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던 날들 - 현재에 작용하는 불온한 기억에 대한 복잡하고 모호한 시선
고권은 기억에 대한 내재적 불안을 형상화한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에게 추억의 의미에 대해 질문한다. 그 질문이란 어쩌면 상처와 동의어화 할 수 있는 내밀한 과거의 기억 속에 삶의 진정한 의미가 숨겨져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anti-nostelgia, 즉 전 전시에서 그가 예고했던 추억이기를 거부하는 불온한 사적 기억의 구체적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 이번 신작들은 과거의 기억에 대한 암묵적 분노와 그리움이 모호하게 혼합된 복잡한 감성의 산물들이다. 치유된 줄만 알았던 과거의 사건이 언제든 망각의 틈을 비집고 솟아나와 현재에 생채기를 낼 수 있음을 강조하는 그의 메시지는 현재에도 영속되는 과거가 지닌 영향력을 새삼 깨닫게 한다. 작품들에서 구현되는 편린적 사건들과 언제던가 유년기의 무대였던 공간이 해체되었음을 목도한 순간 일종의 정신적 승리감을 돌연 느꼈다는 작가의 개인적 체험은 그가 내밀하게 간직하는 혹은 불가항력적인 망각에 의해 재구성된 트라우마 의 전말을 궁금하게 한다.
작품에서 보여 지는 공간의 의미는 실재적이면서 다분히 상징적이다. 작품에서 보여지듯 제주라는 섬과 골목, 동굴, 바다 등은 작가의 실재 고향이면서 유년기의 장소이자 정체성 성장의 무대이면서 고립, 성장과 퇴행의 과정이자 상상의 장이며 장애물 이다. 그 와함께 생경한 동물들의 출현은 유아적인 친밀성의 대상이자 현재에 대한 두려움으로 암묵적 퇴행을 거듭하는 작가의 미성숙한 자아임과 동시에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서있는 현재의 반영일 것이다. 그들이 보내는 시선은 현재에서 바라보는 비애 섞인 그리움의 시선이자 반대로 단단하게 봉인된 기억 속 자아가 보내는 단호하며 은근한 저항의 시선이다. 그 근원에 자리 잡은 것이 다름 아닌 측정 불가능한 조금은 신비하고도 위험한 죄의식이라면 너무 성급한 추측일까. 또한 노스텔지어적인 회고담과는 거리가 먼 이미지 안에 배어있는 가늠 못할 그리움은 그가 간절히 희망하는 아련하고도 선연한 빛과 하나가 되고 있다. 어쩌면 그가 갈구 하는 삶의 의미란 그가 상실해버린 어떤 그 무엇인지 모른다.마지막으로 의문시 되는 것은 아픔을 감수하며 내밀한 상처를 직시하고 헤집는 행위로서 그가 얻은 결론은 과연 무엇일까 하는 점이다.
다만 우리가 자신 있게 추측 할수있는 것은 그가 이번 기회를 통해 내면의 여행에 촉매가 될 어떠한 긍정적인 단초를 얻었을 것이란 점과 그 아픈 여정은 현재진행형인 그의 삶과 함께 분연히 계속 될 것이란 점이다. 결론적으로 그는 아직 과거와 화해할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다.■ 문화일보 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