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과 상황:박춘미의 ''아이-스케이프''
지난 해 「신존과 상황」전을 가졌던 박춘미가 오리지널 아이디어의 뉴 버전작들로 올해의 전시를 펼친다. 이미지의 홍수·도시의 아파트·개인주택·자연·현실의 공간·불꺼진 창을 배경으로 오늘의 인간과 인간의 삶을 그리면서 ''눈''을 대리물로 등장시켜 최소한의 감정이입과 차가운 시선에 의해 형상화함으로써 뉴버젼의 차별성을 강조한다.
근작들과 관련해서 그의 ''눈''이 뜻하는 바는 두 가지 키워드의 중첩이다. 하나가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마음이라면, 다른 하나는 보여지는 세상의 풍경이다. 그의 ''눈''은 이 둘의 오버랩이다. 마음으로서의 눈은 작가를 대신하는 아이콘이자 세상만사를 두루 살피는 눈이다. 작가는 자신의 대리물로서의 눈을 그리면서 세상의 눈을 그리고 싶어 한다. 자신을 대신하는 ''알레고리''로서의 눈을 그리면서 타자의 눈을 그리고자 한다는 뜻이다. ...중략...
지난 해 전시에서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박춘미는 현대의 거대 도시를 등장시켜 인간을 규격화하는 어둡고 차가운 그리드를 작품의 전면에 부각시켰다. 작가에게서 그리드는 아파트의 차틀은 물론 건물의 내장과 외장을 규격화나는 가로와 세로의 획들은 물론, 단일 주택의 파사드 구조는 현실을 재단하는 프레임이자 실존을 옥죄는 질곡의 사슬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것들을 릴리프로 제작해서 현실감을 높이고 여기에 눈을 내재시켜 ''부동하는 눈''을 연출한다.
근작들은 작가가 ''눈''의 알레고리(allegory)를 빌려 세상을 응시하면서 이를 비판의 시선으로 형상화한다. 이점에서 그의 눈은 작가가 자신을 대신해서 등장시킨 대리물(substitute)임에 틀림없다. 현대인 모두가 규격화된 세상을 살면서 아파하고 신음하는 실존의 정황을 그리기 위해서다. 일견 작품 표정이 아주''슈르''해졌지만, 작가는 이를 빌려 화려한 이미지로 변장하고 있는 현실을 부각시키는 한편 현란한 만다라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가 내재하고 있는 실존의 상실을 보이고자 한다....
미술평론가 김복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