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08
아트선재센터는 임민욱 작가의 <비(碑)300-워터마크를 찾아서>를 여섯 번째 배너 프로젝트로 선보인다.
<비(碑)300–워터마크를 찾아서>는 철원의 옛 수도국 자리에서 사라진 300명을 찾아 나서는 진행형 프로젝트다.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사요리에 있는 수도국은 1936년 일제강점기에 설치된 강원도 최초의 상수도 시설로 2005년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 160호로 지정되었다. 입구에 세워진 안내문에는 이곳에서 ‘광복과 더불어 인공치하와 6.25 전쟁을 겪으면서 친일 반공 인사들 약 300여 명이 총살 또는 저수조 속에 생매장’ 당한 것으로 쓰여 있다.
단지 ‘300명’이라는 숫자로만 남겨진 석연치 않은 설명을 접한 작가는 당시의 정황이 궁금해졌고, 숫자가 지시하는 사람들의 기록을 사회학자 한성훈(연세대학교 역사와 공간연구소 연구 교수)과 함께 찾기 시작했다. 오랜 수소문 끝에 마침내 한국전쟁 때 수도국에서 이북으로 끌려가 실종된 사람의 가족을 동송에서 만났다. 자매인 이들은 부친을 포함해서 철원도립병원으로 끌려간 사람들이 미군의 폭격 때문에 수도국으로 이송된 것을 알고 그곳으로 가서 아버지를 만났다.
1951년 봄, 자매는 아버지를 구출하려고 수도국 맞은편 폐가에 숨어 밤을 지새웠다. 그러나 치열한 공방 속에서 수도국지 위를 훤히 밝힌 조명탄 때문에 자매는 아버지를 구출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잠에 곯아떨어진 어린 자매는 이틀 후 다시 수도국지에 갔지만 그때는 이미 모두 어디론가 사라진 뒤였다. 300여 명이 생매장 당했거나 총살당했다는 안내문과는 다른 증언이었다. 수도국에 누가 끌려갔는지 이름을 밝혀내고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든 사실을 추적할 수는 없었다. <비(碑)300–워터마크를 찾아서>는 dmz처럼 접근이 불가능한 아카이브를 뒤지다가 사실과 허구 사이에서 멈춰 버린 프로젝트가 되었다.
2014년 12월 18일 진행한 퍼포먼스 씨네 라디오 버스 <비(碑) 300–워터마크를 찾아서>는 서울에서 철원까지 이동하는 버스와 수도국 현장에서 이루어졌다. 두 대의 버스에 나눠 탄 임민욱 작가와 한성훈 박사는 dj를 맡아 생방송 라디오를 진행했다. dmz에 대한 상식 퀴즈와 다양한 장르의 음악으로 버스에 탄 탑승객을 생중계 프로그램으로 엮었다.
어두워서 도착한 철원 수도국 풍경 속에는 작가가 땅 위에 미리 설치해 놓은 투명한 오브제가 기다리고 있었고, 손전등을 가지고 숨겨진 기념비들을 찾아야 하는 미션을 전달받은 참가자들은 마치 지뢰를 밟을까 조심하듯이 땅을 밟았다. 일종의 ‘기념비’ 였던 오브제를 발견한 사람들은 그 위에 적혀 있는 숫자와 함께 자신의 이름을 전달해서 ‘미래 정보 기록’에 참여했다. 2015년에도 사라진 300여 명에 관련된 흔적을 찾는 조사는 이어졌고, 이 전시는 그 동안의 추적 과정과 남겨진 질문들을 보여 주고 있다.
2013년 11월부터 새롭게 시작한 ‘아트선재 배너 프로젝트’는 아트선재센터 건물의 외벽을 전시 공간으로 활용 하여 대형 프린트 작업을 소개하는 프로젝트이다. 배너 프로젝트에서는 미술관 내부의 정규 전시 공간과 달리, 관람의 영역이 미술관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확장되고, 주변 환경 및 공공장소에 예술이 개입하게 된다. 이때 일상의 공간으로 나온 예술 작품은 미술관 방문객뿐 아니라 일반 대중과 만날 수 있게 된다.
이 프로젝트는 미술관 주변을 오고 가는 모든 이들에게 예술을 일상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하며, 아트선재센터가 위치한 삼청동 일대의 문화 예술적 지평을 드러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 참여한 작가로는 폴 카잔더, 홍영인, 김성환, 노순택, 그리고 히만 청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