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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바나나, 현대미술을 말하다

2013-04-23


전 세계의 미술 동향을 한꺼번에 만나보고 싶다면 아라리오 갤러리 천안을 방문해 보는 것은 어떨까? 2013년 3월 7일부터 5월 26일까지 열리는 ‘바나나와 나’ 전시에서는 수보드 굽타(Subodh Gupta), 아구스 수와게(Agus Suwage), 마리아노 칭(Mariano Ching) 등의 인도와 동남아시아 작가를 비롯해 앤디 워홀(Andy Warhol), 데미언 허스트(Damien Hirst), 토마스 루프(Thomas Ruff), 데이비드 슈넬(David Schnell)과 같은 미국과 유럽작가들을 만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지다춘( Ji Dachun), 위엔위엔(Yuan yuan) 등 중국 작가, 강형구, 이동욱, 송명진 등의 한국작가까지 2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글│이진희 객원기자( 0________1@naver.com)

‘바나나와 나’라는 전시 제목은 '바나나'라는 단어가 가진 고정된 의미를 바탕으로 한다. 바나나라고 하면 연상되는 색깔과 형태, 맛, 냄새 등을 즉각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것처럼 미술 역시 고상함, 값비싼 것, 창의적인 것 등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들은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를 벗어나 실제로 작품을 대면했을 때의 새로움을 표현하고자 했다. 예를 들어, 현대 미술의 주요 주제인 '삶과 죽음의 교차'의 흔적을 바나나를 통해 나타내고자 하는 시도 등이 그렇다. 실온에 두면 거뭇거뭇해지는 노란 바나나처럼 변하는 시간의 흔적들, 유년 시절, 옛 영광의 흔적, 영원히 오지 않을 미래의 꿈과 좌절, 죽음을 투영하는 삶 등을 주제로 한 여러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인도네시아 작가인 아구스 수와게의 작품은 아연판 위에 오일 페인팅을 하고 그것을 부식시키고 긁어서 독특한 표면 질감 효과를 내었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기존의 방식에 대항하여 자신만의 새로운 길을 걸어간 당대의 선구자들이다. 요셉 보이스(Joseph Beuys), 반 고흐(Vincent van Gogh), 프리다 칼로(Frida Kahlo) 등을 그리며, 그들의 삶, 행적들을 상징하는 계단을 통해 표현했다.

아툴 도디야(Atul Dodiya)는 믹스 컬쳐(mix culture)와 예술의 탈 장르화에 주목한다. 서로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소재들이 모여 수수께끼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이번 전시작 ‘Fallen Leaves A Stroll’ 은 소설의 의식의 흐름 기법을 차용한 것으로 우리 의식 속에 숨어 있는 단상들, 예상치 못한 의식의 흐름과 같은 느낌을 담아내고 있다.

마리아노 칭은 필리핀의 작가로서, 그의 자화상 시리즈는 극사실주의의 영향을 받았지만 자화상의 주인공은 인간인지 동물인지 모를 괴물과도 같은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또한 이러한 환상적인 표현은 유토피아적 세계를 보여주기도 했다. 복잡한 현실에서 파괴되어가는 심리적 불안 속에서 무엇인가를 꿈꾸는 이중적 심리를 유머러스하게 표현하고 있다.

바르티 커(Bharti Kher)는 인도인의 일상 소재인 인도 여성이 미간에 붙이는 빈디를 거울 위에 붙였다. 이러한 이미지는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빈디를 붙일 인도 여성의 보편적 삶을 함축하고 있다. 인도 설화에 등장하는 인드라 신의 궁전에 걸려있는 거대한 그물을 의미하는 작품 제목처럼 멀리서 바라본 일상은 아름답고 영롱할 수 있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깨져있는 유리조각 들을 발견 할 수 있다. 보편적 개인들의 내러티브들이 모여 이루어진 환상이 바로 작가가 생각한 신화와 종교, 예술인 것이다.

이처럼 전시는 좀처럼 만나보기 어려웠던 동남아시아나 인도 등의 작가에서부터 시작해서 앤디 워홀, 데미언 허스트, 토마스 루프 등의 유명 작가까지 다채롭고 광범위한 작품을 포함하고 있다. 작가의 나이나 국가, 작품의 색깔, 담고 있는 이야기 등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다소 산만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지만 관람객이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 들이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전시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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