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4-16
제레미 델러(Jeremy Deller)는 아티스트란 말보단 행동주의자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영국 현대미술의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하나로 평가된다. 그의 작품 또한 사회적·정치적 그리고 문화적 이슈들을 기록한 자료들이란 말이 더 적절한 듯 보인다. 이렇듯 다양한 영역을 아우르는 활동을 통해 아티스트뿐 아니라 아닌 제작자, 문화기록자, 큐레이터, 영화 제작자 등 많은 수식어가 따라붙는 제레미 델러는 이번 회고전을 통해 그동안의 작품 활동을 선보인다.
글│권지은 영국통신원
기사제공│퍼블릭아트
작가는 2004년 비디오 작품인
델러는 1986년 뉴욕에서 처음 앤디 워홀(Andy Warhol)을 만나고 Factory에서 2주의 시간을 보냈다. 그 기간 동안 출판업, 텔레비전, 음악 산업 그리고 순수미술 세계를 넘나들며 활동하는 워홀의 폭넓은 작품세계에 압도되었던 그는 1990년 초부터 본격적인 예술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작은 앤디 워홀’이라 불리며 전통적인 갤러리에서 전시될 법한 작품 형식의 틀을 벗어나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작품들을 제작해 오고 있다.
위에서 언급했듯 그는 아티스트이자 필름 메이커이며 큐레이터 혹은 출판제작자 그리고 문화 기록가 등 셀 수 없는 수식어들을 달고 다닌다. 90년대 초 현대 예술계의 변혁을 꿈꾸며 새로운 시도를 하였던 아티스트 그룹들의 선구자 중 하나였는데, 당시 그 그룹들은 다른 종류의 사회적 그룹들과의 협업을 통한 작품 활동을 하였고 사물을 제작하는 창조적 활동보다는 어떤 것들이 예술작품을 구성할 수 있는 요소가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연구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할애하였다. 이러한 활동들이 현대예술에서 전통적인 예술의 미학적 가치의 의미 재고를 야기했고 많은 작가와 작품을 대하는 대중들의 사고 전환에 영향을 주었다. 델러는 전문적 교육과정을 통한 미술을 배우지 않았다. 그렇기에 자신은 그림을 그리는 방법도, 조각하는 법도 알지 못한다고 스스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만의 표현방식을 통하여 예술작품 활동을 해왔고, 우리가 소위 생각하는 전형적인 아티스트란 무엇인가에 지속적인 의문을 던지며 전통적 개념의 아티스트가 되는 것을 거부하며 예술가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해왔다. 때로는 델러의 작품제작방식이 워홀의 그것과 흡사하다는 평을 받고 있지만, 워홀의 팝아트가 화려함을 상징한다면 델러의 작품들은 그것보다 더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는 사실 그대로를 담백하게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 더불어 그의 작품들은 따분한 토착 언어로 표현된 민중 예술, 소박한 미학 정도의 코드로 표현되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
이번 회고전을 통해 델러의 1993년 초기 작품인
지난 몇 년간 델러는 그의 팬들 그리고 아마추어 문화적 실행가들과의 협업을 통하여 대중음악의 사회적의 의미들에 관해 연구를 해왔다. 이번 전시
사진, 문서 자료, 퍼포먼스 등 다양한 기록물들을 이용한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예술작품이 전시되는 전형적인 장소인 갤러리를 벗어난 듯 보인다. 담당 큐레이터 랄프 루고프(Ralf Rugoff)는 전시를 기획하는 과정에서 “작품의 특성을 고려했고 작가가 탈피하고자 했던 전형적 전시장이란 공간적 제약이 있었기에 전시기획단계에서 어려운 점이 많았지만 작가와 전시 기획자 모두 단지 기록물들과 자료들을 보여주는 따분한 전시는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작가의 작품을 통하여 축제와 같은 다채로운 요소들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에 동의했기에 작품들을 전시하는 것 뿐 만이 아닌, 진짜 살아있는 대중들의 자율적 참여를 이끌어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전시의 한 부분으로서 혹은 작품 자체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이번 회고전을 통해 마련하였다.
글쓴이 권지은은 단국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 후 영국으로 건너가 2010년 런던 메트로폴리탄 대학교(London Metropolitan University)에서 ‘Arts and Heritage Management’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타 미술 전문지 외국객원기자로 활동하였으며 현재 런던에서 첫 기획전시를 통해 독립큐레이터로서 첫발을 내딛으며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