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열 展
그렇지 못한 것들 the others
the others_플라스틱에 도장, 의자다리_70x40x150cm_2012
오!재미동 갤러리
OH!ZEMIDONG GALLERY
2014. 7. 7(월) ▶ 2014. 8. 2(토)
서울시 중구 충무로4가 125 충무로역사내 충무로영상센터 | T.02-777-0421
the others_플라스틱에 도장_90x50x90cm_2014
욕망의 집-‘몸’을 향한 응시
김현진 큐레이터
몸은 문화의 대리물로 작용하는 기호다. 존재의 현존을 구성하고 드러내는 ‘육체적 실체’의 차원을 넘어 오늘날 우리의 몸은 그것을 통해 타인을, 세계를,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를 지각하고 규정한다. ‘영혼을 담아내는 집’으로서의 과거의 몸에서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함의하는 문화적 기호로의 변화다. 그 과정에서 개별적 개인성은 삭제되고 전형성만이 남았다. 그리고 전형들은 기표가 되어 복잡하고 난해한 해석의 대상으로 자리잡았다. 짧은 교복, 긴 머리, 어설픈 화장, 금기, 일탈, 성적 대상 등 다층의 의미가 뒤얽힌 여고생의 전형성과 기표 같은 것이 그 예이다.
김선열은 사회적 시각을 반영하는 문화적 산물로서의 몸을 탐구한다. 그가 제시하는 몸은 인간성이 제거된 ‘물질’이다. 신체의 말단 부분을 제외하고는 거품의 입자 혹은 지방세포로 빼곡히 뒤덮인 비대한 몸은 영혼의 부재를 선언한다. 비어있는 공간에 김선열은 대신 욕망을 채워 넣는다. 소멸이 전제되어 있는 거품의 구조일지언정 그 내면은 뜨거운 욕망으로 들끓고 있다.
그러나 무한증식할 듯 보이는 거품들은 순식간에 꺼질 수 밖에 없는 속성 탓에 그 안에 담긴 욕망조차도 덧없다. 덧없음의 근원적 이유를 찾아가자면 그 욕망이 실은 타자의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나를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타자의 영역에서 보여지는 응시의 대응물로서의 나의 모습인 탓에 그것은 불온하고 위태롭다. 게다가 완벽한 몸에 대한 갈망을 현실화시키기 위한 이 시대의 갖가지 전략들은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자신감을 부여받기 위한 방법으로 외모를 바꾸는 과정에서 나의 실체는 철저히 거부되고 심지어는 제거되어야 하는 증오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린다. 스스로를 대상으로 소비하면서, 욕망과 집착이 서로를 복제하는 거품에 포위당한 김선열의 버블바디는 그래서 반짝일수록 잔인하고 화려할수록 섬뜩하다.
얼핏 공산품처럼 보일 정도로 완벽하게 처리된 표면과 강렬한 색감은 달콤한 욕망의 서식지로서의 몸의 은유를 강렬하게 드러낸다. 탐스러운 포도송이의 색깔과 형태를 한 절단되고 파편화된 신체, 멋지게 쪼개지는 근육 대신 풍성한 몸매를 짐짓 자랑스레 내세우는 비만 트로피는 시니컬한 농담일 수 있지만, 가만 들여다보면 정교하게 계산된 전략일 수도 있다. 완벽한 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기준은 가히 폭력적일만큼 절대적이어서 어쩌면 이와 같은 신체의 노골적 비루함이 도리어 그 욕망의 천박한 속살을 헤집을 수 있는 날카로운 그 무엇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선열은 자신이 속한 세상의 맥락 속에서 우리의 몸을 바라보되, 세상의 시선과는 다른 방향으로 자화상을 구축하기를 시도하고 있는 듯하다. 세상의 기표들을 향한 욕망과 불안, 응시의 굴레로 끌어안으면서 능청스러운 유머로, 때론 강박적인 치밀함으로 이 시대의 ‘욕망의 집’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 오렌지 칼라로 빛나는 버블바디 작품은 (‘the others' , 2013) 더 이상 덧없이 증식되어가다 스러지고 마는 허망한 욕망 덩어리가 아니라, 엄연한 실존을 선언하듯 땅 위에 두 발을 박고 선 당당하고 견고한 또 다른 의미의 존재로 다가온다.
the others_플라스틱에 도장, 의자다리_70x40x150cm_2012
영원한 승자는 없다_플라스틱에 도장, 트로피_55x30x55cm_2013
the others_플라스틱에 도장_30x30x55cm_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