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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AES+F's eye, unique generation

2011-05-17


20세기의 현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AES+F의 가상 세계는 시험관에서 수정한 생명체처럼 번식해, 과거의 관념을 넘어 전혀 새로운 것으로 변이한다. 이 색다른 세계에서의 전쟁은 게임처럼 느껴지고, 감옥 속의 고문은 현대적 발키리의 가학적 행위와 같다. 과학 기술과 물질 또한 이 인공의 환경과 테크닉을 독특한 시대의 환상으로 변형시킨다. <최후의 반란 last riot> (2005-2007) 속 낙원의 시간에는 얼어붙어 과거와 미래가 나란히 존재하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인간성을 초월해 점차 천사에 가까운 존재가 된다. 이 세계에서는 어떠한 과격하고 에로틱한 상상도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이다. 새로운 서사시의 영웅들은 한 가지 자아만을 가지게 되며 그것은 마지막 폭동의 저항세력인 셈인데, <최후의 반란> 에서는 모두가 서로와 싸우고, 또 자기들끼리 싸우고 있다. 그들이 연출한 화면에서 가해자와 피해자, 남성과 여성 사이의 차이점은 사라지고 이데올로기, 역사, 도덕의 종말만이 서서히 다가온다.

글 | 월간 퍼블릭아트 정일주 편집팀장
사진제공 | AES+F


결성되고 20년이 넘도록 파워풀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러시아 아티스트 콜렉티브 AES+F. 국적을 넘어 세계적으로 이름을 높이고 있는 이 미술그룹은, 1987년 타티아나 아르자마소바(Tatiana Arzamasova), 레프 에브조비치(Lev Evzovitch), 에브게니 스뱌츠키(Evegeny Svyatsky)가 의기투합해 모인 후 1995년 블라디미르 프리드케스(Vladimir Fridkes)가 프로젝트 수행을 위해 합류하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사진과 영상을 주로 선보이는 이들은 공상과학이나 게임 그리고 비디오의 패션을 참고해 가공된 장면을 완성한다. 디지털 작업을 통해 AES+F는 영역을 확장하고 가설에 대한 질문을 과장되게 드러내면서 전쟁과 아름다움을 읊고 폭력을 명시적으로 탐구한다.


현대사회에서 폭력은 공포이며 동시에 욕구의 만족이다. 영화와 미술, 그리고 TV 등 다양한 매체에 등장하는 폭력은 무력의 속성을 감추고 교묘한 형태로 위장돼 나타나는데, AES+F는 오히려 몽둥이를 든 인물들을 정면으로 배치함으로써 잠재된 폭력들을 징벌하는 노력을 기울인다. 현실에 대한 단면적인 표상을 그들은 몽환적인 이미지로 꾸미되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하는 것이다.

이러한 그들의 화법은 종종 ‘컬트’로 구분되기도 하지만, 2007년 베니스 비엔날레를 통해 AES+F는 대중적 인지도 또한 획득했다. 영국관의 트레이시 에민, 프랑스관의 소피 칼과 함께 2007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화제가 되었던 러시아 관의 주인공이 바로 AES+F였다. 그들은 매끈한 미소년, 소녀들이 폭력적인 행위를 일삼는 영상을 바그너의 웅장한 음악과 매치시킴으로써 묘한 미적 쾌감을 선사했고, 대단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 때 선보인 작품이 바로 ‘Last Riot‘으로, 기술과 물질이 만들어낸 가상세계를 빌미로 현대사회에 대한 비판과 우려를 드러낸 영상은 충격을 선사했다. 바로크 회화적 도상에 놀이처럼 가뿐해진 폭력을 구성함으로써 현실의 심각성을 시각화한 것이다.


볼쇼이 발레학교의 학생들을 모델로 디지털 사진 수천 장을 찍은 후 각 장면을 연결해 만든 19분 25초짜리의 영상은 가상의 세계에 현실을 교묘히 오버랩 시키며 보는 이를 몰입하게 만들었다. 어린 소년과 소녀들이 서로 총검을 겨누며 위협하는 화면은 팽팽한 긴장감과 동시에 비현실적이고 모호하거나 또는 에로틱한 상상들을 유도하고, 상처의 흔적이나 폐허의 잔해가 생략된 풍경은 폭력에 대한 색다른 감상을 자아냈다.


AES+F의 또 다른 특기는 동양과 서양을 융합시키고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차용해 유토피아를 완성한다는 것이다. 공상과 환상을 넘나드는 그들의 주제는 의상, 무대, 소품 그리고 화면의 분위기를 통해서도 드러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등장인물에 정치적인 컨텍스트를 명확하게 묘사함으로써 스토리를 탄탄하게 다진다. 이런 일련의 장면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상황을 해석하고 각 인물들의 관계를 설정하게 만드는데, 작가는 마치 과거 사회주의적 사실주의가 꿈꾸어왔던 절대 해방지구를 자신들의 작업을 통해 가상의 세계로 구축한다.


그들의 작품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도 전혀 ‘old’하지 않다. 진주목걸이로 여자를 질식시키며 야릇한 뉘앙스를 풍기는 ‘Othello Asphyxiophilia‘(1999)나 외계비행체를 배경으로 아이들이 중화기를 들고 비장한 표정을 짓는 ’Action Half Life‘(2003-2005)은 비장의 상상력을 통한 영화적 구성과 신랄한 통찰을 엿보게 하고, ’Islamic Project‘(1996-2003)와 ’Europe-Europe‘(2007-2008)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작업은 만약이라는 가정을 바탕으로 현실을 변주한다. 만약 서구문명이 역사의 승리자가 아니었다면, 폭력이 아니라 대화와 타협을 선택했더라면, 과연 현대는 어떠한 모습을 지니게 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은 히잡을 쓴 자유의 여신상, 네오나치와 사랑을 나누는 터키여성 등으로 묘사되며 역사 속의 폭력과 현재의 폭력을 대비시킨다.


미디어와 자본, 신기술 등으로 현실은 점차 발전하지만 AES+F는 우리가 발담은 세상이란 (2005-2007)처럼 잔인하고 자극적인, 보다 실제처럼 느껴지는 게임에 지나지 않는다고 피력한다. 또 로마 네로황제기의 시인 페트로니우스(Petronius)의 시구를 딴 'The Feast of Trimalchio'(2009)에선 요리사가 골프채를 들고 휴양객들에게 위협을 가하는 희극이 된 현대를 묘사하고 서양과 동양, 상류층과 하류층을 대비시킴으로써 ‘주인(master)’와 ‘시종(servants)’의 관계를 로마황궁으로 재현된 리조트호텔 안에서 뒤죽박죽 시켜 놓는다.

AES+F의 작업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낯선 슬픔, 착잡한 분노, 성적 카타르시스 등을 실감케 한다. 그것들은 현재를 사는 우리들에게 문명 안에서 선과 악의 차이는 무엇인지, 성공과 실패, 옳고 그른 것의 명확한 구분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날선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 개념미술그룹 AES+F는 1987년 타티아나 아르자마소바(Tatiana Arzamasova; b.1955), 레프 에브조비치(Lev Evzovitch; b.1958), 에브게니 스뱌츠키(Evegeny Svyatsky; b.1957)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후 1995년 블라디미르 프리드케스(Vladimir Fridkes; b.1956)가 특정한 프로젝트를 위해 합류하며 완성됐다. 러시아 Moscow Museum of Modern Art와 Russian Museum, 미국 휴스턴의 Station Museum, 프랑스 파리의 Passage de Retz를 비롯해 유수의 갤러리와 미술관에서 독립적인 전시를 열었으며 2007년 제53회 베니스 비엔날레와 2009년 제3회 모스크바 현대미술 비엔날레, 2010년 제19회 시드니 비엔날레 외에 이탈리아, 이스라엘, 우크라이나, 스웨덴, 터키, 네덜란드, 핀란드, 스페인, 오스트레일리아 등에의 굵직한 기획전에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 AES+F의 더 많은 정보는 www.aes-group.org를 통해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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