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2-14
SEOUL, Korea (AVING Special Report on 'GSP 2010') --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을 함께 웃고, 떠들고, 즐겁게 만드는 한국의 게임시장은 지금 어디쯤 위치해 있을까?
(사진설명: 한국게임의 현주소를 알 수 있었던 지스타2010 게임전시회)
위기를 넘어 기회로
한국의 게임시장은 1996년 '바람의 나라'가 서비스를 시작했을 때를 기점으로 시대를 나눌 수 있다. 1996년 이전의 한국 게임시장은 아케이드 부문이 전체 시장에서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소수의 게임 개발사들이 PC패키지용 게임 개발에 힘을 쏟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시장이 영세하기도 했지만, PC게임의 경우 불법복제의 난립으로 '창세기전', '화이트데이' 등 소수이지만 양질의 게임을 만들어 냈던 개발 시장 자체가 붕괴 직전에 있었다. 여기에 돌파구를 제시한 것이 바로 넥슨의 '바람의 나라'였다.
'바람의 나라'는 동명의 원작 만화 세계관을 차용해, 당시 서서히 대중화 돼 갔던 네트워크 기반의 게임 장르 MUD(Multiple User Dungeon)를 그래픽적으로 구현해 낸 최초의 게임이었다. 또한 '바람의 나라'는 최초의 그래픽기반 온라인게임이라는 상징적인 의의를 넘어 한국 게임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은 게임이기도 했다.
유저들이 직접 서버에 접속해야만 플레이할 수 있는 환경은 게임 시장을 위기로 몰아 넣었던 불법복제에 많은 제약을 가했다. 더불어 유저들에게 매달 일정 금액의 서비스 비용을 받는 과금 방식으로 꾸준한 매출이 발생하는 안정적인 사업 구조가 갖춰졌다. '바람의 나라'라는, 게임시장의 새로운 롤모델이 탄생한 셈이었다.
'바람의 나라'의 성공은 그동안 침체일로를 걷고 있던 한국의 게임개발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패키지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던 게임개발사들은 물론이거니와 관심은 있었지만 시장 상황을 고려해 망설이던 사람들, 블루오션을 보고 뛰어든 사람들 등 다양한 계층의 참여로 한국의 게임시장은 전에 없던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사진설명: 최초의 그래픽기반 온라인게임 '바람의 나라')
급격한 산업화
'바람의 나라'가 돌파구를 제시하고 2년 뒤, 1998년 '리니지'가 정식 서비스를 시작했다. '리니지'는 온라인게임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했다.
'바람의 나라'와 마찬가지로 동명의 만화에서 세계관을 가져온 '리니지'는 MMORPG에서 갖춰야 할 시스템적 기반을 다진 게임이었다. 더불어 온라인게임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류와 경쟁을 기본으로 한다는 원리를 본격적으로 활용한 게임이기도 했다.
'리니지'의 등장과 발전은 PC방의 성장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고속 인터넷망이 개인에 이르기까지 보편적으로 보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온라인으로 게임을 즐기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PC방을 찾기 시작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리니지'를 비롯한 온라인게임과 PC방은 서로가 서로에게 시너지효과를 주며 함께 성장해 왔다.
1998년 3000여 개에 불과했던 전국의 PC방 숫자가 1999년 1만5000여 개, 2000년에는 2만1000여 개 이상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리니지' 역시 마찬가지로 1998년 서비스 초창기 1000여 명에 불과했던 동시접속자가 2000년에는 10만 명을 돌파하며 절정의 인기를 구가했다. '리니지'의 개발사 엔씨소프트는 2000년 3월 코스닥에 상장하며 게임이 산업적으로 큰 가치가 있음을 증명했다.
엔씨소프트와 '리니지'의 성공은 많은 투자자들을 게임 시장으로 불러들였고, 2000년 대 초반에 들어 한국 게임시장은 대호황을 맞는다.
중국 시장에서 동시접속자 50만 명을 달성했던 '미르의 전설 2', 일본과 대만뿐 아니라 서양에서도 높은 인기를 누렸던 '라그나로크 온라인', 3D 온라인게임의 시대를 활짝 연 '뮤 온라인' 등이 '리니지'의 뒤를 이어 MMORPG 시장을 주도했다. 이와 함께 '포트리스 2', '크레이지 아케이드' 같은 캐주얼게임들이 대중적인 인기를 끌며 뒤를 받쳐 주었다.
1999년 겨우 1600만 달러에 불과했던 한국의 온라인게임 시장은 2000년에 1억7100만 달러, 2001년에는 2억630만 달러대의 시장으로 커졌다. 2004년 처음으로 약 10억 달러의 규모를 달성한 한국의 온라인게임 시장은 2007년 게임시장 전체가 최악의 침체기를 겪을 때에도 성장세를 멈추지 않았다.
한국 온라인게임 시장이 이렇게 급격히 커질 수 있었던 것은 국내 시장에 머무르지 않고, 빠르게 해외 시장 진출을 시도했던 데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겠다.
(사진설명: 현재에도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리니지')
약속의 땅을 찾아 세계로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 온라인게임 시장은 최고의 황금기에 있었다. 시장은 성장일로에 있었고, 개발자들은 꿈과 희망을 갖고 열정적으로 게임을 개발해 냈다.
1999년 당시 한국에서 온라인게임을 개발하던 업체의 수는 30여 개였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 게임개발사의 숫자가 배 이상 증가하며 많은 게임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 많은 게임들을 모두 소화할 수 있을 만큼 한국의 게임시장이 크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리니지', '뮤 온라인', '라그나로크 온라인'이 선점한 온라인게임 시장은 추격자들의 진입을 좀처럼 허용하지 않았다. 결국 국내 시장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한 게임들은 해외로 눈을 돌렸다. 16세기 유럽 사람들이 부와 명예를 찾아 배를 타고 바다에 나섰듯이 한국의 온라인게임들도 새로운 블루오션을 찾아 해외에서 살길을 찾았다.
해외 시장에서 가장 먼저 성과를 보인 것은 '미르의 전설 2'였다. 무협을 소재로 한 MMORPG '미르의 전설 2'는 중국시장에서 많은 인기를 끌며 동시접속자 50만 명이라는 기록을 달성했다. 이후 '미르의 전설 2'의 성공에 자극을 받은 많은 국산 게임들이 앞다퉈 해외 시장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과정이 결코 순탄치는 않았다.
먼저 해외의 네트워크 인프라가 한국만큼 빠르게 발전하지 못하고 있어 온라인게임이 정착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또한, 한국 게임업체들의 경우 해외 시장 진출에 대한 경험이 없었고, 현지 사정에도 밝지 못해 사업을 전개하는 것에 어려움이 따랐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양산되기 시작한 한국산 온라인게임들이 질적으로 성장이 멈춰 버린 것이다. '리니지'의 성공신화를 바라보며 시장에 뛰어든 많은 게임 개발자들과 투자자들은 '리니지'의 아류작 그 이상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사진설명: 중국에서 인기를 얻으며, 동시에 많은 파장을 일으켰던 게임 '미르의 전설 2')
시장의 재편과 새로운 도약
200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한국 게임시장은 위기를 맞이한다. 철저한 준비 없이 시장에 도전했던 많은 게임들이 이름도 알리지 못한 채 사라져갔고, 수백억 원 규모의 자금을 투입한 대형 프로젝트들 역시 줄줄이 실패를 거듭했다.
여기에 직격탄을 날린 것이 2004년 말 정식서비스를 시작한 블리자드의 '월드오브워크래프트'였다. 그 이전까지는 그 어떤 외국산 온라인게임도 한국 시장의 높은 장벽을 넘지 못했지만, 블리자드는 달랐다. '월드오브워크래프트'는 승승장구하던 한국산 게임을 시장에서 조금씩 몰아냈다.
MMORPG 중심의 시장 구조가 흔들리면서 새로운 장르의 게임들이 대두되기 시작한다. 복잡한 시스템의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했던 MMORPG 장르들과 반대로 짧은 시간 가볍게 즐기기에 좋은 캐주얼 게임들이 시장의 주류로 떠올랐다.
'카트라이더', '오디션', '프리스타일' 등의 게임들이 인기를 끌면서 침체에 빠졌던 온라인게임 시장을 빠르게 재편해 나갔다. 특히 FPS 게임의 완벽한 온라인화를 실현한 '스페셜포스'는 이후 온라인 FPS 게임 개발 열풍을 일으킬 정도로 시장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던전앤파이터', '메이플스토리', '서든어택', 그리고 '아이온'에 이르기까지 온라인게임 시장은 침체기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게임의 다양성 강화와 질적인 성장을 동시에 이뤄내는 성과를 거뒀다.
시장경쟁력을 확보한 한국의 게임들은 이를 발판으로 다시 한번 세계 시장에서 주목 받기 시작했다. 2009년 한 해 동안 한국의 온라인게임 매출규모는 약 32억5500만 달러, 그 중 수출이 전체의 41.7%를 차지하며 약 13억6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요즘 연예계의 화두는 한류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아이돌 그룹들이 해외에서도 많은 인기를 누리며 한국을 알리는데 앞장서고 있다. 게임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 한국산 게임은 중국, 일본, 대만, 동남아 등의 아시아권을 비롯해 미국과 유럽, 그리고 남미까지 전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서비스 중에 있다. 한국산 게임을 즐기는 전 세계 유저들은 알게 모르게 한국을 접하고 있는 셈이다.
(사진설명: 게임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온 '카트라이더'는 국민게임의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세계 속의 한국 게임
한때 한국은 최대의 온라인게임 수출국이었다. 지금은 그 위치를 중국에 내줬지만, 여전히 세계 시장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온라인게임 강국이다. 대만의 경우 10위권 안에 랭크된 게임 중 7개가 한국산 게임일 정도다.
동남아 시장 역시 한국산 게임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 지역이다. 최대의 시장인 중국에서도 '던전앤파이터', 'Cross Fire' 등 다수의 한국산 게임이 상위권에 포진해 있다.
다만, 아직 미국 시장과 유럽 시장에서는 들쭉날쭉하며 안정적인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의 현지 퍼블리셔들이 한국산 게임들에 관심을 보이고, 지속적으로 접촉을 해오고 있다. 현재 개발 중인 신작게임들 중에는 한국 내 서비스보다 미국 혹은 유럽 지역의 서비스 계약을 먼저 체결한 경우도 적지 않다.
얼마 전 개최됐던 국제게임전시회 '지스타2010'에서 선보였던 '블레이드앤소울', '테라', '킹덤언더파이어2' 등의 기대작들 역시 미국과 유럽시장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것은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신흥 게임시장들이다. 브라질을 위시한 남미 게임시장과 러시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직 두 시장 모두 막 태동한 상태로 규모 자체는 작다.
하지만 현지의 시장 조건과 장래성을 봤을 때 중국에 이어 제 2의 시장을 형성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지역들이다. 이 지역들의 게임시장 형성과 발전의 중심에 한국산 게임들이 위치하고 있다는 것은 이제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사진설명: '디바인소울' 등 신작게임들의 해외 진출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Game&Game, to be continued
현재 넥슨, 엔씨소프트, NHN게임즈 등 한국의 대형 개발 및 퍼블리싱 기업들은 해외에 현지 법인을 두고 직접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현지 법인이 없는 기업들도 현지의 퍼블리셔와 서비스 계약을 체결해 게임을 해외에서 서비스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중소 게임 개발사들이 방법을 모르거나 여력이 부족해서 해외 진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 정부에서는 게임 시장의 발전과 이들 중소 게임개발사들을 돕기 위해 다양한 지원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서두에 밝힌 GNGWC 대회 역시 그 중 하나다. 2006년부터 시작된 GNGWC는 몇 개의 게임을 정식종목으로 선정해 각 대륙별 지역 본선을 거쳐 최종적으로 세계 챔피언을 결정하는 국제 게임 대회다.
참가하는 게임들의 세계적인 홍보와 유저들에 대한 서비스를 겸해서 진행되는 GNGWC는 지금에 와서는 참가한 유저들의 국제 교류의 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지역도 언어도 다른 사람들이 하나의 게임을 통해 교감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을 GNGWC가 증명해주고 있는 셈이다.
해외 퍼블리싱을 도와주는 GSP(Global Service Platform) 사업 역시 한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지원 사업의 하나다. GSP에 참여하겠다고 신청한 기업들을 심사를 거쳐 선정한 다음, 해외 언어 번역과 게임 서버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한국 정부에서 운영하는 게임포털사이트 'GNG(Game&Game)'를 통해 선정된 게임들의 퍼블리싱도 함께 진행 중이다. 이외에도 '글로벌허브센터'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해 중소 개발사들이 보다 나은 환경에서 게임 개발에 전념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이러한 지원 속에 한국의 게임시장은 과도기를 벗어나 안정화된 개발 환경을 갖추고 다시 한번 부흥기를 맞을 준비를 마쳤다. 현재 한국은 세계 2위의 온라인게임 수출국이며 동시에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온라인게임 소비시장이기도 하다.
이제는 산업적인 성장 일변도의 구조보다도 게임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올바른 놀이 문화로써 자리 잡아 갈 수 있도록 업계와 유관기관, 그리고 유저들이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일 때라고 본다. 거대한 시장규모에 어울리는 성숙한 자세를 갖췄을 때, 게임은 또 한번의 진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사진설명: 한국정부에서 운영하는 게임포털 사이트 Game&Ga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