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28
국가의 주권을 빼앗긴 비운의 시기이자 근대화가 시작된 고종(1852~1919)과 순종(1874~1926)이 재위했던 대한제국.
그동안 대한제국의 미술은 일제강점이라는 시대적 상황과 도화서(圖畵署) 폐지, 사진기 기술의 도입 등으로 조선 시대의 우수한 미술 전통이 급격히 쇠퇴한 것으로 평가되어왔다. 그러나 최근 대한제국의 역사가 주목을 받으면서, 과거의 전통적인 미술을 지키고, 서방의 신문물을 받아들여 근대미술로 변화를 모색한 노력이 재평가되고 있다.
혼돈의 시대에도 꿋꿋이 발전을 거듭해온 대한제국의 미술을 재조명하기 위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대한제국의 미술-빛의 길을 꿈꾸다’ 전을 개최하고 있다.
덕수궁이라는 장소가 주는 특별함이 더해진 이번 전시는 회화, 사진, 공예 200여 점을 통해 대한제국 시대의 미술이 어떻게 한국 근대미술의 토대를 마련했는지를 보여준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Design Jungle
전시는 1부 ‘제국의 미술’, 2부 ‘기록과 재현의 새로운 방법, 사진’, 3부 ‘공예, 산업과 예술의 길로’, 4부 ‘예술로서의 회화, 예술가로서의 화가’ 등 4개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제국의 미술’에서는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바뀌며 발생한 미술의 변화를 살펴본다. 왕에서 황제가 된 고종의 지위에 맞추어 황제와 황후에게만 허용되는 황색의 용포와 의장물이 어진과 기록화에 등장하는 변화를 엿볼 수 있다.
1부 전시장©Design Jungle
검은 익선관을 쓴 황룡포 차림의 ‘고종 어진’과 대한제국의 군복을 입고 불법을 수호하고 있는 호법신이 그려진 불화 ‘신중도’, 짙고 화려한 전통적 화원화의 기법과 서양 화법이 절충된 그림이 대표적이다.
전傳 채용신, 고종 어진, 20세기 초, 비단에 채색, 180x104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6.문성, 만총, 정연 외 10인, 신중도神衆圖, 1907, 면에 채색, 181.7x171.2㎝, 신원사 소장
특히, 2007년 국내에 소개된 후 10년 만에 다시 공개되는 ‘해학반도도’를 만날 수 있는 건 전시의 백미이다.
시선을 압도하는 12폭의 이 대형 병풍은 임인년 여름, 고종 황제의 황수성절(皇壽聖節·임금의 태어난 날을 경축하는 명절)에 황실의 번영을 축수하는 의미로 황실에 바쳐졌었다. 하지만, 역사의 부침 속에서 일본에 팔린 후 1927년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미술관에 소장되었다.
조선의 그림에서 잘 볼 수 없는 화려한 채색에 금박을 입힌 이 병풍은 황실의 번영을 위해 그려졌지만 아이러니하게 대한제국의 흥망성쇠를 그대로 받아들이며 고국의 품을 떠났다.
12포 대형 병풍의 크기를 알 수 있는 '해학반도도'©Design Jungle
해학반도도海鶴蟠桃圖, 1902년 추정, 비단에 채색과 금박, 227.7x714cm, 호놀룰루미술관 소장 Collection of the Honolulu Museum of Art, Gift of Anne Rice Cooke, 1927
전시장 2층은 2부 ‘기록과 재현의 새로운 방법, 사진’으로 고종을 비롯한 황실 인물들과 관련된 사진으로 구성된다.
고종과 대한제국의 주요 인사들은 근대화의 일환으로 사진 수용에 적극적이었다. 1880년대 초 황철에 의해 최초로 서울 종로(당시 대안동)에 사진관이 설립된 이래 어진이나 기록화 같은 궁중회화의 상당 부분을 사진이 대체한다.
2부 전시장©Design Jungle
김규진, 대한황제 초상, 1905년 추정, 채색 사진, 22.9x33cm, 미국 뉴어크미술관 소장 Collection of the Newark Museum, Gift of the estate of Mrs.Edward Henry Harim
황실 가족 사진, 27x34cm,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창덕궁 인정전 동핵각에서 순종어진을 모사하는 김은호, 1928
이는 극사실성을 추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기법으로서 회화를 보완, 혹은 대체하는 차원으로 수용되었다.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상황을 보여주는 육군 대장복 차림의 ‘순종황제’, 국내에 최초로 공개되는 김규진의 첫 고종사진 ‘대한황제 초상사진’ 등이 전시된다.
고종 어진, 1918, 비단에 채색, 162.5x100cm,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3부 ‘공예, 산업과 예술의 길로’는 고종, 순종시기의 각종 공예품의 전반적인 양상과 변화를 조명한다.
당시 고종은 근대화의 일환으로 공예부문의 개량을 추진했다. 실제로 당시 공예는 미술공예와 산업공예로 나누어지며 서구와 일본의 공예 개념, 제작기법, 표현방식 등을 수용하면서 발전했다.
3부 전시장©Design Jungle
1908년 대한제국 황실이 전통 공예의 진흥을 위해 설립한 ‘한성미술품제작소’는 운영의 난항으로 명칭과 운영 주체가 바뀌는 등 성격이 달라지기도 했지만 처음으로 공예를 미술품 혹은 미술공예품으로 지칭하였으며, 도안의 개념을 수용하여 완상(玩賞)용 공예품을 만드는 등 시대적 변화를 선도했다.
백자청화운룡문호白磁靑畵型紙雲龍文壺, 20세기 초, 높이 22.6cm, 입지름 11.8cm, 바닥지름 11.5cm, 경기도자박물관 소장
문양은 조선후기 백자항아리의 전통을 따르면서도 기법은 근대기 도입된 스탠실을 사용한 ‘백자운룡문호’, 국내 최초 공개되는 김규진이 그림을 그리고, 수를 놓은 12폭 병풍 ‘자수매화병풍’ 등을 만날 수 있다.
마지막 4부는 과거 기능적 장인에 가까웠던 화원 화가가 예술가적인 성격의 화가로 변모하는 양상을 조명한다.
도화서가 해체됨과 동시에 다양한 외부의 화가들이 궁중회화의 제작에 참여하게 됐고, 오히려 ‘외주(外注)’ 화가로서, 전문가적으로 혹은 예술가적으로 대우를 받는 상황이 됐다.
자연스럽게 과거와 같은 익명의 그림이 아닌 자신의 이름을 분명히 남긴 궁중의 회화들이 제작됐다. 근대 화단에 풍속화의 새로운 전형을 제시한 채용신의 ‘벌목도’ ‘최익현 유배도’ 근대기 사군자화의 대표작가 해강 김규진의 ‘묵죽도’ 등이 있다.
4부 전시장©Design Jungle
이번 전시를 통해 대한제국시기의 미술이 그저 몰락하는 국가의 산물이 아닌 치열한 시대의 결과물이며, 한국 근대미술의 토대가 어떻게 마련되었는지 볼 기회가 될 것이다.
‘대한제국의 미술-빛의 길을 꿈꾸다’ The Art of Korean Empire-The Emergence of Modern Art
기간: 2018. 11. 15. ~ 2019. 2. 6.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전관(2, 3층)
관 람 료: 3,000원
에디터_ 김영철(yckim@jungle.co.kr)
사진 및 촬영협조_ 국립현대미술관(www.mmc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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