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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풍경 / 설승순展 / SULSEUNGSOON / 薛承順 / painting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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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

2010-10-13 ~ 2010-10-19


전시행사 홈페이지
www.galleryis.com/
어떤 풍경
설승순展 / SULSEUNGSOON
2010_1013 ▶ 2010_1019

초대일시_2010_1013_수요일_05:30pm

갤러리 이즈_GALERY IS

분열적 인식론의 치유술 : 존재 내(內)로 스며드는 자연-갑옷을 벗어던짐


● 설승순은 그가 속해 있는 세계와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사회는 그 자신이 전적으로 그 안에 거하고 싶지 않은 하나의 ' 틀' 이다. 세계는 ' 참아내야 하는 무엇들이 가득한 곳' 이상이 아니다. 현실은 ' 종종 무력감을 느껴야만 하는 어떤' 것일 뿐 아니라, 타인과의 유대를 강요받아야만 하는 무거운 정거장이다. 자신이 속한 사회, 현실과 일상에서 설승순은 이상(理想) 과의 견디기 어려운 괴리를 목격한다.

● 적어도 정신의 측면에서라면, 설승순이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와 어느 정도 소속을 달리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러한 유형의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지불한 온갖 사회적 불이익의 대가로 하나의 축복이 주어지곤 하는데, 명상적 시선(contemplative seeing)의 특권이 그것이다. 그것이 아니고선 신중하게 사물을 응시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없는 그런 시선이다.



작가의 이러한 시선은 거의 고스란히 그의 회화 속 인물들에 투사된다. 그들, 곧 설승순이 그려낸 인물들은 세계의 정복을 꿈꾸는 야심만만한 근대인이 아니다. 그들은 할 포스터가 현대인을 일컬었던 "갑옷을 입은 공격적 주체"가 결코 아니다. 그들은 많은 경우 벗고 있으며 창 대신 우산을 들고 있다. 그들이 갈증을 느낀다면, 그 대상은 정복이 아니라 소통이며, 전진이 아니라 휴식이다. 그들은 세계로부터 안전하게 격리되는 대신 차라리 세계의 희생자가 되는 쪽을 택한다. 희생이 적개심보다 더 인간의 본질에 부합하는 것이 때문이다. 공격적인 도구들이 할 수 없는 일들을 방어하지 않는 것이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설승순은 자신에 대한 편집증이나 파시즘적 확장과는 거리가 먼 유형의 인간을 발굴해낸다. 그러한 사람만이 갑옷을 걸치는 대신 자연으로 나아가는 길을 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강과 들녘으로 나서는데 창검을 들 필요는 없으니까! 우리는 라깡의 거울효과가 제안하는 그럴싸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어떤 내적 두려움에 의해 갑옷을 입고 돌진하는 인간을 지극히 정상적인 유형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인간은 그를 둘러싼 세계와 훨씬 더 잘 해낼 수 있는 잠재력을 그 내부에 충분히 가지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자연 앞에서 설승순의 사람들이 그렇게 해내고 있다. 그들은 자연이 다가오고 스며들도록 자신을 빈 공간으로 유지한다. 풀밭에 눕고 대지에 귀기울인다.

● 자신을 자신으로 채우지 않음, 곧 어떤 명상적 가능성이 그들의 존재론적 특성임이 분명하다. 그들의 정적인 동작과 중저채도가 대변해주 듯, 어떤 상황에서도 그들은 부산을 떨지 않는다. 때론 단지 윤곽으로만 존재함으로써 자신을 확고하게 철회시킨다. 강은 조용히 흐르고, 산은 높지 않음으로서 이에 화답한다. 리듬은 완만하고, 시간은 빨리 흐르지 않는다. 모든 대상이, 살아있는 것들이, 강과 산과 구름과 나무와 숲과 새, 그리고 우산과 막대기와 사람들이 서로의 윤곽과 모서리들을 흐리면서 조금씩 뒤섞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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