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8-27
구스타프 클림트와 함께 오스트리아의 대표 화가로 잘 알려져 있는 에곤 쉴레(Egon Schiele). 인간 실존에 대한 고민과 자화상이 담긴 작품들로 독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는 표현주의 화가, 쉴레의 대표작들을 비엔나 레오폴드 뮤지엄(Leopold Museum)에서 만나보자.
Egon Schiele, 〈Self Portrait〉, 1917, 에곤 쉴레 본인의 자화상
‘자화상’은 쉴레의 대표적인 모티브로 독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표현주의 화가인 쉴레의 자화상과 연계된 많은 작품들은 인간 본성의 욕망과 사실적인 육체, 역동성을 과감하게 표현한다. 열여섯 살에 빈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할 정도로 천재적인 소질을 가졌던 쉴레의 생생하고도 자유분방한 작품들.
쉴레의 대표작인 〈죽음과 여인(Death and the Maiden)〉는 그의 오랜 소울 메이트와의 이별의 아픔을 짙은 감성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우리에게 익숙하다. 특히 작품의 배경으로 표현된 초현실적인 풍경은 진실한 사랑의 죽음이 작품 전체를 둘러싸고 있다는 느낌을 주며 동시에 쉴레의 슬픔과 복잡한 감정을 읽게 한다.
Egon Schiele, 〈Self Portrait with Chinese Lantern Plant〉, 1912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Self Portrait with Chinese Lantern Plant)〉는 쉴레의 다른 자화상과는 다르게 격한 선이나 표현이 상대적으로 절제된 작품이다. 쉴레가 다양한 전시에 참여하며 활동할 당시 그려진 작품으로, 자신의 작품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주는 대표작이기도 하다.
Egon Schiele, 〈The Eremiten〉, 1912
쉴레의 작품 중에 가장 우화적인 작품 중 하나인 〈은둔자들(The Eremiten)〉. 쉴레와 클림트가 함께 서 있는 모습을 나타내는 작품으로 두 사람이 실제로 가까웠음을 보여주고 있다. 빈 분리파를 이끌었던 구스타프 클림트를 만나 쉴레는 우아한 장식적 요소에 영향을 받았고, 1909년 빈에서 ‘신 예술가 그룹’을 결성한다.
하지만 동시에 쉴레는 자신의 후견인이기도 했던 클림트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했고, 이 작품을 통해 검은 카프탄을 입은 두 사람의 은둔과 실존에 대한 양면을 드러내고자 했다.
Egon Schiele, 〈Cardinal and Nun〉, 1912
쉴레는 다양한 작품을 통해 관습과 금기도 넘나들었다. 그중 대표작인 〈추기경과 수녀(Cardinal and Nun)〉에서도 볼 수 있듯이 추기경과 수녀의 벗은 다리와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 수녀의 표정 등을 통해 인간 본연의 욕망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정체성을 뛰어넘는 인간 본연의 욕구, 욕망, 금욕의 조화를 쉴레는 작품을 통해 독자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Egon Schiele, 〈Mother with two children Ⅱ〉, 1915
특히 어머니, 가족에 대한 자화상 작품들에서는 쉴레의 어머니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잘 읽을 수 있다. 쉴레는 그의 예술적 재능을 지지해주지 않았던 어머니와의 좋지 않았던 시절의 관계를 작품에서도 드러냈다.
이 작품은 이전에 그가 그렸던 어머니와는 달리 게어티(Gerti)와 그의 가장 친한 벗인 안톤(Anton)이 자녀를 가지면서, 좀 더 어머니에 대한 모습이 개선된 후의 작품이다. 때문에 이 작품에서 어머니의 모습은 죽고 검은 암울의 표현이 아닌 다소 지친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으며, 어머니에 대한 그의 관점은 모성과 동시에 삶과 죽음, 두 가지를 함께 지닐 수밖에 없는 지친 존재로 표현되고 있다.
Eon Schiele, 〈Mother and Child〉, 1912
Egon Schiele, 〈The self-Seer Ⅱ (Death and Man)〉, 1911
쉴레의 대표작인 〈자기성찰자(The Self-Seer)〉를 통해서 볼 수 있듯 쉴레는 다른 작가들이 표현하지 않았던 인간의 본성, 어두움, 욕망, 자유에 더욱 집중한 작가이다. 쉴레의 작품들을 통해 인간 실존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본다.
글_ 우예슬 뉴욕통신원(wys0603@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