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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ganic distance(유기적 거리展)_안단태
미술

무료

마감

2007-10-25 ~ 2007-11-07


전시행사 홈페이지
www.andante.or.kr
 
전시명 : 유기적 거리 (organic distance)

참여작가 : 김호준, 박성환, 안중경

기획: 김동욱

자연과 인간, 그 유기적 거리들
 
  ‘유기적 거리(organic distance)’라 이름붙인 이 전시는 이성보다는 감성, 인간보다는 자연을 중심에 두는 후자의 입장에 있다. 시각의 절대적 법칙을 주장하지 않고 바라봄의 주체와 객체 사이의 다양한 관계망을 드러내려는 데 목적이 있다. 지금은 분명 이성의 시대가 아닌 감성의 시대이며, 인간 중심적 사고보다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려는 태도가 더 가치 있게 여겨지는 시대이다. 단선적 사고보다는 종합적 사고가 요구되고 있다. 세 작가의 출발점은 모두 자연에 있으며, 자연을 바라보는 다양한 거리가 도출된다. 이에 따라 인간이 자연과 관계 맺는 다양한 감성이 드러나고 있다.



  안중경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자연을 관찰한다.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고원(高遠)이다. 그가 소재로 선택한 대상은 측백나무로, 불타는 듯한 자유로운 형태가 특징이다. 이는 도시의 주변 어디에서나 문득 만날 수가 있다. 건물들 사이의 공터, 도로변 풀밭, 학교나 주택가 주변 등. 도시와 자연이 만나는 곳, 개발된 영역이 끝나는 지점에서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며 이 나무는 거칠게 생존해 간다.
  이에 대한 작가의 태도는 외경(畏敬)에 가깝다. 일반적으로 고원이라는 앙시의 시점은 보는 대상을 더욱 돋보이고 성스럽게 만든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 올려다본 나무는 거칠게, 그리고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뜨거운 자연의 생명력이다. 자연을 찾아 멀리 있는 자연 속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삶의 공간 속에서 문득 마주친 자연의 생명력은 그래서 더 강렬하고 뜨겁다. 작가는 이를 오일파스텔과 오일바, 그리고 오일을 순차적으로 겹쳐가며 한층 절제된 감각으로 재현해 내고 있다. 


  김호준은 어느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자연을 바라본다. 멀리 내다보는 평원(平遠)이다. 자연의 광활함이 펼쳐진다. 드넓은 바다에 다섯 개의 섬이 떠있다. 부산의 명물이자 상징으로 얘기되는 오륙도(五六島)이다. 맑고 화창한 날에는 다섯 개였다가 흐리고 비가 오면 여섯 개로 변한다는 환상의 섬. 두 개의 봉우리를 가진 하나의 섬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란 작가는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을 뿐 한 번도 가까이서 보거나 가보지 못한 이 섬을 아득히 그려내었다.
  이상향이란 손에 잡힐 것 같지만 잡을 수 없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대상에서 발생하며, 보는 자와 보여지는 대상 사이의 물리적 거리가 있을 때에만 존재한다. 작가와 그 대상을 가로막는 것은 바다이다. 멀리 있는 아스라한 섬에 비해 매우 구체적으로 다가오는 바다는 햇살을 받아 별처럼 반짝인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 온 몸으로 느끼는 찰나적 감각이다. 사진으로는 도저히 담을 수 없는 이 공감각적인 체험을 작가는 무수한 선과 색의 겹침으로 재현해 내었다. 멀리 있는 것과 가까이 있는 것이 동시에 다가오는 평원의 시점에서 가능한 느낌이다.

  박성환은 가장 먼 곳에서 자연을 바라본다. 그가 선택한 소재는 지도로, 항공사진으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심원(深遠)이다. 따라서 자연의 세부는 사라지고 큰 덩어리로서의 형태만 남는다. 이때 느껴지는 감각은 세밀한 것이 아닌, 전체적인 것이다. 항공기를 타고 아래를 내려다본 사람은 알겠지만 자잘한 세상사가 사라진 그 전체로서의 풍경은 평소에는 결코 볼 수 없는 경이로운 것으로, 대상과의 절대적인 거리가 유지되었을 때만 가능한 느낌이다.
  작가는 한반도, 미국, 영국, 호주 등 세계지도의 부분들을 주로 다룬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서 이 같은 경이로운 느낌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지도이기 때문이다. 지도는 자연의 형태를 있는 그대로 도식화한 것으로, 감각이 사라진 자리에 개념만 남은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도식화의 건조함을 피해가기 위해 몇 가지 전략을 구사한다. 첫째는 절대적 크기의 무시. 한반도와 미국이, 한반도와 호주가 같은 크기로 나란히 제시된다. 둘째는 지역적 영역의 무시. 한 지도 안에서 도시와 도시의 경계는 실제가 아닌, 작가가 임의로 설정한 것이다. 셋째는 새로운 경로의 창출. 작가는 도시와 도시, 나라와 나라를 오가는 다양한 길과 항로들을 무수한 실의 궤적으로 제시하였다. 이러한 방법으로 지도는 건조한 개념적 틀을 깨고 새로운 감각의 영역으로 진입한다.

  세 작가는 모두 대학을 가면서 고향을 떠났고, 현재 서울에 거주하고 있다. 그들에게 자연은 유년의 기억을 간직한, 아득한 본향이다. 도시에 살며 자연을 꿈꾸는 것은 돌아갈 수 없는 유년을 꿈꾸는 것이다. 그 유년은 관리하지 않으면 막 자라나던 측백나무, 항상 곁에서 넉넉함과 아득함을 주던 바다, 어린 시절 낙서와도 같이 끄적이던 지도 모양들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오늘, 이곳에서 자연을 그리는 것은 그들에게 현재와 과거의 경계를 넘어 잃어버린 꿈과 기억들을 되살리는 행위다. 자연과 유년을 꿈꾸는 것. 이것은 오늘날 건조한 도시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김동욱·미술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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