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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이민 가지 마세요
광고/그래픽/편집 마감

2004-08-03 ~ 2004-08-24


이민가지 마세요. 고정민_김학량_오동권展

-행사명: 이민가지 마세요. 고정민_김학량_오동권展
-장소: 갤러리 정미소
-문의: 743-5378


전통회화(혹은 수묵화, 또는 동양화)라는 것이, 평상 호흡과 더불어 생동하던 살림살이 공간을 떠나 현대적 개념의 제도적-중성의-하얀-사각공간 안에서 새롭게 정의되기 시작한 지도 어언 80여년이다.
헌데 그 짧지 않은 세월, 우리 선배들은 전통/현대, 동양/서양, 한국/서양 따위의 이분법 안에서 상대(이른바 서양화)의 존재에 힘입어서만 겨우 연명해온 셈이 아닌가?-이른바 전통의 형이상학적 修辭들이 씌워준 우산 아래 움츠려있다.

그러니 몇몇 안목을 빼고는 제도적-중성의-하얀-사각공간 안에 슬쩍 기생은 했으되 스스로를 새롭게 정의하는 일은 그만큼 버거웠을 것이다. 다행히 최근 30대 초반 작가들 숲에서는 전통 수사와 거기에 딸린 이미지들의 형이상학적 권력을 비평하는 작업이 나오고 있어서 다행이기는 하다. 이 작업-전시는 완성품들의 시위가 아니고, 작가와 작업이 쭈뼛쭈뼛 서로 눈치보고, 어눌하게 대화하기도 하고, 상대 기분을 엿보고 하는 과정으로서만 정미소에 존재한다. 시각이미지들은 정미소 벽이나 바닥, 천장 등에 가설적으로 드로잉되어 있고, 계약 기한이 다하면 그냥 지워진다.
이른바 동양화(혹은 한국화라는 기이한 별명을 가진 어떤 제스처)와는 동떨어진 데서 작업해온 고씨ㆍ오씨와, 족보상으로는 동양화과 출신인 김가가 '타협'하며 저지르는 이번 일은, 일관된 주제탐구의 결과물을 제출하는 정격 전시라기보다는 일종의 실험이고 가설이며, 각자 평소 작업에 대한 의도적인 재배치에 가깝다.
고씨는 거대기업들의 상표를 수집하여 풍경의 맥락으로 재구성하고, 김가는 신문에 재현된 이미지를 전통회화 문맥으로 끌고 들어가 전유하고, 오씨는 황량한 정미소 안에 폭포나 산, 비행기 등 풍경 이미지를 띄엄띄엄 배치함으로써 정미소와 고씨와 김가에게 좀더 거대한 풍경의 문맥을 부여한다.

셋은 반신반의했다; 누가 먼저 호탕하게 저지르기를 기다렸다. 속은 타면서도 틈을 노리며 짐짓 태연한 척했다. 지금 일주일째 맨날 출근하며 땀범벅 되어 꼬물꼬물 그리고 있다. 우리 셋은 우리 셋하고 정미소하고 셋의 그림들이 서로 뼈와 살이 되어 하나의 방앗간, 하나의 풍경을 이루면 좋겠다고 기대한다.  

■ 김학량 작가노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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