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 돌아오다.
‘삶은 천천히 태어난다.’라고 생 떽쥐뻬리는 말했다.
내 삶의 일부분이 된 바느질 작업은 현실의 무력감에서 벗어나 마음 깊은 곳에서 울리는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도록 고요하게 성찰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한 땀 한 땀 바느질로 천천히 만들어 낸 옷은 따스한 삶의 치유이야기이다.
작업에 필요한 무대장치는 편안한 소파, 눈부시도록 푸르거나 흐린 넓은 하늘,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이면 마음을 열 수 있는 완벽한 준비가 된다.
바늘과 실은 여행과 정착, 부유와 뿌리내림, 선택적 기억과 무의식에 갇힌 망각을 세밀하게 연결하고 매듭짓는 역할을 한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과 느린 템포로 회상하는 작업은 마치 씨줄과 날줄처럼 단단한 패턴으로 바느질된다.
바늘과 실이 가는 곳으로 따라가 보면 현실세계의 문은 바람소리와 같이 멀어져가 있고, 지나간 삶의 하루하루가 광각렌즈로 들여다보듯 섬세하고 뚜렷해진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그리움의 대상이 된다.
밴쿠버에서의 긴 여정으로 몸과 마음이 피로에 지쳤을 즈음 바로 고향을 갔다.
땅끝마을이 내 인생의 시작점이고 견고한 뿌리가 있는 곳이다. 공재할아버지의 피는 유산으로 받은 선물이다. 그 뿌리로부터 받은 자양분으로 난, 구도도 모양도 물성도 없는 시각을 넘어선 아름다움을 밤마다 꿈꾸었고, 낮으로는 하늘을 향해 눈을 감고 고향의 바다를 채색했다. 정지된 시간 속에 우둑하게 서 있는 내가 보인다.
조그마한 아이였을 때 색색의 예쁜 실로 옷을 만들어 내게 입혀주신 어머니가 문득 떠올랐다. 고향의 바다와 내 어머니의 사랑은 결국 하나의 모티브로 직조된 옷으로 나를 만들고 존재함을 느끼게 해주는 일체의 정신성이라고 깨달았을 때, 난 다시 태어나듯 현실로 되돌아왔다.
이슬인지 비에 젖어있는 지모를 새벽, 인적 없는 녹우당 뒤뜰 고요한 비자나무 숲을 천천히 거닌 후에 난 돌아왔다.
수트케이스를 들고 여행을 다시 시작하기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