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1시 - 오후 6시
월요일 휴관
Tel: (02)733-4883
서울 종로구 창성동 127-3
http://www.factory483.org
갤러리 팩토리에서는 2006년 9월22일부터 10월15일까지 이미혜의 네번째 개인전 “슈퍼-이베이어(super-ebayer)“가 개최된다. 전시제목이자 프로젝트명이기도 한 “슈퍼-이베이어“ 의 컨셉은 2003년 1월, 1년 반 정도의 체류를 목적으로 탑승한 독일 행 비행기 안에서 우연히 시작되었다. 슈테른(Stern)이라는 잡지를 통해 인터넷 경매 사이트 ‘이베이(ebay)’가 독일에서 거둔 엄청난 성공에 관한 특집 기사를 읽게 된 작가는, 독일 땅에 발을 내딛자마자 바로 인터넷 경매의 세계로 빠져들게 되었다.
국내 인터넷 쇼핑-몰의 선두자리를 다투는 사이트, ‘옥션’의 모기업이기도 한 ‘이베이’는 단순히 마음에 드는 상품을 고르고 제시된 가격을 지불하면 살 수 있는 여타의 인터넷 쇼핑-몰과는 달리, 하나의 물품을 두고 수 많은 사람들과의 경쟁을 거쳐 낙찰 받는 ‘경매’라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특성이 있다. 평소, 중고 물건들을 싼 값에 사고 파는 벼룩시장에서 쇼핑하기를 즐겼던 작가는 앉은 자리에서 1년 365일 24시간 내내 벼룩시장보다 훨씬 다양한 종류의 물건들을 손쉽게 만날 수 있는 이베이에서 그야말로 황금어장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러나 경매는 수많은 사람들과 치열한 경쟁을 통해 낙찰을 받아야 하는 숨막히고 박진감 넘치는 일종의 ‘게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게임에 참가해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어, 소위 경매의 ‘달인’이 되어야 했다. 소유욕과 승부욕이 강했던 작가는 결국 뛰어난 승률을 올리는 경매 낙찰자, 말하자면 ‘슈퍼-이베이어’가 되었지만 경매를 위해 쏟아 부어야 하는 시간 때문에 따로 작업할 시간을 내기가 힘들어지자 아예 경매와 관련된 자신의 생활자체를 작업의 모티브로 끌어들이게 되었다. 그녀는 우선 갖고 싶었지만 아쉽게 놓쳐버린 물건들을 역시 이베이에서 구입한 그림 도구들을 이용해 드로잉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이처럼 자신의 실패를 대변하는 드로잉 된 물건들과 자신의 성공을 대변하는 낙찰 받은 물건들을 함께 제시하는 방식으로 독일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전시에 참가했다.
이번 갤러리 팩토리에서는 독일에서의 작업개념을 보다 확장시켜 제작된 대략 다섯 가지 형식의 작품들이 전시된다. 먼저 1층 메인 전시 공간에는 이베이 경매를 통해 낙찰 받은 다양한 중고 물건들이 가격표와 함께 설치된다. 그리고 경매에서 낙찰 받은 물건들 중, 실제 생활에 쓰이고 있는, 그래서 전시가 불가능한 것들은 사진으로 인화되어 역시 이베이에서 낙찰 받은 각양각색의 액자에 넣어져 전시된다. 이것들과 함께 1층 전시 공간의 한쪽에는 이번 전시가 이루어지기까지 관계했던 사람들을 위해 작가가 이베이 경매에서 낙찰 받은 선물들이 소포박스 상태 그대로 <슈퍼-이베이어 선물 프로젝트>라는 명칭 하에 전시된다.
1층 전시 공간의 안쪽에 위치한 프로젝션 룸에는 2005년 여름 두 달 동안 진행된 이베이 경매와 작가의 일상을 하나로 엮어 구성한 잡지 <슈퍼-이베이어 : 2005년 여름호>가 전시된다. 우선 프로젝션 룸의 외벽에는 이 잡지의 표지 사진으로 사용됐던 이미지 두 점이 포스터 형태로 걸리고, 내부 벽면에는 <이베이 경매지도 드로잉>이 설치된다. 그리고 내부의 한쪽 모서리에 72페이지 분량의 잡지 내용이 빔 프로젝터로 상영된다.
2층 전시 공간에는 작가가 경매에 참가했으나 아쉽게도 낙찰 받는데 실패한 물건들을 그린 <이베이 드로잉>이 전시된다. 이 <이베이 드로잉>은 판매자들이 올렸던 물건의 사진을 포토샵으로 작업하여 윤곽선만을 인쇄한 후, 수채화 물감으로 옅게 칠한 작품으로, 경매가 실제 진행되었던 날짜와 시간 순으로 걸리게 된다. 각각의 드로잉에는 작가의 서명 대신 정확한 경매낙찰시각(날짜, 시/분/초)과 이베이 경매번호, 그리고 작가의 이베이 ID인 dinoorangesky가 쓰여져 있다.
마지막으로 2층 사무실과 전시공간을 분리하는 벽에는 독일에서 시작되고 진행된 “슈퍼-이베이어(super-ebayer)“에서 파생된, 한국에서 펼쳐질 다음 작업의 예고편의 성격을 띠는 작품이 전시된다. 시간과 장소에 따라 자신이 감당해야 할 각기 다른 역할을 ‘super-ebayer, super-wife, super-artist’ 라는 명칭으로 새겨 넣은 <3종 명함 세트>와 관람객들이 참여하여 문제를 푸는 <슈퍼-테스트>가 비치되어 있다. 이 두 작업은 작가이자 아내, 그리고 이베이 경매를 즐기는 구매자라는 세 가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작가 자신의 모습을 테마로 하고 있다. 자신의 세 가지 역할 모델에 각기 슈퍼라는 형용사를 붙여 ‘슈퍼-이베이어’, ‘슈퍼-와이프’, ‘슈퍼-아티스트’라고 명명함으로써 가정에서, 직장에서, 취미에서 모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기를 원하는, 그래서 ‘슈퍼-우먼’ 신드롬을 조장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이야기하고 있다.
결국 이미혜의 이번 전시는 지름신의 유혹을 얼마나 자주 받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현대 소비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피해갈 수 없는 쇼핑이라는 일상적인 행위에 대한 작가의 자기 고백 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러나 1980년대에 미국 작가 바바라 크루거가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문구를 담은 작품을 통해 신랄하게 비판했던 것처럼 과다한 쇼핑이나 소비에 얽메인 현대인의 초라한 자화상을 고발하는 계몽적인 내용의 전시를 지향하지는 않는다.
이미혜는 실물은 보지 못한 채 판매자가 올려 놓은 모니터 상의 이미지만을 보며 물건을 판단하여 낙찰가를 결정하고 힘든 경쟁을 거쳐 낙찰 받은 후, 그 물건이 어떤 박스에 담겨져 자신에게 배달되었을 때, 박스의 상태부터 이리저리 확인한 다음 조심스레 포장을 뜯어 내용물을 확인하기까지의 흥분과 설레임에 이르는 전 과정을 관람객과 함께 하고자 한다.
박스 안에 담겨진 중고품들을 통해 그것이 만들어졌을 당시의 트랜드, 시대 상황 등을 유추해 보고, 그것을 구입하고 사용했던 사람들의 개인적인 성격이나 취향 등을 짐작해보는 과정은 최신 유행을 맹목적으로 좇아가기에 급급해하며 새로운 물건만을 선호하는 우리의 소비 형태와 비교할 때 낭만적인 여유와 즐거움을 주기에 충분할 것이다.
윤준(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