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27
전시 제목 송수영 개인전: 사물의 기억 Song, Soo-Young: In Search of Lost Connections
전시 기간 2012년 11월 30일(금) – 2013년 1월 9일(수)
전시 장소 송은 아트큐브 (서울 강남구 대치동 947-7 삼탄빌딩 1층)
관람 안내 월-금요일 9:00am~6:30pm 토요일 11:00am~3:00pm (일요일, 공휴일 휴관) / 무료관람
식물학적 상상력과 사물의 발견 (글 | 현지연, 송은아트큐브 제공)
1
향나무는 향이 되었다.
향이 좋아 향나무라고 이름지어진 향나무는 귀신을 부르는 향이 되었고, 또 이제 가끔은 냄새를 쫓는 향이 되었다. 크고 단단하게 자라 마을을 지키듯 서있던 향나무는 그 기억으로 귀신과도 통하는 향이 되었을까? 향은 불피워 사라지는데 채 몇 분이 걸리지 않지만, 그 크고 단단했던 향나무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는. 살아간다. 향과 향나무의 DNA는 결국 같지 않겠는가.
그리고 작가 송수영은 그 기억을 찾아낸다. 이미 사물이 되어버린 향에서 향나무의 기억과 흔적을 찾아내는 것, 그것을 추적하는 것이 그녀의 일이다. 책과 연필에서 숲을 보듯이. 나무젓가락에서 풀잎을, 가죽 점퍼에서 양을 보듯.
대패로 깍아낸 자리마다 무늬가 보인다
희고 밝은 목질 사이를 지나가는
어둡고 딱딱한 나이테들
이 단단한 흔적들은 필시
겨울이 지나갔던 자리이리라
… …
<김기택-나무>
그의 작업에서 사물에서 나타나는 자연의 모습을 기억하는 것은 그 본래의(original) 모습을 향수하는 것도 아니고, 재료가 된 자연에 대한 단순한 애도도 아니다.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관심은 사물이 스스로 간직한 기억과 대면하는 것이다. 가구의 문틈과 모서리를 흘러다니는 나무의 나이테가 ‘추위의 난폭한 힘’을 견뎌낸 자리임을 시인이 보았듯이, 송수영은 사물이 되고도 남아있는 나무와 숲의 흔적을 찾아낸다. 가늘고 연약한 향이 간직하고 있는 크고 튼튼한 향나무의 기억처럼. 그의 식물학적 상상력으로 그렇게 숲은 책 위에 다시 제 존재를 드러내고, 개개비는 수수빗자루 사이에 둥지를 튼다.
나무는 지구의 가장 오래된 기억을 품고 있다. 동물이 나타나기도 전, 인류가 나타나기도 전, 대지로 올라온 나무들은 뿌리를 내리고, 개체를 번식시키고, 겨울을 견디는 격렬한 생의 방식들로 그들이 살아낸 대지와 지구를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동물과 인류와 공존하던 기억도. 생존의 근거지인 지구를 기억하는 거대한 숲이 연필 한 자루가 되어 있음을 발견하는 것은 따라서 지구의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된다.
2
이것은 과대망상이 아니다.
<캘리포니아 삼나무 숲에 살았던 나무 – 연필>은 작가가 연필 한 자루를 다 써서 그려낸 그림들이다. 일상적인 연필 한 자루로 캘리포니아 숲과 만나는 방법인, 연필 한 자루를 모두 써버리는 행위는 의외로 집요하다. 연필이 된 나무가 자라온 지역을 찾기 위해서 연필 회사들에 메일을 보내 사용된 나무의 출처를 묻고, 나무의 수종을 알아내고 나무와 그 숲에 대해 탐구 한 후, 가장 많이 사용되는 캘리포니아 숲의 삼나무로 된 연필을 사용해 그곳의 풍경을 그리는 그의 행위는 분명 직관적이고 감각적인 행위라기 보다는, 인류학적 탐구에 가깝고 사물과 자연을 다시 발견하는 인식론적 행위와 유사하다. 다시 말해 나는 여기서 사물과 사물의 과거인 나무와 숲을 연결시키는 작가의 행위가 단순히 작가적 감각과 시적 수사로만 형성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상기하고자 한다. ‘개개비가 살았을지도 모르는’ 수수밭을 상상하는 것은 그의 생태적이고 식물학적인 감수성이 활성화되어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이 감수성을 활성화시키는 것은 작가의 순수한 상상력과 직관에만 의한 것이 아니라, 송수영이 꾸준히 천착해온 문제의식과 탐구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문제는 작가가 ‘이러한 행위가 순수한 DNA정보 제공이 되는 것’을 어떻게 제어하는가이다. 탐구와 인식의 결과들이 단순한 사실과 정보를 제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구적 감수성으로 확장되는 그 지점에서 송수영의 작업은 예술로서의 힘을 갖는 경로를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첫 번째 가정은 그의 작품이 만들어 내는 어떤 상태와 관련된다. 작가가 제목에 사용하는 ‘- 하이픈’은 <향-나무>, < 로드킬 - 박스 >와 같이 두 가지 상태의 사물, 혹은 자연을 연결한다. 그것은 향이고 나무인 상태인데 동시에 향이 다시 나무가 된 상태, 나무가 향이 된 상태이다. 또한 물질적으로 박스인채 존재하지만 이미지적으로는 로드킬 당한 동물인 것이다. 두 개 이상의 상태는 하나의 상태가 다른 하나의 상태를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물질적 정보에 있어 이런 이중적이고 모호한 상태는 정보를 혼돈에 빠지게 할 뿐이지만, 송수영의 작업에서 이중적인 상태는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부정하거나 억압하지 않으며 존재가능한 것으로 시각화 된다. 그리고 그러한 상태는 사물을 섣부르게 자연의 파괴와 훼손에 대한 피고인으로 소환하지 않는다. 두 개의 상태는 병렬되고 하이픈이라는 불안정한 장치에 의해 연결되어있을 뿐이다. 이 병렬의 과정에 작가는 자신의 가치판단적 개입을 최소화하고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인식적 변화를 기다린다. 잠재성의 농밀함이 생성되는 곳이다.
두번째 가정은 작품의 형태와 관련된다. 송수영은 이미지를 연상하는 것에서 작품의 출발점을 삼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다분히 우연적이고 직관적으로 시작되는 일이지만, 일상적이고 하찮은 사물들에 대한 그의 민감한 시선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라는 것을 다시 강조하자) 그의 대상들은 형태의 유사성에 의하거나, 상태의 유사성이라는 감각적 체계 안에서 선택되는데, 연상된 이미지를 형태로 만드는 것은 일견 매우 간단하고 쉬워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손에 쥐이지도 않을것 같은 작은 소쩍새를 만드는 것, 스탬플러의 흔적을 벽을 타고 올라온 덩쿨로 만드는 것, 곧고 연약한 향을 구부리는 것, 브로콜리로 핵이 터지는 도시를 형태화하는 것은 여러번의 실패와 수공예적 노동을 필요로 한다.
그의 작업에서 형태를 만드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단서’를 제공하는 것이다. 즉 사물에서 보이지 않는 것 혹은 우리가 보지 않았던 것, 즉 따라서 사물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던 것들을 시각화하는 것이다. 선언적이거나 명령적이지 않은, 직관적이지만 세심하게 통제된 형태를 통해 그의 언어로 말하는 것, 장식적으로 흐르는 것을 경계하는 동시에 형태가 마치 그 사물에 내재하고 있었던 것처럼 드러나게 하는 것, 그것이 송수영의 작품이 갖고있는 예술적 노동의 덕목이다.
서로를 부정하지 않는 상태의 유지, 명확하지만 ‘단서’정도로만 존재하는 형태들. 그의 작업에서 이러한 것들은 작가의 사유의 흐름을 드러내고 형태적 양식을 형성하며 지구의 기억 혹은 사물의 기억과 대면하게 한다.
3
그런데. 미사여구는 물론 비난도 부재하는 그의 목소리는 사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닐까…
아무도 생명과 음식을 구별하지 않는다네
뒤뚱거리던 걸음과 순한 표정들은
게걸스럽던 식욕과 평화스럽던 되새김들은
순서 없이 통과 리어카에 포개져 있네
쓰레기처럼 길가에 엎질러져 쌓여 있네
비명과 발버둥만 제거하면 아무리 큰 힘도
여기서는 바로 음식이 된다네
… ….
<김기택 – 마장동 도축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