이슈를 작업을 통해 민감하게 표현한다. 이번에 선보이는 퍼포먼스 또한 이처럼 문맥의 선후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독특한 시나리오를 선보임으로써 권력의 이데올로기를 다소 풍자적인 행위로 해체하고 전복시키고자 한다. 캐나다 출신의 가수인 피치스(Peaches)의 작품 ‘Fan Base’는 터널 혹은 자궁처럼 생긴 구조물 안에 콘서트 중에 팬들로부터 받은 속옷, 성적 기구, 의류, 인형 등을 설치한 것이다. 이 구조물 뒷편에 설치된 영상에는 각기 다른 장소에서 공연하며 팬들과 노래하는 장면이 담겨 있는데, 이는 작가와 관객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미묘한 소통의 관계를 보여준다.


정정엽은 1980년대 말 ‘우리 봇물을 트자: 여성해방시와 그림의 만남’이란 전시로 한국 여성미술의 새물결을 연 주인공들 중의 한 명이다. 여성성에 대한 관심사는 현재까지도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이번 작업은 일반시민들을 대상으로 ‘남자의 조건, 여자의 조건’에 대하여 인터뷰를 하고 이 인터뷰가 담긴 남녀의 음성을 40여개의 스피커가 설치된 2개의 조형물을 통해 몇초의 간격을 두고 상대쪽을 향해 지속적으로 울리도록 한 것이다. 인터뷰 내용은 남자가 여자를, 여자가 남자를 생각하는 하나의 기준점이 있음을 보여준다. 김지혜는 ‘집’이라는 건축물을 통해 남녀가 공존하는 ‘가정’의 보편적인 진실이 무엇인지를 고찰하고자 한다. 집에 대한 우리의 환상은 우리가 외면하고자 하는 현실의 어두운 측면을 감추고 있다. 그리고 이 불편한 진실을 파헤치려는 그녀의 이러한 시도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모습을 다시금 반추하기 위한 예비적 단계이다. 왜곡된 인체조각을 통해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인간소외와 소통부재, 가치간과 정체성의 혼돈, 그로부터 야기되는 집단과 개인의 트라우마를 표현하는 것에 관심을 갖는 김성래의 작품에서는 여성의 순결을 상징하는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검게 얼룩지게 했다. 서서히 시간이 흐름에 따라 먹의 물결을 수용하며 검게 얼룩져 간다. 겉보기에 서로를 거부하는 듯한 흑백의 대립, 즉 남녀의 대립은 서로를 향해 자연스레 소통하면서, 서로의 존재 의미를 긍정하고 있다. 송호준의 ‘조립된 남근’은 남성의 발기된 팔루스를 재현한다. 팔루스는 인간의 오랜 역사를 통해 인간의 절대적 권력을 대변하는 상징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작가는 과도한 상징 속에서 오히려 팔루스에게 아무런 의미 없는 기표만을 부여했다는 점을 발견한다. 그래서 그가 재현한 팔루스는 허물어지기 쉬운 레고로 조립되어 있다. 그의 두 번째 작품인 ‘오픈소스인공위성운동’은 국가와 군에 의해 주도되는 우주프로그램에 대항하여 개별자들이 행하는 소규모의 인공위성프로젝트이다. 여기에서도 인공위성이 상징하는 팔루스는 개별자들의 해체된 힘에 의해 대체되고, 팔루스에 부여된 상징적 힘은 다만 팔루스 주변에 기생하는 표피적인 환상일 뿐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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