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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나의 살던 폐허는,

2011-08-04


한때 ‘297 세대’라 불렸던 이들이 있다. (당시) 이십 대이고, 90년대 학번이며 70년대에 태어난 이들을 통칭하던 이름이다. 이들은 군사정권 아래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민주화의 바람을 온몸으로 맞았으며, 대중문화의 르네상스라 불리던 90년대에 풋풋한 젊음을 누렸다. 더불어 IMF를 경험하며 최초로 ‘대학을 나와도 취직이 안 될 수가 있다’라는 것을 몸으로 체험한 세대이기도 하다. 이들이 더 이상 스무 살이 아닌 지금, 그러니까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현실은 대체 어떤 빛깔인가. 297세대인 작가 박병래는 그의 영상작품 ‘Zeboriskie Point(2011)’를 통해 그 세대만이 지닐 수 있는 독특한 시대의식을 드러낸다.

에디터 | 이은정(ejlee@jungle.co.kr)
자료제공 | 통의동 보안여관

복합문화공간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8월 3일부터 시작된 전시 ‘째보리스키 포인트 Zeboriskie Point’는 작가 박병래의 네 번째 개인전이다. 우주로부터 온 ‘째보(ZEBO)’라는 가상의 인물을 통해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한 지역사회가 겪었던 역사적인 여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이 작품은 작가가 첫 레시던시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군산이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곳은 일제 강점기의 슈미토모 은행(조선 은행)과 적산가옥, 일제시대의 농장, 미군정기의 미군부대와 미군 봉사자들과 기지촌 여성들의 마을, 신자유주의 경쟁체제의 상징인 새만금 간척지 등의 다양한 역사적 흔적들이 혼재되어 있는 곳이다. 간척사업으로 변질된 폐허의 공간을 무대로 작가 박병래가 중첩시킨 군산의 역사적 이미지는 그 모든 모습의 퇴적체라고 할 수 있을 것. 작가는 ‘째보’의 방문과 탐사 그리고 자신의 구역에서의 활동과 메시지의 전송 과정을 통해 사라진 것과 남아 있는 것들 사이의 오버랩된 환상들 속에서 현시대의 우리의 초상을 그려내고자 한다.

박병래 작가의 ‘째보리스키 포인트 Zeboriskie Point’는 본래 이탈리아의 명감독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1970년도 영화 ‘Zebriskie Point’를 변형시킨 유의어이다. 일상적 세계와 가상의 이상세계가 혼재된 이 작품은 광활한 사막에서 일군의 젊은이들이 맞닥뜨리게 되는 실제세계와 그들이 바라던 파라다이스의 충돌을 인상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군산이라는 도시에서 이 영화의 이미지를 찾아낸 박병래 작가는 일제시대를 거치며 만들어진 은행과 텅 빈 적산가옥들, 미군정 시대의 아픔을 담고 있는 기지촌 여성들의 삶터, 미국발 신자유주의로 인해 생겨난 새만금 간척지 등을 통해 우리 민족이 걸어와야 했던 수난의 나이테를 은유하여 표현한다. 그는 작가노트의 말미에서 ‘자아를 찾아가던 지난한 여정이 이제 새롭게 한 사회의 집단에게로 그 관심의 대상이 전이되는 과정을 겪고 있다.’라는 문장으로 그의 작품세계의 변화를 설명한다. 자신의 작가적 정체성과 시대정신이 연결되는 뜻 깊은 순간이다.

세 개의 채널로 구성된 이 작품은 비디오 프로젝션을 통해 상영된다. 이를 중심으로 인스톨레이션, 기록, 사진 등을 이용해 ‘째보’가 남긴 이미지화된 기록들과 흔적들은 통의동 보안여관 이라는 고유의 공간적 특성들을 활용해 배치되고 있다. 여러모로 흥미로운 이번 전시는 8월 21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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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정
잡지디자이너 과심은 여러분야에 관심은 많으나 노력은 부족함 디자인계에 정보를 알고싶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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