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7-21
허브천문공원이 착공되기 전, 이 곳에는 길동배수지가 있었다. 배수지는 안정적인 상수도 공급을 돕는 역할로, 밀집거주지역의 인근 고지대에 건설될 필요가 있었다. 해발 75m의 야산을 삼 분의 일 가량 파낸 자리에 커다란 수조가 설치되었고, 수조에는 정수과정을 마친 수돗물이 저장된다. 이렇게 배수지를 만드느라 훼손된 이 곳의 자연 경관은 2006년 9월, 하늘을 향한 가림막으로 탈바꿈된다. 허브와 천문이라는 이색적 소재가 결합된 공원이 들어선 것이다.
글 | 김종혁 d-페다고지 기획 & 리포터
에디터 | 최유진(yjchoi@jungle.co.kr)
1. 허브 천문공원의 철학적 탄생 배경
이 공원의 설계는 강동구청의 박경복 주사(공원녹지과)가 맡았다. 2004년에 강동구청은 그를 서울시 최초의 조경계획 및 설계 전문직 공무원으로 채용했다. 전체 면적에서 녹지 비율이 44%라는 강동구에서 녹지관련정책이 특화될 무렵이었다.
그는 자신의 설계사례를
<한, 중, 일 역사문화경관 비교를 통한 상상적想像的 환경 복원(설계적용:상생지원)>
이라는 연구논문으로 남겼다. 상생지원은 '相生之苑 : 하늘과 땅과 사람이 상생하는 정원'을 뜻한다.'인공 빛의 간섭으로부터 차단된 열려진 하늘(天) / 토심(土深)이 얕고, 물 빠짐이 양호하며, 햇빛이 풍부한 땅(地) / 공원의 이용주체인 사람(人)'라는 입지 조건에 따라, '하늘[天]로 열려있는 대지[地]에서 해[日], 달[月]과 별[星] 그리고 바람[風]과 구름[雲]을 느끼는 천문공원과 자연환경[지형, 토양특성]에 부합하는 허브식물'이 공원의 주제가 되었다. 또한 도덕경의 도법자연(道法自然) 사상[사람은 땅을 본받고(人法地), 땅은 하늘을 본받고(地法天), 하늘은 도를 본받고(天法道),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道法自然)]를 이 공원의 조영원리로 삼았다.
설계자는 기존 조경 분야에서 '조선시대에 편중된 전통양식의 외형적 모사'를 잘못으로 지적하며, 조경은 '지역, 공간 재료, 그리고 감정과 본능 따위만 다루는 것이 아니고, 정신의 영역인 사상(思想)'적 체계를 갖춘 언어가 되어야 했다고 주장한다. 확장된 차원의 전통 조경 언어를 만든 셈이다.
이 공원에는 동양의 산수화나 서양의 풍경화를 연상시키는, 우리가 동양화에서 보고 배웠던 유토피아적 전통, 자연 경관이 나타나지 않는다. 또한 공원의 역할에 있어 통상적으로 기대되는, 도시 환경에 대비되는 자연 환경에서도 벗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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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보는 서구 모더니즘적 배경의 조경은 '경관을 정태적인 대상으로 간주하여 주로 단순미와 비대칭에 의한 조형성을 강조한다’(김정호. 공간과 도시의 의미들. 2004). 반면 이 공원에는 설계자의 논리적 과정이 강조 되면서, 가시적인 형태나 쾌적한 자연 환경 이상으로 비가시적인 정신성과 전통 환경의 표현이 강조된다. 그리고 현실의 장소가 전통 환경의 장소로 탈바꿈되는 과정은 설계자의 의도에 의한 구조적 특성으로 나타나게 되게 되는 것이다.
이 공원의 전통적 요소나 그 형상성에 대한 해석이나 작가의 의도가 설계자의 자의적인 해석이 아니라, 관람자나 사용자가 동의를 하고 느낄 수 있다면 이 공원은 정신의 형상화, 추상적 전통 가치의 물질화를 현대적으로 재현한 성공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물론 이러한 공유와 공감은 이용자의 몫이겠지만. 아니 어쩌면 창조성이나 시각적 쾌감 보다는 작가의 해석과 의도가 예술을 만든다고 주장 하는 현대 예술의 시각에서 본다면 디자인이나 건축에서도 설계자의 의도가 사용자에게 투명하게 전달되는 것도 부차적인 문제일지 모른다. 즉 전통을 상징적이고 정신적으로 이용했다고 설계자가 주장하면 이용자는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전통성을 느끼든 못 느끼든. 대상물에 대한 자의적 해석이 오히려 권좌를 차지하는 듯 하는 경향이 근래 인공 환경물에 스며드는 이야기 혹은 브랜드의 가치이니 말이다.
2. 허브천문공원의 구조적 특성
설계자의 의도가 어떻든 두 소재의 조합은 이국적인 신비감을 불러일으킨다. 허브라는 이국적 향기가 배어나는 단어, 게다가 우리가 사는 곳에서 가장 먼 곳, 천문의 조합이니 당연하다.
이곳에서 천문은 3원 28수의 동양 별자리를 가리킨다. 허브 역시 고대 주술사의 제사나 약재와 같이 정화나 치유의 목적으로 쓰였다는 점에서, '인간의 정신적 각성을 위한' 소재로 사용되었다고 소개되어 있다. 두 소재의 비 일상성과 배수지공원이라는 입지의 만남은, 각종 언론의 긍정적 평가를 비롯하여 내외지의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또한 이 곳은 천호대로와 일자산 자락 및 도심 거주지역과 주변 생태지역의 접점이다. 고지대로 시야가 탁 트여 있어, 내원을 감싸는 원형의 순환로를 돌며 볼 수 있는 공원 바깥 경관의 변화는 꽤 그럴듯하다. 공원 안쪽의 경관에서 평탄한 내원은 늘 전경으로 자리하며, 공원의 주 소재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내원의 중앙에는 외부로 노출된 배수지 건물을 덮은 잔디 언덕이 있는데, 동양의 28수 별자리를 LED 조명으로 표현한 자미원(紫微垣)이다. 그 주위를 크고 작은 초승달처럼 나뉜 두 곳의 허브밭인 태미원(太微垣)과 천시원(天市垣)이 감싼다.
반면, 외원은 사각형인 방형(方形) 및 여러 개의 각을 지닌 각형(角形)으로 이곳은 주로 실용적 기능을 담당하는 부분이다. 두 군데의 진입구, 각기 해와 달을 맞이하는 관천대, 전망데크, 어린이 놀이시설, 온실, 암석원 등이 자리한다.
이곳에서는 건물 뿐 아니라, 내‧외원의 모든 인공물과 공원 외곽의 식재수 등 자연물들까지도 전통 상징의 원리 하에 배치되어 있다. 가령 “삼재사상에 따른 하늘(원형)과 땅(방형)과 사람(각형)의 요소는 내원과 외원의 공간 구조에 반영된다. 또한, 북동쪽의 일출 전망데크와 남서쪽의 일몰 온실은 이 공원의 중심축으로, 여기에는 애니미즘과 태양숭배사상이 담겨 있다고 한다. 동쪽의 태양 관천대와 서쪽의 달 관천대는 부축으로 '춘‧추분 시점의 일출과 일몰시간에' 대응한다. 또 다른 부축으로 '남동방면의 진입로와 동남측의 전망공간은 일 년의 기점이 되는 동지의 일출과 하지의 일몰을 상징'한다. 외원과 내원을 나누는 경계는 원형의 순환로 역할을 하고, 두 개의 축 역시 허브밭 사이로 통로를 만들어낸다”(월간 환경과 조경. 2006.10).
주변부에도 각자의 상징적 위치에 적절한 식물이나 구조물이 배치되어 있다. 해를 맞이하는 공간 주변에는 해바라기, '태양이 뜨면 입을 펴고 태양이 지면 입을 오므리는 자귀나무', '좌청룡에 상응하는 복사나무와 버드나무', '오행수 중 동쪽의 방위수인 소나무'가 있다. 근처에 시계탑과 두루미 조형물도 있다. 한편 달을 맞이하는 공간 주변에는 '달의 이미지와 연계된 계수나무와 달맞이꽂', '우백호를 대치하는 느릅나무'가 있다. 가히 하나의 인공물을 둘러싼 이야기와 상징의 향연이다. 과거 상징이 삶의 모든 것에 스며들어 있을 때 이러한 것들은 꽉 찬 의미를 지닌 하나의 철학과 사상의 형상화였다면, 혹시 우리 시대의 이러한 것들은 이야기나 스토리 텔링으로 소비되는 것은 아닐까.
어떤 형식의 해석이건, 19,056㎡의 면적에 꽤 여러 구조물과 관계도가 집약된 셈이다. 이처럼 설계자의 논리가 강조된 태도는, '평면적 공간과 미니멀한 정형적 형태에 의한 강력한 시각적 자극을 통하여 조경을 배경이 아닌 설계자의 작가적 태도가 개입된 상징물로 즉 오브제로서 표현하고자(김정호. 같은 책)' 한 모더니즘 이후의 미니멀리즘 조경의 태도로 여겨지기도 한다. 서구의 미니멀리즘 조경이 기하학의 단순한 형태로 환원된다면, 여기서는 동양 전통의 사상 체계로 환원되려는 목적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차이가 있다. 이 체계는 조감도로 한눈에 볼 수 있다. 여러 전통 사상에 의거한 배치도가 다수의 레이어로 하나의 면에 쌓여있는 모습이다.
3. 이상적인 시점
이 장소 전체에는, '일면적이고 직선적이며 평면적이자, 좌우의 균형을 지키는 매우 엄숙한 정면존중주의(임태승. 같은 책)'라는 자금성과 같은 고대 중국 건축의 특성이 나타난다. 이집트 벽화처럼 눈에 보이는 그대로가 아닌 이성에 따른 중요한 부분이 그려진 그림이 된다. 이와 같은 조형물은 하지만 수용자들 사이의 사상과 미학의 공유를 전제로 한다. 이러한 관람의 태도를 동양의 유가미학으로 설명한 임태승은 '심미 대상에 내재되어 있는 것으로 미리 전제된 공과 덕을, 감상자가 존경과 예의로써 향수하게끔 의도하는 것이리라. 그럼으로써 예술은 궁극적으로 유가적 상징성을 강화하고 재확인하며 전수하는 통로요 무대인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 장소의 구조물들은 '미리 전제된' 자리를 말없이 지키고 있을 뿐이다. 이 장소를 현실 공간에서 전통 공간으로 탈바꿈하려는 역할에만 충실하다.
현실적으로, 이 장소가 기대하는 이상적인 시점은 하늘 위에 있다. 이 공원의 특색은 사람들이 드문 한밤에 더 빛을 발한다. 밤이 되면 자미원 위쪽과 부근 순환로 바닥에 박힌 LED 조명들에 불이 켜진다. 동양 별자리를 표현하는 LED 조명을 방해하지 않도록 다른 조명들은 내원에서 살짝 벗어난 곳에 설치되어 있다. 수평 경관을 해치지 않을 목적에 낮은 키로 설치된, 다른 조명들이 비추는 방향도 바깥이다. 조명이 들지 않기에, 한낮에는 순환로 기능을 했던 안쪽 공간은 더 어둡고 범접하기 어려운 장소가 된다. 자욱한 어둠 속에서 고요하게 솟아나는 LED 조명은 설령 천문을 잘 모른다고 해도, 불빛의 변화만으로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 빛들은 함부로 섞이지도 않고, 쓸데없이 어둠을 밝혀 주변 경관을 산란스럽게 하지도 않는다. 천상의 별빛너머로 도심지 아파트의 불빛이 대비된다.
지금까지의 경관은 동편에 자리한 관천대에서 볼 수 있었다. 두 군데의 관천대는 대칭으로 자리하는 데, 이 공원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높이를 지닌 유일한 곳이다. 하늘을 올려다보도록 설정되었으나, 기실 공원의 경관을 내려다보고 구조를 헤아리기에 더 좋은 곳이다. '존경과 예의로써 향수'하는 감상자가 내려다보아야 한다는 점이 재미있다. 거대한 제단처럼 하늘의 별빛을 재현한 이 곳을 마주하는, 천상으로부터의 시선 같다. 이 공원에 들어 있는 모든 '상징성을 강화하고 재확인'할 수 있는 시점인 것이다.
4. 고립된 장소에 나타난 전통
특정 장소는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이 공원에는 혼자서 조깅하는 사람, 데이트하는 연인, 남녀노소가 섞인 가족들, 보행로를 서킷 삼아 원격조정 미니카를 갖고 노는 아이들, 온실에서 이야기 꽃을 피운 아주머니들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에게 이 공원이 전통 경관으로 보여질 수 있을까? 물론 아닐 것이다. 이 장소를 온전히 이해하자면, 설계자가 의도한 관계도와 목록을 참조해야만 할 것이다. 물론 장소에 대한 이해와 별개로 이야기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지역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2008 서울특별시 환경상 수상)와, 허브와 천문에 관련된 각종 행사 유치로 만들어지는 이 장소의 이야기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또한 설계자의 의도와 이용자가 주목하는 부분이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시민들에게는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공간과 경관의 개방성, 매끄럽게 마감 처리된 시공 등 가시적인 부분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 장소에서 자부심을 갖고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서울 시민들의 특성이기도 한 듯하다.
이야기가 몇 겹으로 진행되건, 이 장소를 만들어낸 이야기는 견고하게 자리한다. 그 이야기는 매우 익숙하게 느껴지지만 과거의 전통이 아니라 동시대의 기술이 연상된다. 사상적 체계는 마치 컴퓨터처럼 작동한다. 조경 언어로서 형태, 색상, 의미 등의 몇몇 요소가 입력되면, 일치하거나 근사값으로서 전통 사상이 출력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계산은 반대 방향으로도 가능하다.
일자산 허브천문공원. 이 장소는 고대로부터 동북아시아 3국을 망라하는 전통 사상이 압축된 거대한 캔버스라 할 수 있다. 이는 폴 비릴리오가 말한 인공위성과 같은 원격객관적 시점을 떠올리게 한다. 이 원격객관적 시점은 스마트폰처럼 작은 화면에, 멀리 떨어진 시공간의 정보를 불러낼 수 있는 동시대의 기술환경에서는 일상적인 감각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그 시점 아래, 이 장소의 이용자는 고립되어 버리는 것은 아닐까. 주변 경관과 연계되지 않고, 고립된 장소로 나타난 이 장소의 전통 환경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