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소개
한국은 오랜 전통과 문화를 갖고 있는 만큼 나름대로의 미의식이 있었으나 조선시대 말기에 근대화에 실패하면서 서양의 미의식이 그대로 우리에게 영향을 끼쳐서 한국적인 미의식이 많이 상실되었다. 인물에 대한 미의식에서도 그런 경향은 두드러진다. 조선시대 미인도를 보면 현재의 미인과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최원진의 이번 전시는 대전에 위치한 호수돈 여고생을 상대로 화장과 성형을 하지 않은 순수한 얼굴의 눈, 코, 입을 부각시켜 현재 한국 젊은 여성의 매력을 부각시키는 작업을 진행한 것이다. 약 150명의 여고생을 촬영하여 한국여성의 꾸밈없는 아름다운 모습을 찾고자 한 것이다. 마치 증명사진처럼 정면을 촬영한 것은 한국인의 의식 속에 인간의 모습은 정면에 있다고 생각한 것에 있다. 유럽의 전통적인 초상화를 보면 정확한 정면을 피한 반면에 왕의 영정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전통적으로 대칭을 이루는 정확한 정면을 그리려 노력했다.
아마 사람의 얼굴에서는 앞면이라는 말 보다 정면이란 단어를 선호하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머리카락을 잘라내어 눈, 코, 입을 부각시킨 것은 헤어스타일 자체가 서구적인 이미지로 보여 한국적인 이미지 보이는데 방해가 되어 좀 더 군더더기를 없앤 것이다.
마치 조선시대 김홍도, 신윤복의 풍속화 속에서 장옷으로 얼굴만 내놓은 여인의 인상이 느껴지는 듯, 그리고 윤두서의 부리부리한 눈매가 느껴지는 이미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최원진_正. 面. #4_디지털 프린트_100×100cm_2012
작가노트
시각적으로 아름답고 세련된 이미지에 대한 한국인의 고정관념은 오늘날 크게 왜곡되어있다고 생각된다.
인간의 눈에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결국 인간의 눈에 익숙한 것이다.
우리 주변의 풍경이나 생명체의 모습에서 인간은 아름다움을 느낀다.
정상적인 건강한 인간이라면, 젊은 이성의 모습에서 최상의 아름다움을 느낄 것이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이기도 하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지금 우리의 미의식에는 좀 이상한 구석이 있다.
자신의 생김새보다 왜 서구인들의 모습을 더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일까?
큰 키, 긴 다리, 쌍꺼풀 진 큼직한 눈과 오뚝하게 높은 코를
한국인이 미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그러한 미의식은 고대 그리스인의 모습에서 비롯된 아름다움의 전형이 고대 로마를 거쳐 유럽으로, 그리고 미국으로 흘러든 것에 불과하다. 근대 이후 유럽과 미국이 상대적으로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문화적인 측면에까지 힘을 떨치면서, 오랜 역사와 찬란한 전통을 자랑하는 동양의 문명이 푸대접 받음으로써 비롯된 일이다. 그리하여 오늘날 우리의 미의식은 어쩌면 고대 그리스에 속박된 상태가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우리 선조의 미의식은 전혀 달랐다.
전통적으로 아담한 키와 둥근 코, 도톰한 입술, 가늘고 긴 눈이
조선시대 미인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지 않은가!
그런데 지금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서구인을 닮아가고 있는 우리 모습을 보면 답답하기 짝이 없다.
나는 이번 작업에서 아직 화장과 성형을 하지 않은 여고생들의 얼굴을 사진에 담아 한국 여성의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 보이고자 한다.
요즘은 V라인 등 얼굴의 윤곽선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나는 이와 반대로 헤어스타일과 얼굴 외곽선을 없애고 눈, 코, 입에만 더 가까이 다가가 부각시킴으로써 잃어버린 우리의 매력적인 얼굴을 찾아보고 싶었다.
너도 나도 인위적인 방법으로 서구인의 얼굴과 비슷하게 닮아가려 한다는 것은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본연의 모습에서 순백한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 이번 작업의 결과물을 내놓는다.
최원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