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蘭)-여름의 기억, 46.5x 47 x 2cm, 장지에 채색, LED, 2013
● 작가: 조은령
● 전시명: 난(蘭)의 기억
● 장소: 서울 종로구 인사동 23-2 리서울갤러리
(인사동4거리 새마을금고 안쪽 전용엘리베이터 2층)
● 기간: 2013년 7월 3일(수)~ 7월 9일(화)
● 시간: am10:30~pm6:30
● 오프닝 : 7월 3일(수) 오후 6시
● 문의: 02-720-0319, leeseoul@hanmail.net / www.leeseoul.com
새야 새야 - 난(蘭)의 기억, 25x35x4cm, 장지에 먹, 2013
공간을 가르며 떨어진 난 잎의 그림자가 하늘거리는 것을 보다 보면, 그 잎사귀의 흔들림이 기억이 되어 쌓여서 난의 형상이 혹은 대나무의 형상이 굳혀진다. 물고기를 보다보면 쉼 없이 물살을 가르는 물고기의 움직임이 쌓여서 그 물고기의 형상으로 드러난다.
새야 새야 - 4월의 기억, 93 x 62 x 3cm, 장지에 채색+LED, 2013
나는 蘭 , 대나무가 형으로 드러나는데 오랜 기간의 시간이 쌓이도록 작업한다. 오늘은 잎사귀 몇 개, 다음 날은 또 바뀐 잎사귀의 자리를 찾아내서 달라진 거기서부터 그린다. 기억의 사이와 사이에 끼어드는 공간의 기억들- 창문으로 들어온 햇살, 지나간 바람, 웃음소리들, 한숨과 아쉬움의 기억들을 쌓아서 한포기 난과 한줄기 대나무로 화면에 ‘形象化’하고 있다.
난( 蘭) -여름의 기억, 535. x 47x 3cm, 장지에 채색+LED, 2013
벚꽃은 졌고 아카시아 꽃이 다시 지는 계절이다. 이 꽃잎들이 떨어져 내리는 그 몇 초는 지나간 수십 년의 기억이 머릿속을 지나가는 순간이기도 하고, 손을 내밀어 잡기에도 모자란 시간이기도 하다. 나는 이렇게 상대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 끼여 있다.
새야 새야 - 난(蘭)의 기억, 53.5 x 47 x 3cm, 장지에 채색+LED, 2012
새야새야-난(蘭)의 기억, 장지에 먹, 35x 25 x 6cm, 2009
조은령(Cho Eun-Ryoung, 曺恩玲)
‘91,2 서울대학교 미술대 동양화과졸업
‘95,8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원 동양화과졸업
현재
서울예술고등학교
*개인전
2013, 6 난(蘭)의 기억(리서울 갤러리, 서울)
,10,2 書架에서 기억의 그림자를 만나다. (SPACE MOVIN)
‘08,5, 현실의 틈,기억의 흔적 (GS갤러리’THE STREET' )
‘08,9-10,내 마음의 은유 (신한 private bank, art n’ company)
‘94,3 제1회 개인전 (관훈갤러리 1층)
*그룹전
‘11, 9,14-18 Shanghai Art Fair
‘11,7.1- 7,15 , 變.奏 한국주상해문화원 4주년 특별전
‘10,10.,’13,3 식물정원, 오사카,HYATT. GALLERY ART PROJECT
‘10,1.13-4,23 HAPPY NEW YEAR FROM THE EAST (Tacoma Contemporary Woolworth Window, Washington,U.S.A.)
2000-2012 분분합합
2000-2012 이원전
2010-2012 한국화회전 외 다수
작업 노트 1
어떻게 지내왔는지 내일은 또 어떻게 살아가는 건지, 나이가 들면 확실한 뭔가가 생길 줄 알았다. 그러나 여전히 불안한 하루하루...
아침에 눈을 뜨면 흰 벽에 떨어지는 난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또 다른 하루, 또 그런 하루임에 안도하고 절망한다. 벚꽃은 졌고 아카시아 꽃이 다시 지는 계절이다. 이 꽃잎들이 떨어져 내리는 그 몇 초는 지나간 수십 년의 기억이 머릿속을 지나가는 순간이기도 하고, 손을 내밀어 잡기에도 모자란 시간이기도 하다. 나는 이렇게 상대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 끼여 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떳떳하게 드러내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을 조선시대, 임금이나 사대부에게는 당당히 펴 놓고 마음을 기울일 수 있었던 것이 ‘蘭’이고 ‘竹’이었다. 그 과거에 ‘눈으로 보고 그것을 그린다.’는 것은 지금의 ‘눈으로 보는 것을 그린다.’와는 사뭇 다른 경험의 산물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만의 울타리 안에서 난초 몇 촉, 대줄기 몇 가닥에 ‘眞 ’을 구현하고 ‘道’를 드러내려했다. 평생 ‘自得의 眞實性’을 굳게 믿으며 말이다. 나도 그렇게 믿고 싶다. 사진으로 굳어진 한 장면을 재현하는 것이 아닌 그들의 작업방식을 따라 가고 있다.
공간을 가르며 떨어진 난 잎의 그림자가 하늘거리는 것을 보다 보면, 그 잎사귀의 흔들림이 기억이 되어 쌓여서 난의 형상이 혹은 대나무의 형상이 굳혀진다. 물고기를 보다보면 쉼 없이 물살을 가르는 물고기의 움직임이 쌓여서 그 물고기의 형상으로 드러난다.
나는 蘭 , 대나무가 형으로 드러나는데 오랜 기간의 시간이 쌓이도록 작업한다. 오늘은 잎사귀 몇 개, 다음 날은 또 바뀐 잎사귀의 자리를 찾아내서 달라진 거기서부터 그린다. 기억의 사이와 사이에 끼어드는 공간의 기억들- 창문으로 들어온 햇살, 지나간 바람, 웃음소리들, 한숨과 아쉬움의 기억들을 쌓아서 한포기 난과 한줄기 대나무로 화면에 ‘形象化’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사는 세상은 시뮬라르크의 시대이다. 복제물 속에서 원본을 상상하는 것이 오히려 쉬운 시대이다. 눈을 뜨고 세상을 내다보면 복제물의 파편들이 다시 재결합되어 등장해있다. 인터넷을 통해서 혹은 스마트폰을 통해 자료는 확산되고 쌓여서 정보는 홍수를 이룬다. 세상이 너무 쉽고 너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원류를 상실한 복제물 들은 새로울 것도 없으면서 지속성을 갖기는 더 더욱 어렵고 곧 잊혀 진다.
나는 그 빠른 속도 속에 살면서 쉽게 얻고 쉽게 잊는 것에 지쳐간다. 그럴 때 蘭 잎을 만지며 시름을 늘어놓았을 屈原을 떠올리고, 그려야 할 대나무는 그리기 싫은데 그려달라고 쌓인 비단에 푸념을 늘어놓는 文同과 위로하는 蘇軾을 떠올린다. 이렇게 세상과는 다른 속도로 작업하면서 하려는 이야기는 사회적인 이슈를 드러내는 것도 , 트랜드를 끌어갈 그 무엇도 아니다. 작은 풀 한 포기가 나와 함께 했던 시간을 이야기로 내 놓는 것이다. 정지된 화면 속에서 무수한 이야기를 읽어내고 시간을 기억해내기를 바란다. 나는 그렇게 상대적인 시간을 화면에 부여하고 있다.(2013년 5월 8일)
작업 노트 2
나의 작업은 대상에 대한 기억과 현존과의 공존에 관한 관심에서 시작되었다.
물 빠진 논에 핀 자운영 꽃 위로 드리운 구름그림자에서 비롯된 ‘구름그림자’ 시리즈도 그렇고 새와 그 공간에 대한 기억에서 비롯된 ‘새야, 새야’ 또한 나의 가장 개인적인 경험과 그 것에 관한 기억, 그리고 그것이 비집고 들어 와 있는 현존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축적된 기억의 결합체로 대상을 파악함은 가장 전통적인 동양의 정신을 담고 있다 생각한다.
나의 작업이 전통적이라 한다면 그 것은 재료의 사용과 그리는 방식을 말하는 것만이 아니라 대상을 파악하는 ‘눈’ - ‘시 방식’에 있어 가장 전통적인 방식을 계승하고 있다는 점에서라고 생각한다. 즉 전통의 산수화에서 산점시점이 적용되었다면 그 것은 산의 그림은 당연히 그 산을 그리는 사람이 경험한 산의 자락에서 산 정상까지의 감상을 담고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비롯되었듯이, 나 또한 대상을 내가 경험한 기억의 집적으로 드러내려 한다.
이번 전시의 작업은 난 혹은 대나무를 주 대상으로 하여, 그에 대한 감상을 한 순간의 관찰이 아닌 시간의 흐름 속에서 기억과 현 순간의 공존이라는 점에서 파악하려고 한 작업이다.
빈자리로 남겨진 새의 형태는 새의 부재이면서 새가 떠나간 기억이라는 점에서, 붙여진 새의 형태 속에는 새의 이전 기억이 담기는 점에서 기억과 현실의 공존을 드러내는 이전의 작업이 지속 되었다.
한 포기의 난은 화면에 의해 끊기었다 이어지면서 시각적 균일감이 깨진다. 화면과 화면은 좁은 틈을 갖고 있다. 대상은 연속적인 듯 보이지만 하지만 미묘하게 어긋나는 면과 높낮이를 달리하면서 갖게 되는 표면의 굴곡을 따라 굴절되어 드러난다. 즉 ‘대나무’ ‘난’ 이라는 전통회화의 가장 익숙한 형태를 가진 대상은 익숙한 형태를 갖고 있음에도 불편하게 보이는 것이다. 기억의 흔적들은 도처에서 이렇게 비집고 들어와 현재 눈앞에 보이는 쉬운 대상을 복합적으로 보이게 한다. 그 불편함 속에 드러나는 기억 역시 정지된 무엇이 아니라, 경험하는 시간 속에 변해가고 현재의 영향을 받는 무엇인가이다.
즉 여기에 한포기, 한줄기의 난과 대나무는 시간 속에 나의 ‘눈’에 쌓인 ‘기억의 集積’인 것이다. ‘胸中成竹’이란 말이 있다. 마음속에 온전한 ‘상’을 이룬 후에 그림이 그려진다는 것이니 굳이 대나무에 대한 지침만은 아니다. 그러나 내게는 아직 온전한 하나의 상으로 대상이 자리 잡고 있지 못 하다. 잎사귀가 흔들리면서 보았다했던 순간에 또 다시 흩뿌려지고 다시 맺히는 ‘상’을 쫓는 작업들이 지루하게 이어졌고 이제 그 집적들을 늘어놓으려 하는 것이다. 그 속에서 누군가는 대상의 ‘眞’을 찾기를 바라면서...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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