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영 개인전: 큰 것, 작은 것, 넓적한 것의 속도
▶ 전시기간
- 2013년 9월 13일-11월 17일
- 화-일요일 오전 11시-오후7시,
- 금요일 오전 11시-오후 8시,
- 월요일 휴관
▶ 전시장소
- 일민미술관 1, 2 전시실
▶ 관람료
- 일반2000원, 청소년1000원
▶ 오프닝
- 9월 12일 목요일 오후 5시
▶ 아티스트 토크
- 9월 27일 금요일 오후4시 자세히 보기
“큰 것, 작은 것, 넓적한 것의 속도” – 정서영 전
시시각문화를 통한 인문, 문화적 담론을 만들어내는 것에 주력해 온 일민미술관(관장 김태령)은 동시대 미술 작가에 주목하는 개인전으로 작가 정서영의 < 큰 것, 작은 것, 넓적한 것의 속도> 전을 선보인다. 정서영은 1990년대 초중반부터 한국 미술계에서 본격적으로 “동시대 미술”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 미술적 변화의 증후를 보여줬던 작가로, 형식에 대한 근원적인 사유를 보여주는 작업을 조각, 설치, 드로잉, 퍼포먼스 등의 다양한 방식을 통해 지속해 왔다. 이번 전시의 제목인 < 큰 것, 작은 것, 넓적한 것의 속도> 는 올 1월 출간된 작가의 책(『큰 것, 작은 것, 넓적한 것의 속도』, 정서영, 김현진 지음, 현실문화, 2013)과 동명으로, 이번 전시에서는 책에서 다루고자 했던 작가 정서영의 조각가로써의 사유와 그 면모에 집중하려는 의도로 기획되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조각을 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라는 근원적이고 인식론적인 질문을 드러내는 작품을 통해 조각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이것은 전통적인 장르라 할 수 있는 조각을 통해 작가가 성취해 내는 하나의 미학적 정치라고 할 수 있다.
조각의 존재에 대한 인식론적 접근
지난 몇 년 간 작가는 조각에서 나아가 다양한 장르나 매체를 통해서도 ‘조각적 세계와 차원’을 탐색하고 구현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새로이 선보이는 14 점의 작품들에는 조각 작품 외에도 3 채널 퍼포먼스 비디오 영상 설치, 드로잉, 포토콜라주, 사운드 베이스 퍼포먼스 등 매우 다양한 방식의 작업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 작업들을 관통하는 것은 모두 조각적 차원과 영역에 대한 사유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전시의 제목 < 큰 것, 작은 것, 넓적한 것의 속도> 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문장은 얼마나 크고 작은지, 얼마나 넓적한 지, 속도는 실제로 어느 정도 빠르고 느린지, 어떤 물리적인 움직임인지 혹은 심상의 움직임인지 등을 전혀 정확히 가늠하기 어려워 상당히 모호하게 다가온다. 여기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어떤 크기나 모양을 가진 것의 물리적인 차원이 빠르거나 느리게 움직이는 상황이라는 것뿐이다. 이것을 작가의 작업 환경에서 생각해본다면, 어떤 크기의 물체가 만들어지는 속도 속에 놓여진 상황이라는 것은 다시 말해 바로 ‘조각’이 이루어지는 상황이자 순간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즉, 이 제목은 바로 조각이 행해지는 내밀한 세계와 그 순간을 지시한다.
일반적으로 시간, 소리, 움직임을 이용하는 영상이나 퍼포먼스 영역이 가지는 동적이고 비물질적인 속성과는 달리 조각은 정적이고 물리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조각을 행하는 시간과 조각이 존재하는 시간, 그리고 작가가 그 조각 영역의 사물적인 세계를 인식하는 세계는 정적이고 물리적인 것을 넘어선 하나의 사소한 요소와 세부들까지를 모두 구분하고 그들의 관계를 숙고하는 비결정적인 시간들의 연속이자 공간적인 세계 – 즉, 그리하여 정동의 흥미로운 긴장이 오고 가는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조각적 차원을 작가는 바로 퍼포먼스, 사운드설치, 그리고 텍스트 드로잉, 포토콜라주 등에서도 추구하고 있는 것이며, 이로서 조각가로서의 자신을 좀 더 반성적으로 살피고 사물을 만드는 제작적 매너리즘에 구속되지 않도록 보다 근원적이면서도 자유로운 조각적 사고를 추구하면서 조각의 물질성으로부터 주어지는 한계를 조각 외부에서 극복해 내고 있다. 이처럼 장르나 매체에 구속이 없이 조각적 세계를 사유하면서도 특유의 미학적 실현을 보여주는 정서영의 근작과 신작들은 오히려 정서영의 조각가적 확신을 드러낸다. 조각의 문제를 사고하는 작업들, 조각영역에 대한 질문으로 환원하는 작가의 메타적 사유, 그리고 그 내부에서 분투하는 작가의 끊임없는 시간에 대해 말하는 이 전시는 관객에게 전통적인 조각 장르의 영역을 동시대적으로 새로이 인식하는 하나의 진지한 계기를 제공할 것이다.
나는 어떻게 나의 작업이 지금의 이 시간에 이르렀는지 그리고 이 시간을 어디까지 더 흐르게 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이 세계에서는 더 이상 농담만 할 수도, 정의로울 수만도, 날카로울 수만도, 아름다울 수만도, 죽을 수도 없다. 그래서 구분하고 구분하는 일을 하기로 했다. 이것과 저것, 이것들 저것들 사이에 무겁게 내려 앉은 위계의 무의미함이 드러날 때까지. 권력적 언어로부터의 자유를 얻어내려는 노력과 내가 사는 세계의 불투명함, 그리고 불쾌하고 못생기고 위험하고 때로는 무자비한 그 곳, 그 시간을 통과하면서 선택하고 선택하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이다. 그 선택을 위해 중요하게 살펴보는 것은 작품에, 그리고 작품과 더불어 등장할 모든 물질적, 비물질적 요소의 역할과 소비이다. 새로이 찾아낸 역할과 흥미로운 예술적 소비를 위해서는 현재를 세분화하고 비약하는 것이 필요하다.작가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