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영과 그의 가족들
-행사명: 김종영과 그의 가족들
-장소: 김종영미술관
-문의: 02-3217-6484
김종영 선생은 3000여점의 소묘를 남겼는데 그 중 300점이 가족그림입니다.
그가 왜 그토록 많은 가족그림을 그렸나 하는 까닭은 따로 언급된 말씀이 없어서 정확히 알아낼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림의 성격으로 보아서 초상으로서의 관심은 아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조형탐구의 한 방편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히 인체탐구의 방편으로 가족이 선택되었다고 생각된다하는 것입니다.
노모(老母)와 또 수많은 자화상을 비롯해서 부인과 자녀들 즉 늘 함께 생활하고 있는 이들이 모델이 된 것입니다. 아주 자연스러운 연구 방식입니다. 반·고호가 가까운 이웃들을 그린 것이나 세잔이 집 근처의 자연을 그린 것이나 김종영 선생이 마루에 앉아서 건너편 북한산과 돈암동 판자촌을 그린 것이나 다 다를 바가 없습니다.
런던에서 있었던 「무명정치수를 위한 모뉴망」에 출품한 변을 스스로 적어 놓은 말이 있습니다.
“나는 영국에 출품한 이 작품에 대하여 그 여인이 정치수인가 정치수를 생각하고 있는 여인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내가 여인의 나상(裸像)을 취재한 것은 표현을 위한 수단인 것뿐이다.
다행히 내 정신이 살아 있다면 정치수를 위해서 모조리 바치고 싶은 것이다” 여기에서 시사하고 있는 예술가의 정신을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자화상등, 온 가족들을 300장이나 남겼다는 것은 범상히 넘길 일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세계미술사를 다 훑어본다 해도 보기 어려운 일 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내 정신이 살아있다면 정치수를 위해서 모조리 바치고 싶은 것이다” 이 말을 바꾸어서 “다행히 내 정신이 살아있다면 가족들을 위해서 모조리 바치고 싶은 것이다” 자연에 대한 사랑, 가족에 대한 사랑, 그것이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과 동질화되는 현상을 우리는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김종영 선생의 가족그림들은 다른 소묘들과 모든 면에서 특별히 구별지을 필요는 없습니다.
형태연구의 한 방식으로 가족이 선택 되었다는 데에 흥미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형식으로 그때그때의 형편에 따라 양식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그의 그림들은 그의 조각 작품들처럼 훌륭한 조형미를 실현하고 있습니다.
일찍이 묘사의 단계를 졸업하고 모든 가족그림들은 예술로서의 특출한 세계를 이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연필그림, 수채그림, 펜그림, 먹그림 등은 그것 자체로가 가족의 얼굴이면서 예술의 차원으로 승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독립된 예술양식으로 성공하고 있다는 데에 특별히 유의해야합니다.
작품을 만들기 위한 밑작업이 아닙니다. 조형훈련의 한 방식이며 그것이 예술로서의 확실한 장르를 실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댕이나 마티스를 굳이 연상하지 않더라도 김종영의 소묘를, 그 독자적인 예술양식을, 보기만하면 그것으로써 우리는 족한 것입니다.
다양한 방식 유창한 기예(技藝), 이른바 골법용필(骨法用筆), 입신(入神)의 명기(名技)를 우리는 그저 관상자로서 보기만하면 됩니다. 세기의 명장, 그의 정신을 그저 음미하는 것으로 족하다 하겠습니다. 아름다움이란 오묘한 것입니다. 우리는 한 예술가의 가족그림을 보면서 그것을 느껴볼 수 있습니다.
■ 김종영미술관장 최종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