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상 展 - 적막-은밀한 소환
미술
무료
마감
2014-03-19 ~ 2014-04-02
카메라와 사진은 회화와 달리 고유의 재현 기록을 가능하게 한 근대의 발명품이다. 이후 사진은 회화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예술장르로서 인정받고 자리잡게 되었다. 그러면서 사진은 기술의 발전과 함께 다양한 형태로 변화하며 놀라운 성장을 거듭해왔다. 컬리 디지털 사진이 주목받고 있던 흐름 가운데 최근에는 새로운 변화가 감지되고 있는데 사진의 기본이자 전통이라 할 수 있는 흑백 사진의 가치가 재조명되어 새롭게 평가받고 있다. 그 예로 세계에서 가장 큰 국제사진페스터벌인 < 아를르 사진 축제> 가 2013년 올해의 주제로 ‘흑백사진의 아를(Arles in Black)’을 선택하였다. 이런 흐름에 발맞춰 노암갤러리는 30여년을 한결같이 흑백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작품을 제작해온 이희상 작가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3월 19일부터 4월 2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 ‘적막-은밀한 소환’은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생물과 사물 그리고 그들의 은밀한 이야기에 접근하는 작가의 날카로운 시선을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버려진 것, 하찮은 것, 돌보아지지 않는 것들에 주목하여 애잔하고 스산하고 가련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작가는 보잘 것 없어, 스윽 지나쳐가도 무방할 듯 보이는 일상의 풍경들을 놓치지 않고 멈추어 서서 그들이 갖고 있는 생명의 리듬을 렌즈에 담아 탄생시킨다.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시선은 항상 정면만을 향하지 않으며 주목하지 않던 보잘 것 없는 것들이 그의 비껴간 시선 속에서 새롭게 피어난다..
그의 사진에는 땀 흘리는 둥근 물체 그리고 그 위에 섬광처럼 흩어지는 불빛의 형상, 여인의 거슴츠레한 눈동자, 그리고 무엇보다 마른 진흙땅에 오롯이 홀로의 의지를 드러내는 흙투성이 신발등이 담겨있다. 그의 작품의 묘사를 통해 그의 작품세계 밑바닥에 흐르는 정조와 그의 시선을 감지할 수 있다. 그의 시선은 그어놓은 경계선을 넘어선다. 선 밖은 자유로우나 안전하지 않지만 그 선 밖의 불안 속에서 이희상은 묵묵히 따라가며 조용히 사진 속에 고스란히 그 감정들을 녹여낸다. 선 밖으로 나아간 자는 불안과 고독과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그 길을 이희상은 묵묵히 기꺼이 따라간다. 그리하여 자유로운 사진이 아니라 ‘사진적인 자유’를 추구한다. 그가 선 밖에서 획득한 자유에는 선 안에서 누릴 수 없는 풍요가 있다. 그래서 아이러니컬하게도 불편하게 편안하다. 차갑게 따뜻하다. 외롭게 함께 있다. 선 밖으로 나간 자에게만 주어지는 예기치 않은 미학적 그리고 윤리적 선물이다.
작가는 30여년동안 한결같이 젤라틴 실버 프린트라는 한 가지 방식으로 작업을 고수해 왔다. 한 가지 작업 방식에만 매달려온 그의 흑백 프린트에는 아날로그 고유의 ‘느림’과 함께 사진가의 온기가 녹아들어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하여 우리는 급격한 디지털화 속에 잊혀진 사진이 가지는 진정한 힘을 돌아볼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