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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되고 살이되는 이해민선展
기타 마감

2005-04-15 ~ 2005-04-27




돼지는 억지로 찌운 살이 통통히 오르면,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며 도살장으로 끌려간다.
그 곳에서 온 몸이 난자당할 때 처절한 비명소리를 지른 후 맛 좋게 잘려진 제 고기를 누군가에게 내 놓는다.
그 고기를 먹는 누군가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잘근잘근 씹어 넘긴 후 자신의 살을 찌우는데 도움이 될 거란 생각을 할 것이다.
이 모습은 마치 사디즘(sadism)과 마조히즘(masochism)과 같은 어딘가 모르는 폭력적인 사랑의 관계를 연상시킨다. 멸치는 어떠한가?
한가롭지야 않겠지만 제 맘대로 바다를 헤엄치던 멸치는 뭍으로 나와 그들의 사랑을 실현한다. 멸치국물을 우려낼 때 끓는 물 속에 통째로 몸을 내던져 그 안에서 이리저리 춤을 추고 키스를 하며,
-이 모양새는 제의적이기까지 하다.
- 자신들이 가진 마지막 양분까지 아낌없이 내어준다. 모든 것을 다 소진한 뒤에 남는 것은 누렇고 진한 육수이다. 이 육수를 먹으며 속까지 다 시원하다는 감탄사를 내뱉는 사람을 보며 멸치는 흐뭇해 할 지도 모르겠다.
정말로 눈물나는 아가페(agap)다. 이 두 가지 존재가 보여주는 사랑의 방식은 급격한 속도로 하나의 소실점으로 모인다. 소실점에서 상반된 사랑의 결합으로 탄생한 것이 정체모를 핑크색 합성동물이다.


입맛을 돋궈주는 핑크색으로 억지로 칠해진 머리 없는 동물들은 너무나 슬프다.
머리도 잘리고 얼떨결에 핑크색까지 뒤집어쓰고 게다가 몸은 벽에 딱 붙어 도저히 움직일 수도 없는데다 중력을 이겨내느라 허리까지 아프다.
타인의 비뚤어진 애정으로
-아니면 자신의 비뚤어진 사랑일지도...
- 잔뜩 상처받은 채 머리도 없이 헤매는 불쌍한 동물들에게 애정 어린 목소리로 골수까지 다 빼준 멸치가 말을 건다.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라도 네 머리가 되어줄게’ 라고.
정말 위로가 될까? 위로를 해준다고는 하지만 그 모습은 너무나 기형적이다. 어쨌든 이들은 멸치 대가리를 떡하니 달고서 말없이 벽에 붙어있다.

어떤 식으로든 아름답게만 포장되는 사랑, ‘다 피가 되고 살이 된다’ 는 사랑의 경험. 전혀 일반화할 수 없는 수많은 개별적인 사랑의 방식들은 그 대상을 어떤 모습으로 변형시킬지 전혀 알 수가 없고, 자신 또한 어떤 형태를 취하고 있는지 가늠할 수가 없다.
어떤 관계 속에서 결국 남아버리는 사랑 아니면 억지로 만들어낸 찌꺼기처럼 남은 사랑이 과연 아름다음으로만 비춰지는 걸까? 사랑으로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상황이 어쩌면 색을 억지로 강요하고 모습마저 기형적으로 변형시킬지도 모르고 그것이 놓여야하는 공간마저 왜곡시킬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기형적으로 바뀐 멸치핑크합성동물을 보고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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