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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세 번째 눈' 展
미술
마감
2005-09-14 ~ 2005-10-02
일시: 2005년 9월 14일 - 10월 2일
장소: 브레인 팩토리, 서울특별시 종로구 통의동 1-6
문의: 725-9520
개관시간: 화요일-일요일 11시~ 6시 , 월요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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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의 작업실에 방문했을 때 여러 작업 중에서 유독 마음을 끄는 작은 그림이 있었다. ‘Penn's Cave’라는 글자가 씌여진, 앞을 바라보고 있는 사슴의 그림이었다.
언듯 동물원의 안내판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그림에는 김소연의 다른 작품들이 그러하듯이 일체의 설명적 요소가 배제되어 있다. 그저 보여지는 이미지와 의미가 축약된 단어들의 조합을 통해서 현실에서 차단된 무언가를 ‘유추’하도록 할 뿐이다.
‘Penn's Cave'는 김소연에게 있어서 공포의 근원지를 의미한다. 눈 앞을 예측할 수 없는 펜실바니아 동굴의 거대한 암흑 속으로 들어가려했을 때 그가 경험했던 극도의 공포와 공황상태에 대한 이 작업은 현실 어디엔가 숨어있는 근원적 불안에 대한 표상이다.
김소연의 작업에서 흥미로운 점은 이처럼 잠재되어 있는 세계, 아직 사건으로 폭발되지 않았지만 곧 무슨 일인가 일어날 듯한 불안하고 위태로운 정황들이 마치 어떤 지시물이나 안내판과도 같은 요약적 정보를 통해 전달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작업 전반에서 발견되는 경쾌한 디자인 감각이나 시각적 기호들, 홍보용 정보와도 같은 단어나 짤막한 문장들의 활용은 이러한 지시적인 특성을 더욱 배가시키는 장치이다.
그러나 그의 작업이 지시하고 있는 것은 일상적 현실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표시판들처럼 명료하고 확고한 물리적 장소나 상황이 아니다.
작품 속에 나타나는 정보는 무엇을 지시하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없도록 모호하게 제시되며, 불가해하지만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는 어떤 상태로 우리를 이끌고, 종국에는 그 세계의 모호함 속에서 길을 잃게 만든다. 이처럼 김소연은 보편적인 시각적 소통을 위해서 활용되는 지극히 경쾌하고 단정적인 방식을 통해서 우연적이고 은밀하고 모호한 세계를 말하는 역설적인 어법을 구사하고 있다.
김소연의 이미지들이 펼쳐놓는 세계는 꿈 속의 상황들처럼 비논리적이고 기묘하다. 무언지 파악알 수 없으면서도 분명하게 존재하는 영적 실체, 어느 순간 그림자처럼 스윽 다가와서 우리를 붙잡을 둣한 실체의 느낌이야말로 김소연의 작업에서 핵심을 이루는 내용이다.
‘세 번째의 눈’이라는 전시의 제목은 물리적이고 제도적인 차원을 넘어서 존재하는 그 실체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을 의미한다. 일상을 비집고 불쑥 불쑥 떠오르는 단서들을 우연적이고 직관적으로 받아들이는 방식을 통해서 그는 ‘세 번째의 눈’으로 포착된, 매우 포착하기 어려운 진실을 더듬어간다.
그 단서들은 꿈 속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극히 주관적인 상징체계를 통해 나타나고 있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새, 기이한 동물, 눈동자, 듣고 있는 귀, 자고 있는 사람, 방향을 지시하는 손가락, 뽑혀진 전선 코드와 같은 이미지들은 마치 계시록에서 발견되는 영적인 표징들이나 신화적인 상징들처럼 어딘지 기이하고 불가해한 표상들이다.
이러한 표상들은 마치 우리들의 꿈이 그러하듯이 비논리적이지만 나름의 체계를 가지고 있는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이야기 구조 안에 수용되고 있다.
김소연의 지난 전시들에 붙여진 'Sequence'라던가 'Series Painting'과 같은 제목은 그가 일관적으로 지향해온 비선형적이고 비논리적인 내러티브 구조를 암시하는 것이다.
일체의 설명이 배제된 채 관람자 앞에 단편적인 파편들로 던져진 이미지들은 마치 영화의 몽타쥬처럼 서로 모호하게 연결되어 의미를 증식시켜가면서 불확정적인 이야기를 구성하게 된다.
이 이야기에는 일정한 기승전결이 없다. 관람자는 불명확하지만 끊길듯 말듯 서로 연결되어 있는 끈들을 상상과 직관을 통해서 자의적으로 이어나갈 수 있을 뿐이다. 그 이야기는 결코 완결되지 않은 채 미궁 속에 남아 있으며 이미지간의 새로운 상관관계를 통해 지속적으로 재구성될 수 있다.
이와 같은 방식을 통해서 김소연의 작업이 드러내고 있는 것은 현실 뒤편에 잠재된 채 언제라도 불청객처럼 일상에 끼어들어 우리를 뒤흔들 수 있는 미지의 세계이다.
그것은 밝고 정당한 것들만이 존재하는 명증한 세계가 아니라 고통을 주는 요인들, 불안과 의심, 공포와 히스테리가 존재하는 세계이다. 긍정과 명확함으로 가장된 인위적인 빛의 세계가 아니라, 자연 그대로의 실존이 가질 수 밖에 없는 그늘이 드리워진 세계인 것이다.
김소연의 작업의 힘은 그러한 불안과 어두움 조차도 절대적 암흑이 아니라 빛과 어두움이 공존하는 더없이 흔들리는 상태로 드러난다는 것에 있다.
그의 작품에서 고전적인 공포영화나 범죄영화의 장면들처럼 심리적이면서 어딘가 위태로운 긴장감이 느껴지는 것은 이러한 흔들림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측면이 어떠한 형태의 서정적 아름다움으로 다가올 수 있는 것은 그것이 거대하고 보편적인 진리에 대한 정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해도 여전히 모른 채 서있을 수 밖에 없는 인간 존재의 나약함과 불안정함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무언가 존재한다는 믿음, 그러나 그것의 실체에 대해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조건에 대해 그는 의심과 불안의 언어로써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