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한국의 근대적 삶을 대표하는 주거 형식은 아파트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모델하우스는 이러한 아파트에서의 총체적 생활 양식을 이상적인 형태로 구현해서 보여주는 공간이 된다.
모델하우스는 실제 거주자가 존재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이상적인'' 가정의 모습과 거주의 환경을 제시한다. 또한 그 시대 그 장소에서 디자인으로 구현할 수 있는 욕망의 풍경을 매혹적으로 연출한다. 그 풍경이 위력적인 이유는, 이러한 모델하우스의 이상적인 삶의 모습이 곧 금전적인 이익으로 연결될 것이라는 약속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는 부동산 신화의 하부구조 또는 증거물로 사용되는 것이다. 특히 사진 및 그래픽과의 공모에 의해 모델하우스 디자인은 확고부동한 실재의 공간으로 거듭나며 시각적으로 증폭된다.
이 효과는 명백하다. 모델하우스는 ‘어떻게 살 것인지’를 가르치는 학습장이다. 근대화의 과정에서 한국의 주거 공간은 놀라울 정도로 획일적인 결과로 나타났고, 그 공간을 채우는 상품들의 가격으로 각자의 삶의 질을 판단하게 했다. 따라서 모델하우스는 끊임없이 새로운 가치를 갱신하며 소비를 견인하고 있는데, 사람들의 마음 속에 ‘실재’라는 동경을 심어주면서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설득한다. 그것은 일종의 판타지이면서도, 기묘하게 계몽적이다.
이정혜는 < 주거 연습> 전에서 세 가지 종류의 모델하우스, 즉 ‘집의 모형’을 제시한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아파트-모델하우스 디자인에 대한 비평적 디자인인 동시에, 현재-여기에서 가능한 삶의 조건에 대한 질문이다. 그리고 그 질문이 궁극적으로 향하는 방향은 아파트가 제시하는 ‘한국의 평균 가족’ 또는 ‘그들의 일상적인 활동’에 대한 예측 자체이다. 사물들이 삶을 반영한다고 본다면, 사람들이 집을 만들어갈 때 ‘어떤 집’을 갖느냐는 문제는 그 속에서 살아가는 자신들의 모습을 스스로 투영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파트는 가부장제에 입각한 4인 가족이나 혹은 그 변형인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와 적극적으로 결합하며, 여기에서 벗어난 형태의 삶을 담아내는 데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러므로 이정혜가 제시하는 모델하우스는 ‘다른 삶’을 선택한 사람들을 위한 ‘집’의 형태이다. ‘정상 가족’이 아닌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아늑함을 찾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의 집이 필요한지, 가족의 전형으로부터 벗어난 가족이 살아갈 때 어떤 방식의 공간과 사물들의 조합이 가능한지, 혼자 사는 사람이 스스로에게 좌절하지 않아도 괜찮은 공간은 어떤 모습인지에 대하여 구체적인 ‘집’의 형식으로 생각해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