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노트_고영미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에 따르면 사회적 무의식이 기억, 회상을 불러일으켜 예술의 형식화를 통해 날것인 형태의 사회적 현실을 부정하고 변형, 강조, 제한 등의 절차를 거쳐 현실과 일정하게 거리를 두게 된다고 했다. 지금 이 시대와 환경의 영향아래 경험되고 기억되는 나의 사적이야기와 또 내가 바라보는 사회문제-보이지 않은 암투와 권력에 의해 고통 받는 사회적 약자의 삶은 결코 다른 이의 이야기가 아닌 나와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내 작업의 모태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사건의 리얼리티를 표현하기보다 초현실적이고 동화적인 현실로 다시 바꿔놓는다. 그 이유는 동화가 인간 보편의 진실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인간성의 미묘함과 다양함, 여러 가지 인생의 진실을 은유적으로, 서정적이거나 잔혹하게, 판타지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동화라는 형식을 취하여 거대한 풍경을 만들고 그 안에 존재하는 아이콘들을 통해 이야기를 만들고자 했다.
인간의 칠정(七情:喜,怒,哀,樂,愛,惡,慾/희,로,애,락,애,오,욕)중 ‘슬픔’과 ‘두려움’은 사람들이 제일 많이 상담하는 정서문제라고 한다. 이별과 아픔, 무관심이나 상처, 여린 존재의 삶, 그리고 이 외의 것들이 주는 슬픔은 유독 가슴에 오래 머물러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번 전시에서 나의 사적경험과 사회문제를 토대로 ‘哀(애)’를 이미지화 했다.
예컨대 현대사회에서 반복적으로 생성되는 원인불명의 기형 태아들과 죽음, 여성으로서 굴곡진 삶을 살았던 화가 프리다 칼로, 인류생명보존을 위해 희생당하는 실험실의 쥐들, 약육강식의 사회적 이해관계들은 작업의 소재가 되었다. 작업을 하면서 내 안에 잠재되어 있던 분노, 사랑, 미안함, 허무함, 기다림같은 복잡한 개인적 감정들이 올라왔고 슬픔에는 여러 가지의 감정이 녹아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들을 담고 있는 것이 바로 죽은 이를 슬퍼하고 기리는 글을 적어 장례행렬을 따랐던 만장기라고 생각했다. 하지 못했던 말, 하고 싶은 말, 애도의 마음, 사랑하고 염원하는 글을 적어 죽은 이를 하늘로 훨훨 보냈던 화려한 의식이 만장이기 때문이다.
제사나 의식을 치를때 사용했던 병풍에도 작업을 했다. 기존 작업의 초현실, 동화적표현의 연장선상에 있는 그림병풍과 이끼나 얼룩으로 변형한 글자작업의 병풍에 주술을 걸어보는 자아로서의 ‘거울’, 바라보는 ‘창’, 그리고 ‘애도’라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보았다. 이 전시를 통해 나의 사적이야기와 함께 거대하고 화려한 세상 속에 가려진 상처와 아픔, 힘없는 여린 존재들의 삶의 비극적 구조와 사회의 잔인성, 인간의 폭력성 등 불편한 진실에 주목하고 이들을 애도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