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기간: 2006년 3월 10일 ~ 5월 14일 (월요일 휴무)
전시장소: 로댕갤러리
문 의: www.rodingallery.org 02-2259-7781~2
로댕갤러리는 2006년 첫 전시로 (故) 박이소의 주요 작품과 활동상을 총체적으로 조명하는 유작전을 개최한다. 2004년 4월 만 47세의 나이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한 박이소는 홍익대 미대를 졸업한 후 1982년 뉴욕으로 건너가 프랫 인스티튜트를 다녔다.
대학원 졸업 후 1985년 부터 뉴욕 브루클린 북부의 그린포인트 지역에 비영리적인 대안 공간인 '마이너 인저리(Minor Injury)' 를 창립하여 직접 운영했다.
한국인 유학생 작가로서 뉴욕 현지에서 진보적인 전시 공간을 운영하며 제3세계 출신 작가들, 미국내 비주류 작가들의 작업을 소개하고, 정보지의 발간, 퍼포먼스와 세미나 등을 개최하는 실질적인 활동을 벌였다.
특히 그는 이 대안 공간에 적극적으로 지역 사회의 행사들을 끌어들여 지역공동체와의 활발한 교류 및 대화의 장을 마련했다.
박이소의 이러한 활동이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가 정점을 향해 가던 80년대 중반에 문화적으로 크게 소외된 브루클린 지역에서 벌어졌다는 점에서 미국의 언론들이 주목하기도 했다.
그는 뉴욕 미술계 내에서 작가가 만들어지는 시스템에 대해 저항적 입장을 보였고, 그에 대한 대안적인 방향 속에 작가로서의 자신의 위상을 설정했다.
그의 활동은 지역 사회와 분리된 채 스튜디오에서 작품을 제작하고 갤러리에 전시를 하는 작가의 모습이 아니라 사회 안에서 자신의 고민과 작업이 함께 살아 움직이는 상태를 원했고, 그에 적절한 대안을 실질적으로 구축해 갔다는 의미가 있다.
뉴욕 체류기에 그는 스튜디오에서 작업만 하지 않았고, 대안 공간을 운영하는 관장으로서, 미술제도에 대해 비판적 관점과 길을 예시하는 자유기고가로서, 그리고 창작에 도움이 되는 새로운 전문 이론서를 우리 말로 번역하는 일도 했다.
마이너 인저리의 활동을 바탕으로 그는 미국 생활을 주제로 뉴욕 브롱스 현대미술관에서 초대전을 가졌고, 재능을 인정받아 뉴욕 주정부와 미국 연방 정부로부터 회화 부문에서 수상하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 박모는 이방인 작가로서 자신이 문화적으로 처해 있는 한국과 미국의 사이의 문화적 경계의 현실을 직시하며 인간적 따스함과 위트와 유머 속에 녹여내는 탁월함을 보여주었다.
그에게 문화적 정체성의 이슈는 세상을 향한 일반화된 의견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적 성찰의 과정이었고, 그것은 늘 정직성에 대한 작가적 질문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이었다.
1995년 귀국한 후에는 국내외의 여러 기획전과 국제비엔날레, 작가 거주 프로그램 등에 참여하면서 1990년대 한국의 현대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로서 국제적 인정을 받았고, SADI의 교수로서 탁월한 비평적 안목과 철저한 교수법으로 새로운 예술 교육의 비전을 실천하면서 교육자로서 온 힘과 정성을 쏟았다.
귀국 후 그는 미국 내 소수계로서 고민하며 작업해 오던 정체성 이슈에 기반한 작업 보다는 인간의 무력함, 예상할 수 없음, 행방불명, 목적 없음 등에 더 관심을 두면서 일종의 미술의 "무용성" 자체를 중심적인 주제로 삼는 작업들을 하였다.
작고하기 몇 년 전부터 그는 인간의 유한하고 찰나적인 삶에 대한 통찰을 보여 주는 몇 개의 프로젝트 작업들을 했다. 그는 세상의 모든 체계에 대한 믿음을 자신으로부터 체계적으로 벗어내 버리고 결국에 자신이 스스로에게 가했던 비우기라는 수단에 의해 무(無)에 다다른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나치게 멀리 나가는 모험을 감행했고 어느 예술 행위에나 내재해 있는 위험을 살다 갔다.
이번 로댕갤러리에서의 유작전은 작고 2주기를 추모하는 동시에 1990년대 한국 현대 미술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젊은 작가들과 한국 현대 미술의 전개 과정에 적지 않게 영향을 끼쳤음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에게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은 그의 작품 세계를 총체적으로 살펴보는 첫 번째 회고전이다.
지극히 내밀한 성격이던 그는 미술계의 공식 행사에 나타나는 법이 없었지만 마치 보이지 않는 손처럼 한국 미술계에 많은 일을 해냈고, 소통의 본질 자체를 깊이 통할한 작품세계를 가진 매우 특별한 작가였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객원큐레이터 이영철 교수(계원조형예술대학)는 생전 작가의 절친한 친구이자 동료로서 이 전시의 개념을 서사극을 대표하는 단테(Dante)의 신곡(Divine Comedy)에서 찾고 있다. 단테의 육신과 영혼의 "순례 행위"와 박이소와의 정신적 만남을 꾀하는 것이다.
박이소의 20년 예술행위는 세상의 상대적 가치들에 함몰하지 않으면서 내재와 초월을 동시에 추구하는 순례의 성격이 강했다. 그것은 처음부터 그 자신이 불가능한 일임을 알면서 가는 길, 생명을 기꺼이 주려고 해야 하는 ‘불가능한 순례’이기도 하다. ‘탈속의 코미디’ 혹은 ‘불가능한 순례’라고 하는 전시의 개념은 삶의 부조리함, 이면성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온 작가의 폭넓은 발상과 놀이 감각과 특유한 스타일에 어울리는 그릇으로 설정한 것이다.
세계의 역동성, 삶의 부조리, 비극, 알 수 없음, 우연성, 외로움 안에서 부동의 자세로 침묵한 채 '생각하는 사람'은 근대 이후 지성인과 예술가의 대표적인 표상이다.
이 생각하는 인물은 1969년 현대미술가들의 개념주의적 작업들을 삶에 대한 질문과 결합시켰던 전시 <태도가 형식으로 된 때>의 부제인 '너의 생각 안에서 살아라(live in your head)'를 실천하는 주체이기도 하다. 20년간 박이소의 다양한 작업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큰 질문은 생각하는 자로서 '태도'의 진정성에 대한 물음일 것이다.
이번 전시에는 그 동안 조명되지 않았던 미국에서의 "마이너 인저리"를 통한 활동상황이 여러 자료와 증언을 통해 처음으로 공개되며, 생전의 대표작들과 드로잉들, 그리고 사후 남아있는 작품 계획서를 토대로 실현된 팔라야바다(Fallayavada) 등이 소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