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드 Monad
● 일상적으로 몸은 우리가 항상 관념과 의도라 부르는 것에 대척점에 서 있다. 몸은 지속적인 생성이고 쌓아놓은 시간이며 신뢰다. 몸은 표현의 장場이고 관념은 전달의 매체이다. 철학자 김영민을 말을 빌자면 몸은 관념과 의도에 비해 쉽게 바꾸지 않는다 하였다. 일상은 무엇보다 몸이고 모든 고백과 의도는 잠시의 부유를 끝내고 몸속으로 침잠한다. 몸은 모든 의도를 하염없이 비켜간다. 이치를 유형화시킨 종교나 관념론 일반이 삶의 인드라망을 바꾸려고 노력하거나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의도는 안타깝지만 대체로 실패했으며 의도와 관념에서 출발한 방식은 필경 자신이 만든 거울에 갇히고 격자구조의 동일성의 재생산품만 재촉한다는 것이다. 수시로 접하는 의도와 결심의 목적론에 비하자면 몸의 스타일은 웬만해서 바뀌지 않는다. 무엇보다 보편적인 권력, 중심적 사고로의 낡은 환원에서 영원히 달아나고자 하는 것도 몸일 것이다.
● 이런 범주에서 우리가 만화처럼 읽는 이미지 혹은 캐릭터 이미지, 떠다니는 기표 등을 하나의 ' 몸' 으로 읽는 임성수의 화면을 읽어보고자 하며 또한 그가 고안한 자신의 몸적 수행을 위한 모나드-되기를 통해서 그가 근접하고자하는 지점이 무엇인지 공유해 보고자한다.
몇 년 동안 임성수의 작업들은 자신이 만든 원더랜드 속 캐릭터를 고안하여 사회에 대한 불신, 불투명함, 불안정한 사태 또는 억압이나 욕망의 심리를 들춰내는 연작 시리즈를 보여주었다. 특히 그의 화면에는 작고 퉁퉁한 어린이 캐릭터들이 심통을 부리며 기괴하다 못해 불경스러운 모습을 담아냈고 그 캐릭터 이미지들은 연쇄적인 분열을 통해서 자신이 들춰내고자 하는 기억의 통로로 현재의 필드로 모여들게 하는 풍경을 그려냈다. 파괴-되기, 환상-되기, 꿈-되기, 비천함-되기 등 그의 캐릭터들은 현재의 안일을 저항하듯 물구나무서며 되기의 생성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임성수는 모나드 캐릭터를 그리면서 자신이 아닌 캐릭터가 되고, 동물이나 식물이 되고, 분자가 된다. 그 미시적인 근접지대로 들어가 보편적 유기체적 지층이 와해된 분자의 세계를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임성수의 모나드는 지층화된 구조를 갉아먹고 파괴하고 탈영토화하는 과정에서 생긴 동체들이다. 이 동체들은 동물과 인간, 식물, 시간, 공간이 섞여 하나의 독특한 캐릭터로 발견되는데 임성수식의 동화에 등장하며 규범화, 지층화된 관념에서 일탈을 수행한다. 이렇게 임성수의 화면들은 그가 개발해낸 독특한 캐릭터들을 등장시켜 이미 자신의 진공상태의 자폐적인 지점과 교섭하며 부유하는 환상을 들어낸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교섭되어진 환상들은 하나의 설계도 같은 매뉴얼화의 방식으로 그려내는데 하나의 통제의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며 혹은 교란의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최근의 그의 작업들은 그 이전의 무수히 일탈하고자하는 강박의 이미지에서 탈피하여 좀 더 유연한 전환으로 보여주고 있다. 화면은 구름 속에 묻혀있는 기린의 머리위로 바나나를 낚시하는 아이, 물로 채운 집에서 하수도관으로 만든 잠망경을 들여다보거나 기린이 집속으로 들어와 먹이를 먹고 있는 그림, 녹색 톱니위의 잘잘한 세상들, 열기구를 타고 세상을 바라보는 이미지 등이 표식 되어 있다. 이는 이전 뭔가의 복잡한 세상을 등지려는 공격적이거나 저항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부드럽고 순환되는 통로를 불어넣고 있다.
● 그럼 여기서 임성수가 이러한 부유하는 캐릭터를 지속적으로 생성해내는 이유는 뭘까? 이는 그 자신도 밝히고 있듯 ' 엉뚱함' 이라는 존재를 어떤 영토로서 확인하고자 하며 보편적인 일상을 심미적 관찰로 이끌어내어 그려내는 것이라 하였다. 이에 그는 일상에서 캐내지 못한 또 다른 일상을 캐내고 있는 것이다. 그의 기억창고에서 길어 올린 한 바가지의 이야기보따리들을 매일매일 드로잉화한 것이며 소소한 변용을 맛보거나 미시적인 세계의 관심일 것이며, 현 사태에 대한 불안함과 알 수 없는 미지가 그가 만든 ' 엉뚱함' 과 함께 캔버스로 내려와 하나의 이야기로 마크된 것이 아닐까 한다. 필자의 읽기대로 임성수식 원더랜드는 그 몸속으로 들어가 자신의 고체성을 버리고 비-임성수이거나 비-존재적인 동참으로 하여 배치assemblage되는 지점 즉 ' 가' 와 ' 나' 의 경계가 어디인가에 대한 물음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그의 이야기 꾸러미들은 어떤 심리적 분석과 해석을 요한다기보다는 지속적인 의미의 미끄러지는 생성과 익살스런 충돌을 일으키는 생성이며 고정된 의도를 방출시키는 분자들이다.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유사동물, 유사식물, 외계인, 인형들 뭔지 모를 뒤섞여 있음이 모호한 반전의 경험을 불러일으키며 서로의 관계를 속삭이듯 배치되어 있다.
● 임성수의 모나드들, 원더랜드는 들뢰즈식의 분간할 수 없이 공유하는 어떤 것, 인간과 동물의 경계선이 어디인지 말할 수 없는 어떤 근접성의 지대, 다른 생성과 다른 동시적인 가능성이 열려있는 것으로서의 탈주들, 리좀이라고 할 수 있다.
● 마지막으로 그의 몸적 캐릭터들은 중성의 컬러를 몸에 감고 욕망의 근접으로 들어가 굳어진 공백의 세상 속에 물을 주며 미시의 양분들이 돌아다니도록 수행하는 이미지일 것이다. ■ 김복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