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5-16
'모던하다’의 의미는 더 이상 과거와 미래를 구분하거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모던이란 무엇일까. 동시대 예술가들의 작품을 통해 이 시대 모던의 의미가 무엇이며, 이것이 어떻게 삶과 예술 작품 속에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오는 8월 9일까지 송은 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리는 ‘We Have Never Been Modern : 이탈리아 젊은 작가’展이 그것이다. 한편, 이번 전시는 지난 2012년 시작된 송은 아트스페이스의 국가 프로젝트로 2012년 스위스, 2013년 프랑스에 이어 세 번째로 이탈리아가 선정되었다.
에디터 | 정은주(ejjung@jungle.co.kr)
자료제공 | 송은 아트스페이스
“We Have Never Been Modern”이라는 전시 제목은 프랑스 인류학자 브뤼노 라투르의 동명의 에세이에서 차용했다. 모너니티에 대한 현대적 고찰을 담은 이 에세이의 제목이 암시하듯 사회나 현실에 대한 이야기보다, 22명의 이탈리아 젊은 작가들이 어떻게 현대의 삶과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대해 말한다. 이를 통해 이탈리아 미술계의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2층 전시장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프란체스코 아레나의 ‘3.24 평방미터’는 물품을 운반하는 컨테이너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공간 안으로 들어가면, 두 개의 좁은 방이 등장한다. 이 좁은 방으로 들어서면, 접이식 침대와 담요, 시트 등을 만날 수 있다. 이 작품은 1978년 붉은 여단(1970년에 결성된 이탈리아의 극좌파 테러조직)에 납치된 정치인 알도 모로가 감금되었던 장소로 추정되는 건물을 실물 크기로 재현한 것이다. 작가는 자신이 태어난 해에 일어난 이 사건의 작품으로 옮김으로써 자신의 삶과 사회가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서 표현하고 있다.
3층 전시장에 놓인 루카 트리베사니의 ‘메아리를 들으려면 숲에서 소리를 질러야 한다’는 MDF판과 마르모리노 베니스식 석고를 사용한 장소 특정적 작품이다. 벽과 기둥 사이의 작은 틈 사이에 놓인 그의 퍼즐 조각은 마치 담쟁이덩굴을 연상시키듯 공간 이곳, 저곳으로 퍼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전시 공간 자체를 사적인 공간으로 해석하고, 자신만의 언어로 소통하려는 작가의 의도를 보여준다.
앞의 두 작업이 “사회”와 “공간”이라는 특정한 주제와 관계를 맺는 방법에 대한 해석을 보여줬다면, 모이라 리치의 ‘53.12.20-04.08.10’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어머니를 애도하는 과정을 작품 안에서 그려낸다. 마치 집안에 있는 앨범에서 찾아낸 것처럼, 일상적인 50여 점의 사진이 펼쳐진다. 하지만 가족의 모습을 담은 이 평범한 이미지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통점을 찾아낼 수 있다. 바로 현재의 모이라 리치 본인이 직접 사진에 들어가 어머니의 모습을 관찰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 속에서 어머니의 삶을 돌아보고, 함께 같은 시간을 공유하는 행위를 통해서 타인의 삶과 시간을 온전히 마주하고자 하는 그녀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다양한 장르와 방법론이 등장하고 있는 가운데에서, 현대 예술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가와 작품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는 22명의 작가들의 작품을 하나의 경향으로 연결해내기는 쉽지 않지만, 그들이 작품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확인해봄으로써 동시대의 삶과 호흡하려는 의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