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사 | 2015-03-26
귀여운 외모를 가진 애니메이션 캐릭터라면 가볍고 선선히 다루어지는 것이 당연할 것만 같다. 그저 티셔츠에 그려진 방긋 웃는 모습으로 읽히며 가볍게 소비되는 것, 그것이 캐릭터들의 본분이자 한계일 것만 같다. 그런데 크리틱(CRITIC)은 스스로가 늘 그래왔던 것처럼 이 ‘당연함’ 역시 비틀었다. 펠릭스(Felix the Cat)의 귀여운 외모만 보는데 그치지 않고 한 발자국 더 나아가 그것을 둘러 싼 ‘문화’를 읽었다. 바탕과 역사를 읽으며 그것을 보는 것이 아닌 이해해야 할 것으로 대했다. 문화적 이해를 중시하며 기호에 진지한 태도로 접근한 크리틱의 이야기, 그리고 진지한 대접을 받은 고양이 펠릭스의 이야기를 전한다.
기사제공 ㅣ 무신사
펠릭스 이야기
당연히 한 번은 지나쳤을, 익숙하디 익숙한 캐릭터지만 정확히 이 캐릭터가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성장기를 거쳐 지금까지 왔는지를 알고 있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적어도 국내에선 펠릭스가 피상적으로 다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비난할 수 없다. 그것이 애니메이션 캐릭터에게 어울리는 응당 당연한 대접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니 말이다.
얼추 한 세기 전인 1919년, 파라마운트(Paramount)가 만든 초기 애니매이션을 통해 펠릭스는 세상과 만났다. 그 이전의 애니메이션이 움직이는 그림이자 그저 신기한 ‘기술’ 정도로 관객들에게 인상을 남겼다면 펠릭스는 ‘가상의 캐릭터’란 개념을 시도하며 애니메이션이 훨씬 더 큰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을 대중들에게 증명했다. 독자적인 개성을 가지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가상의 존재, 노래를 부르고 말썽도 피우고 웃고 우는 ‘캐릭터’가 펠릭스였다. 오늘날의 사람들에겐 지극히 익숙한 이 개념이 당대의, 그러니까 한 세기 전 사람들에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세계 최초의 애니메이션 캐릭터’는 그렇게 당대를 풍미하며 한 세기의 여정을 시작했다.
1928년, 역사적인 순간이 도래한다. 그리고 펠릭스는 그 순간을 함께 했다. 미국 NBC 방송이 시도한 세계최초의 공중파 TV 송출이 1928년에 있었고, 그 시험방송, 첫 TV 전파를 펠릭스가 함께 했다. 세계최초의 애니메이션 캐릭터는 세계최초로 TV 전파를 탄 캐릭터가 되었다. 미국인 모두의 사랑을 받는 캐릭터였기에, 첫 걸음을 딛는 역사에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는 캐릭터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심지어 애니메이션 캐릭터와는 무관하게 보이는, 1차세계대전기 미 해군 폭격기 중대(VB-2B)의 마스코트로도 펠릭스가 활약할 만큼 폭 넓은 인기를 얻은 캐릭터가 바로 펠릭스다. ‘애니매이션 캐릭터’란 개념을 모두의 뇌리에 안착하게 만들며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했고, 하나의 개념, 하나의 문화, 하나의 장르를 만들었다. 아직 몰랐던 고양이, 펠릭스의 발랄한 얼굴 속에는 역사와 문화가 숨겨져 있다. 그저 티셔츠에 찍혀 단순히 소비되던 그 고양이의 얼굴 속에 말이다.
크리틱 이야기
일련의 캡슐 컬래버레이션(Capsule Collaboration, 단발성이 주류인 소규모 협업)들이 한 자리 수의 아이템을 출시하는 것에 견주어 크리틱과 펠릭스의 컬래버레이션 시리즈는 규모와 노선을 분명히 달리 한다. MA-1 재킷, 코치 재킷, 스윙탑, 스타디움 재킷, 스냅백과 버킷햇, 스웨트셔츠와 후디, 그리고 아이폰 케이스 등 다양한 아이템이 출시되며 각각은 또 다양한 색과 디자인으로 나누어진다. 보여줄 수 있는 것을 다 보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이 드러난다.
크리틱은 펠릭스란 캐릭터의 총체에 대해 성실히 복기하고 머천다이징과 디자인에 임했다. 단순히 펠릭스의 주어진 그래픽을 복사하는 것이 아닌, 펠릭스라는 캐릭터를 총체적으로 이해한 뒤 크리틱에 연결시켰다. 총체를 읽어야만 제대로 활용할 수 있으며, 그래야만 크리틱이란 특이점과 온전히 조우하게끔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크리틱의 노력은 앞서서 언급한 머천다이징과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제품 디자인에 그치지 않고 컬래버레이션 시리즈의 전방위에서 드러난다. 펠릭스가 시작된 1919년과 크리틱이 시작된 2006년을 동시에 담은 그래픽 로고, 초기의 카툰 페이지를 가득 담은 안감, 펠릭스의 다양한 표정으로 만들어진 패턴 등 그래픽의 세부에는 개개의 의미와 특수성이 담겼다. 192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펠릭스를 벽에 걸며 지역의 명소로 남은 LA 쉐보레(Chevrolet) 매장이 담긴 룩북은 작게 드러나는 부분이라도 부족하고 싶지 않았던, 그리고 최선을 다하고 싶었던 크리틱의 진정성이 드러난다. 그렇게 크리틱은 컬래버레이션의 모든 면에서 펠릭스를 충실히 담았다. 그렇게 하고 싶었고, 그래야 함이 온당했기 때문이다.
다만 크리틱은 펠릭스에 잠식되지 않았다. 캐릭터에 잠식되어 브랜드와 제품의 정체성을 잃는 경우가 자주 보이는 캐릭터 컬래버레이션인 만큼 크리틱은 적절한 밸런스, 그리고 크리틱과 펠릭스가 함께 온전하고 드러날 수 있는 지점에 정교하게 발을 디뎠다. 스트리트 브랜드의 감각을 잊지 않는 강렬한 그래픽, 명료하게 드러나는 디자인, 그리고 크리틱에게 의례 기대할만한 복종. 익숙하며 앞으로도 견지해야 할 노선은 그대로 이어가며 크릭틱은 스스로의 관점에서 해석한 펠릭스를 담았다. 그것이 크리틱에게 옳은 동시에 펠릭스를 대하는 태도로써도 옳고, ‘함께 남는 성공적인 컬래버레이션’이란 명제에도 부합하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크리틱과 펠릭스의 이야기
단순히 다루어져선 안될 것, 존중을 받아 마땅하며 이해를 거쳐야 함이 온당한 것에 대해 크리틱은 놓치지 않았다. 단 몇 장의 사진을 위해서라도 LA의 쉐보레 매장을 찾았던 것과 같이, 단순히 간과할 수 있는 재킷 위 패치에도 서로가 시작된 해를 새긴 것과 같이 크리틱은 펠릭스를 존중하며 이해하고 컬레버레이션을 구축했다.
크리틱의 디렉터 이대웅은 “캐릭터가 가진 비하인드, 그것의 역사성과 정체성에 대해서도 간과해선 안됨을 생각하고 컬래버레이션을 시작했다.” 라고 말했다. 그리고 단순히 한 철 장사로 소비될 대상이 아닌 문화적 총체와 함께 펠릭스를 대하며 옷에 담았다. 전세계적인 범주에서 볼 경우 실상 펠릭스는 귀여운 외모, 표상화된 이해에 그치지 않았다. 해외에서 개진된 펠릭스와 패션 브랜드의 컬래버레이션 사례만 보더라도 밴스 레더스(Vanson Leathers), 스튜디오 다치산(Studio D’ Artisan), 버즈 릭슨(Buzz Rickson) 등 역사성과 고증에 집착하는 레플리카 브랜드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는 펠릭스란 캐릭터가 외모로만 동시대인들에게 다가서는 것이 아닌, 지난 역사를 대변하는 동시에 스스로의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는 기호임을 역설한다. 그리고 원래 그렇게 다루어져야 함이 옳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부산물로 소비되는 일련의 과정들을 지켜보며 대중은 무의식적으로 가볍고 피상적으로 소비되는 것이 애니메이션 캐릭터에게 온당한 운명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선선히 선택될 수 있는 물건, 가볍게 쓰일 수 있는 물건, 그리고 쉽게 버려질 물건이 ‘애니메이션 캐릭터’란 기호를 담기에 적절한 그릇이라 여겨졌다. 결국 놀이동산의 티셔츠, 시장에서 팔리는 아동복, 그리고 한 철 쓰이고 버려지는 팬시 정도가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위한 캐릭터 상품의 전형이 되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다고 한들 옳지 않은 것이 옳게 바뀌는 것은 아니다. 캐릭터의 소명은 단순히 보여지는 것, 한 철 장사에 소비되고 잊혀지는 것에 그치지 않으며, 특히 오랜 시간 사랑을 받으며 역사와 함께 한 캐릭터는 더욱 그렇다.
크리틱은 그 점을 놓치지 않는다. 브랜드 매니저 박현우는 “에이전시를 통해 얻은 정보에 그치며 컬래버레이션 시리즈를 만들지 않았다. 우리 스스로 펠릭스란 캐릭터의 역사와 이야기에 대해 공부했고, 충분히 축적한 자료를 바탕으로 크리틱, 그리고 크리틱이 지향하는 바에 어울릴 수 있는 펠릭스를 ‘엄선하며’ 담았다. 말하는 것은 잘 아는 것이어야 하며 활용하는 것은 이해한 것이어야 함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라고 말했다. 이번 컬레버레이션 컬렉션을 통해 출시되는 아이템들, MA-1 재킷, 스윙탑 재킷, 스타디움 재킷, 코치 재킷, 스웨트셔츠, 후디, 그리고 모자, 아이폰 케이스 등 다양한 아이템은 다들 각각에 어울리는 펠릭스의 그래픽을 담았다. 이는 크리틱이 피상적으로 캐릭터를 대하지 않고 몰두하며 대했기에 가능했음을 반증한다. 캐릭터에 대한 이해가 근저에 있기에 다양한 그래픽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이고, 그랬기에 ‘스트리트 브랜드와의 컬래버레이션’이란 특수한 목적에 온전히 부합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크리틱은 다르다. 일련의 시선들이 거쳐온 그리고 그 속에서 펠릭스는 분명하다. 더 활짝 웃는 펠릭스, 아직까지 몰랐던 펠릭스가 선명히 크리틱의 옷들 사이에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