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6-10
″재산권 침해″ 주민반발…문화예술인 고택 문화재지정 난항
서울시가 근대 문화예술인들의 고택을 시 문화재로 지정?보존하는 사업이 난항에 빠졌다.
문화재로 지정되면 각종 규제로 재산권이 침해된다며 지역주민들은 물론 구의회까지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발단=시는 지난 2월 종로구 계동 한용운 선생 자택 등 근대 문화예술에 영향을 끼친 인물들이 살았거나 활동했던 건축물을 시 지정문화재로 지정키로 결정했다.
기념물로 지정되면 국세와 지방세가 100% 면제되고 개·보수비용을 지원받게 된다. 하지만 건물의 내부와 외부를 원형과 다르게 변형할 수 없고,건축행위가 엄격하게 제한되기 때문에 이 지역주민들과 지자체는 반대의견을 분명히 하고 있다.
성북구 성북2동 미술평론가 최순우 고택의 경우는 현재 문화재 보호시민단체인 한국 내셔널트러스트가 지난해 7억8000만원을 들여 이집을 구입,최 선생의 물품 등을 진열해 전시장을 개관했다. 이 집은 보존 상태가 양호한데다 널찍한 뒷마당을 가지고 있는 등 전통한옥의 멋을 잘 보존하고 있기 때문에 문화재적 가치를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정작 문화재 지정을 환영해야 할 내셔널트러스트측은 오히려 시에 문화재 지정을 유보해 달라고 공식적으로 건의한 상태다.
시 지정문화재로 지정되면 50뻍이내의 건축물 고도제한과 27도 이내의 안각(건물을 지을 때 문화재를 가리지 않도록 법이 정한 각도)규제를 받아 주변 사람들의 민원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러스트 측은 문화재적 가치가 높았던 전남 함양의 허삼둘 가옥이 지역주민들의 합의를 구하지 않은 상태에서 문화재 로 지정된 후,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화재가 발생한 점을 들어 주민합의과정에 필요한 시간을 요구하고 있다.
내셔널트러스트 최호진 간사는 “문화재를 보존하는 데 시와 시민단체 간에 이견이 있을 수 없다”면서도 “그러나 내셔널트러스트 측과 엄밀한 의견수렴과정없이 지정을 하게되면 주민반발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시 관계자는 “내셔널트러스트가 그동안 역사 있는 건축물을 사들여 보존에 힘써온 것을 높이 평가해 이들의 활동을 측면 지원해왔다”며 “내셔널트러스트 측과 마찰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지정해도 고민 지정돼지 않아도 고민”이라 말했다.
◇지자체까지 반대=화가 이상범 고택의 경우는 사정이 더 심각하다.
이 집은 현재 종로구 누하동 재개발지역 안에 위치하고 있어 서울시와 종로구의회 간 대립 양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시는 이상범 화가의 청전화숙은 전통 정원을 배경으로 옛날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뛰어나기 때문에 지정 시기를 늦출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종로구의회는 지난달 30일 안건심사위원회를 열고 이상범 화가의 고택을 매입하는 안건을 부결시켜 버렸다. 종로구 관계자는 “이 지역 재개발은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 시키기 위한 숙원사업”이라며 “이곳이 문화재로 지정되면 주민 재상상의 불이익을 크기 때문에 구의회에서 부결시킨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시 관계자는 “어차피 관련법상 재개발지역의 30%는 녹지나 도로 등 공공용지를 조성해야하기 때문에 이상범 화가 집을 문화재로 지정하고 주변을 녹지로 꾸미는 방법이 있다”며 “지역 주민들을 상대로 이부분을 지속적으로 설득할 예정”이라 말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선진국들처럼 문화재 보호가 우선되는 정책을 만들고 시민들의 문화재 보호에 대한 인식도 높이는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황평우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소장은 “문화재 지정시 지역 주민들이 받게되는 불이익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며 “지자체도 세제 경감 등의 구체적인 혜택을 줘 주민들을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2004-06-08 0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