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기간: 3월 1일~ 20일
전시장소: 갤러리 쌈지
문 의: 02-736-0088, www.ssamziegil.com
까만 산 사이로 난 붉은 길, 노란 하늘과 흰 산으로 둘러싸인 언덕 위에 파란 집, 노란 눈망울을 가진 분홍빛 고양이, 초록 풀밭 위에 서있는 흰 운동화를 신은 다리… 노석미의 페인팅 작업들을 첫 눈에 묘사하자면 이렇다.
‘일상’이라는 주제가 동시대 예술에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화두가 된 지금, 노석미는 이 낯설지 않은 일상과 작가 자신의 주변 이야기들을 타자의 이야기로 확장시키며 최소한의 단어들과 반복되는 운율로 시를 쓰듯 정제된 일상 풍경을 그려낸다.
노석미의 단순화된 일상적 이미지의 편린들과 작가 자신의 나래이션과도 같은 짧은 텍스트들은 반복되는 일상의 어느 생경한 순간에 대한 포착, 진부한 풍경에 대한 낯선 시선을 함축과 은유를 통해 보여준다. 노석미는 반복되는 일과(routine)나 일상이라는 거대한 덩어리의 개념을 주제로 다루기보다는 특유의 감수성으로 일상의 재발견에 가까운 ‘주변’, 혹은 익숙하게 마주치는 어떤 상황의 경계에서 낯섦을 포착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피곤하기도 하고 상처 받기도 싫다”, “엊그제 거기 갔었는데 정말 좋았어요” 라고 화면 안에 맥락이 단절된 채 불쑥 보여지는 상황의 단편과 서사적 텍스트들은 특정한 이야기, 또는 사건들을 묘사하지 않으면서도 관객 스스로가 나래이티브를 만들어가거나 상상할 수 있도록 열린 서사구조를 띈다. 또한 노석미 작업이 갖는 낯익은 대상의 디테일의 생략이나 별다른 기교 없이 원색적으로 표현되는 간결한 시각언어는 때로는 변형시키고, 때로는 사라지게하고, 때로는 부연하면서 그려내는 일상의 모습들로 작가 특유의 유머를 보여주며 묘한 페이소스를 불러 일으킨다.
이러한 일상의 익숙함과 낯섦의 경계에서 개인적 삶의 단편을 타자의 이야기로 확장시키는 노석미의 작업은 연극 연출가 피터 부룩(Peter Brook)이 그의 예술을 위해 추구하는 일상의 “가까움(Closeness)”과 신화의 “거리(distance)”를 결합시키기 위한 노력과 맥락을 같이한다.
노석미의 책, “나는 네가 행복했으면 해”의 첫 페이지, 첫 문장, “우연일까….. 우연이 좋다. 더 깊게 얘기하자면 복잡해지는데다가 다른 이물질들이 쉽게 끼어 들어오기 때문에 나는 그저 우연이라고 생각하기로 한다.”는 “Unfussy Life”, 복잡하지 않은 삶, 이라는 이번 전시의 제목을 단편적이면서도 직접으로 보여준다. 근 10년동안 작가 자신이 추구하는 삶과도 닮아 있다는 “Unfussy Life”는 수평, 수직으로 팽창하는 도시에서 한 걸음 떨어져서, 건조한 일상의 저변에 흐르는 미세한 질서와 일상의 섬광과도 같은 생경한 순간을 포착하는 작가의 삶에 대한 수분기 머금은 예민한 감수성과 관조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