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1-05
한국인의 성품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단어가 있다. 바로 ‘야무지다’란 표현이다. 한국어 사전에서 검색해보면 ‘사람의 성질이나 행동, 생김새 따위가 빈틈이 없이 꽤 단단하고 굳세다’란 뜻이란다. 단단하고 굳세다니. 개인적으로 야무진 사람 하면 꼼꼼하고 허투루 무엇인가 흘리는 법 없이 일을 처리하면서도 동시에 능숙하고 여유로운 느낌이 드는 터라 사전적 의미와 스스로 쌓은 체험적 의미 사이의 작은 간극이 어색하다 느낄 때 ‘야무지다’의 영어 표현이 눈길을 끈다. 스킬풀(skillful) 그리고 스루드(shrewd). 가장 대중적인 영어 사전인 콜린스는 이 두 단어를 뭐라고 정의할까. ‘스킬풀한 사람은 어떤 것에 무척 도사다.’ ‘스루드한 사람은 상황에 대한 이해와 판단이 민첩해 제 것을 알아서 챙긴다.’ 이 두 단어들은 한국어 사전 속 ‘야무지다’에 실생활에서 느끼는 고유한 맛을 절묘하게 더한 감초 같다. 어떤 것에 무척 능숙하고 상황에 대한 이해와 판단이 민첩해 적응력이 남다른 ‘야무진’ 집단을 한국에서 꼽아보라면 크리에이터 직군이 아닐까. 특히 예술과 디자인 쪽은 타고난 성품에 엄청난 연습량까지 더해지니 창조의 결과물 저변에 늘 야무짐이 깔려 있다. 혹자는 손보다 생각이, 정교함보다 신선함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한국의 예술가와 디자이너에게 야무진 손은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다. 개념의 명확한 전달은 물론이요, 사람의 손이 구현한 꼼꼼함과 섬세함의 공예적인 특성이 대두되는 지금 시대에 어떤 것을 안 하는 것과 못 하는 것에는 커다란 간극이 있으니까 말이다.
기사 제공│CA
지난 9월 4일부터 10월 12일까지 홍콩에서 열린
올해 개관 5주년을 기념한 ‘디자인의 달’ 주요 행사로 초청된
컬러 도트와 기호를 결합해 샤넬 향수 병을 표현한 이에스더의 그래픽 작업은 시각적 즐거움을 느끼는 ‘대상’에 해석을 유도하는 작품의 여지를 남김으로써 관객의 흥미를 배가시킨다. 도예 작업을 주로 하는 강준영이 내놓은 회화 연작은 표현의 확장을 통해 메시지를 극대화하는 면에서 회화를 전공한 작가의 작품과 별 차이점이 없다. 게다가 사람을 아찔하게 하는 마티에르와 색채감은 또 어찌하고. 여러 방직법을 수작업으로 구현한 유지연의 따뜻한 니트 작업은 기성 의류 브랜드인 레코드에게 자신의 디테일을 넘겨준다. 폐 낙하산과 헌 의류를 재료 삼아 한국 현대 무용 의상으로 다시 부활시킨 ‘더 화이트(The White)’ 컬렉션은 각기 다른 재질이 몇 겹씩 겹치면서 전달하는 레이어드의 깊이감을 ‘업사이클링 오트쿠튀르(upcycling haute couture)’란 콘셉트로 마무리 짓는다. 조약돌을 넣고 서로 이어 붙인 싸구려 유리컵을 테이블에 배열한 설치 작업을 선보인 최두수는 잡지 한 권을 칼로 오려내 출판물 본연의 색과 질감을 살린 레이어로 높은 밀도의 풍경을 만드는 ‘컷 오프 마운틴(Cut Off Mountain)’, 곡면 TV에서 움직이는 그래픽 작업과 영상 아티스트 정동구과 협업한 도약돌 영상까지 참여 작가 중 가장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는 적극성을 보였다. 이런 매체 확장은 박진우와 밴드 ‘피터팬 콤플렉스’의 보컬, 전지한이 K11 아트몰 광장(Piazza)에 가구를 조합해 구조물에 설치한 후 색색의 조명 아래에서 끊임없이 음악을 틀어대던 ‘가구-가수’ 퍼포먼스에서 그 끝을 이뤘다.
이번 전시에서 눈에 확 띄지 않지만 무척 흥미로운 부분은 전시품과 공간이 만들던 여백의 변주였다. 상대적으로 넓직한 공간에 자리잡은 조그만 오브제들은 언듯 보면 공간에 먹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빛이라는 요소가 실제 공간에 투영되자 오브제가 숨기고 있던 음영이 화이트 큐브 위로 떠오르며 비규칙적인 구성으로 커다란 여백을 잠식해갔다. 그 음영은 형태를 띄고, 서로 겹치며 농도를 보여주고, 작품의 특정 부분을 통해 무아레를 만들며 새로운 디테일로 공간을 채웠다. 특히 여백의 변주가 가장 극적으로 노출된 경우는 전시의 오프닝 이후였다. 사람 붐비기로 유명한 침사추이 역과 바로 연결되는 입구에 자리 잡은 전시장은 마치 쇼케이스처럼 널찍한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무빙 워크에 올라탄 수많은 사람들에게 공개됐다. 그 유리창에 담긴 전시 정보와 시각 요소는 타이포그래퍼 안삼열의 ‘안삼열체’로 구현했다. 2013년 세계적인 권위의 타이포그래피 어워드인 도쿄 TDC 어워드 서체 디자인 분야에서 영어나 일본어가 아닌 한글이라는 자국어로 대상을 탄 ‘안삼열체’는 가로축과 세로축이 극명한 대비를 보이는 헤어라인 영문 서체의 특성을 한글에 맞게 독창적으로 풀어낸 서체. 안삼열체는 비록 전시장에 작품으로 걸리진 않았지만 전시 포스터와 도록, 그리고 무엇보다 각 작가들의 이름을 표시하는 공식 명패의 서체로 물질과 비물질의 경계에서 전시의 정체성을 ‘야무지게’ 묶는 역할을 담당했다. 그의 이름이 아티스트 리스트에 포함될 수 밖에 없는 까닭이다. 단정하고 티없는 금속 그네를 설치한 윤가림의 작품 뒤로 디테일의 대조가 매력적인 유리창의 안삼열체, 그 너머 시시각각 움직이는 행인들의 혼잡함이 만든 풍경은 가장 한국적으로 여백을 메운 이번 전시의 백미였다고 감히 말해본다.
전시의 부제인 ‘거침없이 한국디자인’은 ‘Design Feisty’를 적절한 한국어로 재번역한 것이다. 디테일을 만들어내는 능력과 상상력의 결합으로 거침없이 나아가는 한국의 예술, 디자인의 특성을 부연하는 이 부제는 전시장에서 또 다른 의미를 획득했다. 무빙 워크를 걸으며 유리창 너머로 전시 작품을 바라보던 홍콩 사람들은 전시가 오픈하자마자 하나 둘 씩 전시장에 자유롭게 들락날락했다. 전시를 보기 위해 마음가짐과 옷가짐을 바로 하는 한국식 ‘목욕제계’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동네 마실을 나온 듯 마냥 지나가다가, 혹은 하교나 퇴근 후 집에 돌아가는 여정 중간에 들려 한국 디자인에 대한 관심을 표한 수많은 사람들은 ‘거침없이’란 표현이 꼭 맞는 또 다른 대상이었다. 특히 홍콩을 방문한 여행객이 한 손에는 관광 책자를, 다른 한 손에는 트렁크 손잡이를 잡고 전시장에 오래도록 머무는 장면은 아직도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어쩌면 이번 전시의 부제야 말로 관람객과 전시 작품이 서로에게 서슴없이 다가서는 관계를 가능케 한 ‘거침없는’ 마법의 주문인지 모르는 일이다.
글: 전종현
디자인을 공부하고 글을 쓴다.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를 마치고 월간
<디자인>
기자로 일하다 지금은 독립 디자인 저널리스트로 다양한 온오프라인 미디어에 기고 중이다. 월간
<디자인>
객원 기자, 월간
사진: 정태균
허핑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