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혜의 먼지,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을 향한 여행
글_
김윤섭(미술평론가)
잠시 눈을 감으면 / 그 순간이 지나가네 / 눈앞에서 모든 꿈이 스쳐가네. / 모든 것은 바람에 날리는 티끌이네. / 똑같은 옛 노래 / 끝없는 바다 속의 작은 물방울 하나 / 우리의 모든 행위는 / 우리가 원치 않는다 하더라도 / 흙으로 사라지고 만다네.
집착하지 마오. / 하늘과 땅 밖에는 / 아무것도 영원하지 못하리. /그대가 가진 것 모두 털어도 / 단 1분을 사지 못한다네. / 우리의 존재는 먼지와 같은 것. / 모든 것이 / 바람 속의 티끌이라오...
미국을 대표하는 심포니록그룹 캔사스(Kansas)가 1977년 발표한 ‘바람속의 먼지처럼(Dust In The Wind)’란 곡이다. 현실 앞에서 우리의 무력함을 흩날리는 먼지에 비유한 명곡이다. 아마도 이 노래처럼, 애써 외면하고자 해도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인생의 무상함과 덧없는 현실’을 잘 보여주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신혜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불현 듯 캔사스의 이 노래가 떠올랐다. 사람은 누구나 퇴색된 일상의 먼지 속에 묻혀 인생을 마칠 수 있다. 인간이 아무리 삶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한다 해도, 우주에 비한다면 한낱 미세한 플랑크톤보다도 못한 존재가 아닐 수 없겠다. 하지만 신혜 작가는 그 먼지를 통해 삶의 희망을 노래한다. 충분히 가치 있고, 기대해도 좋을 만한 기쁨이 있다고 말한다.
마침 신혜 작가의 한글 호(號)도 ‘먼지’다. 그녀의 스승이자, 에너지 넘치는 작품세계로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의수(義手) 화가 석창우 화백이 지어준 것이다. 보란 듯이 인생 역경을 이겨내고 독창적인 자기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한 석 화백와의 인연은, 인생의 여러 갈림길에서 방황하던 먼지신혜 작가가 화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고 한다. 마치 그림자의 어둠 속에 갇혀 있던 먼지가 빛을 받아 비로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게 된 셈이다.
그래서일까, 먼지신혜 작가의 작품 역시 과감하면서도 속도감 넘치는 필치가 돋보인다. 또한 군더더기 없는 간결함과 담백함은 경쾌한 에너지마저 자아낸다. 숙련된 문인화(文人畵)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이런 필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녀는 이미 유수의 서예 공모전에서 입상했을 정도로 붓글씨에 대한 기본기를 갖췄다. 비록 그리 길지 않은 입문기간이었지만, 기본에 충실한 정법 서예로 출발해서 회화적인 맛을 가미한 현대서예까지 관심의 폭을 넓혀 가고 있다.
예술가에게 가장 큰 소망은 자신과 닮은 작품을 창작하고 싶은 욕구일 것이다. 모든 이에게 전하고 싶은 자신의 수많은 이야기를 오로지 한 화면 속에 함축해낼 수 있다면 더 이상 무엇을 바랄까. 사람은 닮은꼴 2세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이어간다면, 예술가에겐 작품이 바로 그 DNA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먼지신혜의 작품은 마치 일란성 쌍둥이만큼 서로 닮아 있다.
그런데 작가를 만났을 때의 첫인상은 아직도 선명하다. 얼핏 인생 뭐 있나, 싶은 표정에선 현실에 대한 회피가 아니라, 오히려 초연함이 먼저 감돌았다. 분명 이제야 20대 후반을 지나고 있음에도, 느릿한 말과 행동 그리고 눈동자 동공의 깊은 이면에선 80대 이상의 초탈함마저 묻어났다. 그것은 단순히 인도, 태국, 중국, 네팔, 일본 등 여느 순례자 못지않은 여행이력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면모다. 아마도 그것은 그녀의 ‘그 무엇에 대한 간절함’이 예술의 혼을 만났기 때문이 아닐까.
신혜 작가는 그녀의 호(號) ‘먼지’처럼 살고자 애쓰는 듯하다. 먼지는 티끌보다도 작은 거의 무의미한 존재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만질 수도 없고, 볼 수도 없으며, 느낄 수도 없다. 참으로 허무할 따름이다. 그러나 그 미세한 존재들이 모여 그 어떤 형상도 만들어낸다. 억겁의 시간을 더하면, 결국 그 작은 먼지로부터 세상의 지붕처럼 거대한 태산도 태어난다.
캔사스가 우리는 ‘바람 속의 먼지’와 같다고 노래했지만, 신혜 작가는 그 먼지를 통해 세상 만물의 지혜를 깨닫게 하고 있다. 그녀는 “무엇을 그리느냐 보다, 어떤 정신으로 그리느냐에 초점을 두려 한다. 그리고 자신의 표현에 대해 불편함 없이 포용하는 자세로써, 외부에 의해 흔들리지 않는 고요가 다양한 상(像)들 안에 들어 있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그녀의 그림은 결국 표피적인 외형보다는 본질적인 원형을 지향하고 있다는 얘기로 이해된다.
먼지신혜 작가의 그림에서 가장 많이 눈에 들어오는 형상은 손이다. 더 정확히 짚는다면, 손을 모으고 있는 팔의 동세라 할 수 있다. 크게 한 아름 안고 있다거나,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기도하는 형국이다. 더욱 인상 깊은 것은 그 두 팔의 안쪽을 가득 메우고 있는 소재들이다. 꽃과 풀, 나무와 집, 구름과 새, 물고기와 도마뱀 그리고 사람…. 자신이 좋아하는 이미지들을 다소 추상적이고 상징적으로 그려 넣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을 대변한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작가의 말을 빌자면 감싸고 있는 손과 팔은 ‘내 자신의 내면을 감싸준다’는 의미이자, ‘신의 존재감이나 손길을 대신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활짝 웃고 있는 어린 아이와 ‘메롱~’하는 구름이나 입술의 형상으로 미뤄볼 때, 그녀에게 작품은 내면의 감정들이 솔직히 투영된 거울과도 같은 존재일 것이다. 마치 얽히고설킨 다양한 감정들과 잠재된 수많은 기쁘거나 아픈 기억들이 하나로 정화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것은 곧 그녀가 선택한 마음의 치유과정이며, 내면의 힐링이기도 하다.
결국 먼지신혜의 그림은 평소 표현 못했던 온갖 답답함의 감정들이 고스란히 서술된 자전적 에세이다. 또한 다양한 패턴의 문자추상 형식과 수묵 드로잉이 어우러진 그녀의 독백은 먼지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보여준다. 먼지는 점점이 흩어져 없어질 허망한 존재면서 동시에 세상 모든 근원의 시초이자 근원이라 말한다. 신혜 작가의 깊이 있는 통찰은 먼지의 존재감과 동양 고유의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공사상과도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나아가 무궁한 생명의 포용과 존중에 대한 소중함을 새롭게 각인시키는 호소력이 매력적이다.
먼지신혜 첫 개인전
< 먼지의 여행, 그 후> - 작가노트
먼지의 여행, 그 후
대학졸업 후, 내가 쌓아온 모든 게 먼지처럼 느껴졌다. 그 뒤로 진실을 찾겠다며 모든 걸 버리고 순례자처럼 일본, 인도, 네팔, 태국, 중국을 1년 2개월 동안 여행했다. 그때 느끼고 배운 걸 < 먼지의 여행> 이라는 책으로 만들었었다.
그 뒤의 난 마치 80살 할머니처럼, 인생에 아쉬울 게 없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아직도 내겐 남은 날들이 많은듯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갓난아기처럼 모든 걸 새롭게 익혀가고 있었고, 소소한 것들의 즐거움, 특히 그리기, 만들기, 노래하기 등의 창조적인 즐거움을 누리고 싶어 했다.
여행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사람들 속에서 사는 게 쉽게 느껴지지 않았다. 난 그리 자신을 잘 표현하지 못했고, 그래서 사람들과 있을 땐 답답했다. 뭔가 사람들이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지만, 물질적인 공간을 만드는 것은 나의 길이 아닌 듯 했다.
그림을 그리겠다는 결심
난 내 안의 해결 못한 고민들을 담은 채 잠시 러시아, 우크라이나, 체코 등을 여행하러 떠났다. 영감의 인도를 따라 다니면서 앞으로 내가 진짜 뭘 하고 싶은지를 물었다.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지만 여러 여건들 때문에 가까이 하기 어렵다 느꼈던 그림을 깊게 파보고 싶다는, 그걸로 일도 하고 싶다는, 절실하고 강한 느낌을 받고 한국에 돌아왔다.
석창우 화백님과의 만남
한국에 돌아와 석창우 화백님께 연락을 했다. 여행을 가기 전, 어떤 분이 내게 석 화백님을 소개시켜 주셨는데 그때 내게 그림을 배워보지 않겠냐고 하셨던 말씀이 생각나서였다.
석화백님은 자기의 일을 도와주면서 그림을 배워보라 하셨고 난 그러겠다고 했다.
서예를 통해 필력을 키워서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면 < 먼지의 여행> 때보다 훨씬 좋은 게 나올 거라고 하셔서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석화백님은 내 내면에 있는 것들을 보시곤 그것을 표현해야 한다 하셨다. 난 석화백님 그림 속에 담긴 긍정적이고 힘찬 에너지가 좋아서 나도 그런 에너지를 담은 선을 갖고 자유롭게 그림을 그려보고 싶었다.
글씨 속에서 찾은 평안
처음엔 선긋기부터 시작해서 마음에 드는 짧은 구절들을 판본체로 쓰는 연습을 했다. 내가 가장 즐겨 쓴 글은 시편 23편의 일부분인데, ‘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나를 푸른 들판에 누이시고 쉴만한 물가로 인도 하시는 도다.’ 이다. 이 구절을 떠올리면 내가 순례 여행을 할 때의 느낌이 떠올랐고, 앞날을 알 수 없는 때에도 마음이 편안해졌기 때문이다. 글씨를 아무생각 없이 반복해서 쓰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고 안정되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구절을 내 마음 속에 계속 되뇌어 주었다.
글씨로 표현해 내는 격정, 추상 속에서 나의 선 찾기
시편 23편을 판본체로 계속 반복해 쓰면서 점점 내 글씨체로 바꿔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화나고 슬프고 답답한 날이 있었는데 그 뒤에 이 감정을 어떻게 할 줄을 몰라, 이걸 글씨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기존에 귀엽게 정리되던 글씨와는 전혀 다른, 거친 글씨가 삐죽빼죽 튀어나왔고 난 그걸 통해 화를 풀기 시작했다. 내 맘대로 멋대로 글씨가 나가게 놔두다 보면, 마음이 조금씩 풀렸다. 처음엔 그 글씨를 제대로 바라보기도 어려웠는데, 석화백님이 그게 좋다고 하셔서 그 글씨로 첫 전시도 했다. 처음엔 불안했지만 점점 받아들이고 익숙해지면서 그 글씨의 모양을 잡아나갔다. 그런 과정을 반복하다가, 나중엔 그 글씨를 추상적으로 해체해서 쓰기 시작했고, 그때 글씨에 담고자 했던 거칠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강약과 리듬감이 나의 선을 만드는 데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나 자신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과정
많은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선의 질(質)’ 이라는 걸 느낄 수 있게 되었고, 그 날 그 날의 내 상태와 태도에 따라 먹 선에 담겨있는 느낌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같은 거친 글씨라도 그것을 불편해 하면서 표현하느냐, 마음 깊이 수용하면서 표현하느냐에 따라 선의 느낌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나에게 마음 수행과도 같은 역할을 해 주었고, 난 내면에 숨겨져 있다 튀어나오곤 하던 격한 부분과 분노, 날카로움, 까칠함, 공격성 등을 글씨쓰기를 통해 받아들이고 풀어낼 수 있었다. 많이 쓰고 또 많이 버렸다. 내 내면의 정수가 무엇일까에 대해 명상했고 나라고 생각했지만 아닌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나의 거칠고 자유로운 부분을 스스로 판단하고 억압해 오면서 불편해 했던 것을 인정하게 되었고, 그것을 긍정적으로 표현해 주면서 편안해지고자 했다. 이는 ‘옳고 그름’ 이라는 판단기준을 내려놓고 나를 자유롭게 해주는 하나의 방편이었다. 스스로 제대로 받아들이지도, 표현하지도 못했던 나의 부분은 이러한 글씨쓰기를 통해 자유로워지고 조화로워지고 있었다.
‘나의 그림’에 대한 고민
이러한 선 작업은 나에겐 공부나 수행같이 기본적으로 꾸준히 해 나가는 거였고, 이런 것을 하면서 동시에 내가 좋아하는 풀, 꽃, 나무 같은 자연물을 그리거나 여행에서 경험했던 즐겁고 따듯한 기억들을 그리곤 했다. 이런 걸 그릴 때는 다양한 도구들을 실험했는데 아크릴, 과슈, 수채화, 오일파스텔, 펜화, 압화 꼴라쥬, 지우개도장, 수묵화, 분채작업이 그 예이다. 이런 그림은 대부분 알록달록하고 아기자기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데, 한편 이것만으로는 나를 다 표현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마치 외부에 잘 보이고 싶어 내가 타협한 모습을 보여주는 듯 했고, 그래서 진짜 나는 누구이고 어떻게 그걸 표현해야 할지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그리고 그 답을 찾아가는 데에는 석창우 화백님이 도움을 많이 주셨다.
“사람들이 이해하리라 생각은 하지 마
내가 내 맘속에서 나오는 그대로 표현해
사람들에게 작품을 맞추면 그것은 죽은 그림이야
아무 눈치 보지 말고 내 내면에서 하고자 하는 것을
내 눈치도 보지 말고 마음껏 표출해
외적인 생각을 내면의 소리라고 단정 짓지 말고
정진을 하고나서 심장이 하자는 대로 혀“
- 석창우 화백
글씨의 선으로 그림 그리기, 편안한 느낌의 추구
그래서 지금까지 내가 추구해 온 다양한 작업들을 하나의 그림에 담으면 어떻게 될지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내 마음 속의 불같이 거칠고 자유로운 부분을 대변해줄 서예의 먹 선과, 아기자기하고 따듯한 느낌의 상징적 이미지들이 조화롭게 섞일 수 있다면 내 가슴이 만족을 느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는 꽃, 나무, 집, 사람, 구름, 새, 물고기, 도마뱀, 풀 같은 좋아하는 이미지들을 추상적이고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배합하면서 그 속에 내 내면 깊은 곳의 느낌을 담아내고자 했다. 그것은 결국 자유로움과 편안함 이라는 느낌이었고, 그 느낌에 다가가기 위해 이러한 과정들을 거쳐 온 거였다. 이때의 편안함은 안락한 소파위에 앉았을 때 느끼는 육체적 편안함과는 달랐다. 이는 내가 여행에서 경험했던 삶과 죽음이 이어진 야생 공간, 히말라야 산맥과 티베트 고원, 러시아 알타이의 거칠고 장엄한 자연을 닮아 있었다. 이러한 공간이 나의 본질과 직관적으로 맞닿고 있기에 그것을 받아들이며 표현할 때 편안하게 느껴지는 듯 했다. 그리고 이 속에서 신나게 노는 생명과 이곳에 지어진 아늑한 작은 집을 떠올렸다.
그림 그리기를 반복하면서 이미지는 점점 더 단순해졌고, 선은 점점 다가가고자 했던 본질에 가까워 졌다. 그러며 무언가를 감싸는 손과 그 안의 자유로운 꽃이나 구름 이미지가 남게 되었다. 기도하는 손에서부터 시작된 감싸는 손을 그리면서는 내가 나의 내면을 감싸준다는 느낌을 담기도 했고 동시에 나를 감싸는 신의 손길을 떠올리기도 했다. 꽃을 그리면서는 내 내면의 정수를 떠올렸고, 내면의 풍요와 자유로움이라는 느낌이 들어가길 바랐다. 매롱을 하는 구름은 모든 희로애락을 농담처럼 비껴갈 수 있게 된 편안하고 즐거운 영혼의 상징으로 넣었다.
이러한 가슴 속 이상을 그려가는 걸 통해 매일의 일상에 긍정적인 기운이 더해지길 바랐다.
내 안의 쉼을 통해 소통하기
2010년 여름부터 시작해 내 내면과 그림에만 집중하며 지내며. 그 사이 난 내가 원래의 목적과 가까워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쉼을 주고 싶다던 나의 바람은 내가 내 안의 쉼을 그림을 통해 찾아감으로써 다시 내 앞으로 돌아왔다. 내가 그림을 통해 찾은 편안함과 자유로움은 결국 일상 속의 나의 내면에 균형과 조화를 가져다주었고, 이는 나에게 휴식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다.
이 그림들을 보고 내면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시원함, 편안함, 즐거움 같은 걸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내 내면의 여정을 통해 발견한 것들이 다른 사람들 안에서도 빛날 수 있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