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29
디자인을 전공하면 모두 디자이너가 될까. 디자인이 좋아서 혹은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디자인을 전공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들 모두가 우리가 꿈꾸는 멋진 모습의 디자이너가 되진 않는다. 디자이너가 된다 해도 디자인(디자이너)을 대하는 태도, 열악한 근무환경, 쥐꼬리만한 월급 등 자신이 꿈꾸었던 모습과는 거리가 먼 현실을 만나기 일쑤다.
이런 조건들을 덮어두고라도, 디자인을 하고 싶어 디자인을 공부했지만 정말 디자인이 잘 맞는 것인지, 과연 진짜 디자이너가 될것인지 고민하는 사람들은 많다.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이 길이 맞는지 의심이 되거나, 디자인 말고 다른 일에 관심이 가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책이 있다.
〈안녕, 디자이너 – 회사이야기〉 표지 이미지
〈안녕, 디자이너 – 회사이야기〉는 이재중 저자의 고민에서부터 출발한 책이다. 미술을 즐기고, 칭찬도 들었던 저자는 디자인을 전공하기로 마음먹고 홍익대학교 디자인학부 시각디자인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입학 후 시작된 수업부터 많은 것들이 자신의 생각과는 달랐다. 디자인 관련 졸업생이 너무 많다는 말을 들었고, 그만큼 잘하는 사람도 너무 많아 디자인 말고 다른 길을 찾기로 했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은 그 첫 작업이다. 저자는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세상에 다양한 길이 있음을 알려주고 싶었고, 또 스스로 안도하고 싶었다. 그래서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 인터뷰했다. 50명의 인터뷰이를 만났고, 그들의 이야기를 책과 웹사이트(hiorbye.de)에 담았다.
〈안녕, 디자이너 - 회사 이야기〉에는 회사를 경험한 15명의 디자인 전공자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디자이너에게 안부를 묻거나 혹은 이별을 고하는 〈안녕, 디자이너〉에는 디자인을 전공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부제는 ‘회사이야기’로, 회사를 다니다 그만두었거나, 현재 회사를 다니며, 디자인 외에 다른 일을 하고 있는 15명의 디자인 전공자들의 회사 이야기다. 책은 저자의 셀프인터뷰를 시작으로, 총 203페이지로 이루어진다. 다른 많은 인터뷰이들의 이야기는 ‘안녕, 디자이너’ 홈페이지(hiorbye.de)에 소개된다.
이재중 저자는 〈안녕, 디자이너〉 프로젝트를 통해 디자인 전공자뿐 아니라, 이 일이 내 것이 맞는지 고민하는 수많은 이들에게 용기를 준다. 자신만의 길,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은 자유로운 영혼들이여, 세상은 넓고 갈 길은 많다.
“디자인 안 한다고 하니 디자인 매거진에 실리네요!”
50명의 디자인 전공자를 인터뷰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안녕, 디자이너〉 프로젝트는 웹사이트와 책으로 이루어진다.
어떻게 책을 만들게 되었나요?
〈안녕, 디자이너〉는 제 고민에서부터 출발한 작업이에요. 로고 디자인이나 브랜딩을 하고 싶어서 학교에 들어왔지만 들어와서 막상 해보니 재미있게 할 수 있을지, 나랑 맞는지 고민이 됐어요. 주변에 너무 잘 하는 친구들도 많았고, 매년 디자인 전공 졸업생도 많다고 하고요.
휴학하고 일도 해봤는데 급여 등의 경제적인 처우도 그렇고, 디자인을 쉽게 보고 도구로 생각하는 사회적인 인식도 좋지 못했어요. 그래서 다른 일을 하고 싶었는데 어떻게 살아가게 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을 인터뷰하는 작업을 진행하게 됐어요.
졸업 작업으로 〈안녕, 디자이너〉를 시작했는데, 그때가 4월이었어요. 책을 만들 생각은 하지 않았고, 일단 인터뷰한 걸 잘 정리해두자 싶었죠. 그래서 웹사이트를 만들어 아카이빙하고 있었는데, 졸업 전시 즈음이 되니 웹사이트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았어요. 이전에도 주로 책 작업을 많이 했기 때문에, 졸업 전시도 책으로 만들기로 했죠.
〈안녕, 디자이너 - 회사이야기〉 내지 이미지
총 몇 명을 인터뷰했나요?
인터뷰를 진행한 건 셀프 인터뷰를 포함해 51명이고, 그중 홈페이지에는 41명의 인터뷰가 소개돼있어요. 원래 50명을 목표로 했지만, 단기간에 많은 사람과 이야기하고, 혼자서 정리하다 보니 업로드를 미처 하지 못했고, 일부 인터뷰는 인터뷰이의 요청에 의해 업로드하지 못한 경우도 있어요.
책의 구성은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졸업 전시 두 달 전쯤부터 책을 기획하고 만들었는데, 모든 인원을 책에 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고, 단순히 웹사이트의 글을 책으로 옮기기보다는 책만의 느낌을 만들고 싶었어요. 인터뷰 형식을 1인칭의 에세이 형식으로 편집하고 저의 개입을 최소화해, 좀 더 인터뷰이의 개인적인 이야기로 전달될 수 있도록 만들었어요.
인터뷰이도 주제를 선정해 분류하고 부제를 달았어요. 첫 번째 책은 인터뷰이들의 회사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아서 부제를 ‘회사 이야기’로 정하고, 15개의 이야기를 선정했어요.
책을 만든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요?
프로젝트를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처음 이 주제를 발표했을 때 주변의 반응 덕이었어요. 졸업 프로젝트 기획을 발표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여러 기획 중 이 기획에 대한 반응이 좋았거든요. 큰 뜻을 가지고 한 건 아니었는데, 재미있을 것 같다, 의미가 있다, 나도 궁금하다 등의 반응을 보니 프로젝트화해서 잘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중에도 주변에서 많은 관심을 가져주고, 응원도 많이 해줬어요. 학교를 다니면서 ‘이거 내 작업이야’라고 할 만한 작업이 없었는데, 이 프로젝트를 하고부터는 술자리를 가도 제 프로젝트 이야기를 해주더라고요. 처음으로 대표작이 생긴 느낌이라 신선했어요.
인터뷰이들의 반응은요?
과거에 스스로가 경험했고 고민했던 부분이라 흔쾌히 응해주신 분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응원과 격려도 많이 해줬고요. 한 분은 ‘왜 홍대 다니면서 그런 고민을 하냐, 그 이유를 듣고 싶어서 인터뷰하려 했다’고 하셨는데, 기억에 남아요.
〈안녕, 디자이너〉 홈페이지에서는 〈안녕, 디자이너 - 회사이야기〉에 실린 내용 외에 더 많은 디자인 전공자들의 야이기를 만날 수 있다.
인터뷰이 선정 기준은?
처음에는 인터뷰이 선정에 고민이 많았어요. ‘디자인을 전공하고 디자이너가 아닌 일을 하는 사람’으로 선정을 했는데, 디자인을 전공한 건 분명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디자인, 디자이너로 분류할 수 있는지 없는지가 애매했거든요. 일러스트 작가라던가 영상감독, 디자인 회사의 기획자 등은 디자이너는 아니지만 디자인 전공 안에서 배우는 영역이거나 혹은 디자인과 밀접한 관련이 있거든요.
하지만 인터뷰를 하면서 그런 기준보다는 인터뷰이의 생각을 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어 디자인 회사의 기획자와 인터뷰를 했는데, 인터뷰이는 디자인의 결과물을 만들지 않고 결과물의 앞 단만 작업하기 때문에 디자이너가 아니라고 하는데, 저는 디자이너라고 생각되는 거예요. 학교마다 디자이너를 정의해 가르치는 것이 다르고, 개개마다 디자이너의 정의가 다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인터뷰를 해도 그 이야기 안에서 얻는 것들이 다 있었기 때문에, 제가 임의로 판단하기보다는 〈안녕, 디자이너〉와 인터뷰하고 싶다고 한 사람은 일단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정리했어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인터뷰이가 있다면?
3시간이 넘게 인터뷰한 적이 있어요. 녹취도 힘들고, 글로 정리할 때도 적절한 분량으로 만들기가 어려웠는데, 그보다 인터뷰 자체가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당시 인터뷰이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만났는데, 곧 폐업을 앞두고 있어서 부랴부랴 일정을 잡았고, 폐업하기 이틀 전 인터뷰를 했어요. 본인을 소개할 때 디자인계를 떠도는 귀신이라고 했는데, 경험한 일도 정말 많았고, 흥미로웠어요. 1년이상 한 일이나 1년 이상 다닌 직장도 없고, 관심이 생기면 일을 시작하고, 인연이 되면 직장도 다니고, 가게도 열고 그런 삶을 사는 분이었어요.
인터뷰를 하고 나서 그동안 왜 길게 일하는 것에 집착했는지, 나에게 꼭 맞는 일을 찾으려고 고민을 했는지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일단 해보면 되는데 말이에요. 저도 생각나면 일단 해보는 편이라, 어쩌면 미래에 제가 그 인터뷰이처럼 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안녕, 디자이너 - 회사이야기〉에서는 인터뷰이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 ‘저런 일을 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한 인터뷰이가 있다면?
책방을 운영하며, 최근에는 출판사를 만들어 책을 쓰시는 홍지숙 님이요. 책방을 운영하고, 프리랜서 디자인도 하고, 정당에서 일하기도 하고, 행사에서 작가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어느 모임의 총무이기도 하고, 친구들과 노래하며 음악을 하기도 한 분이에요.
그전에는 인터뷰이를 정리할 때 하나의 직업으로 소개하곤 했는데, 어떤 직업으로 소개해야 할지 고민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아, 꼭 직업이 하나일 필요는 없겠구나’하는 걸 느꼈어요. ‘디자이너 이재중입니다(안 하고 싶지만 만약 디자인을 한다면)’보다는 ‘저는 이재중이고, 디자인도 하고, 여행 다니며, 사진도 찍고, 농사도 짓고, 게스트하우스도 하고, 공연도 합니다(다 언젠가 하고 싶은 것들)’라는 식으로 표현하면 좋겠어요. 어쩌면 하나의 일을 하기도 벅찰지 모르지만, 지금의 꿈이에요, 직업에 구애받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거요.
어떤 일을 할지 정하셨나요? 디자인을 하실 건지 궁금해요.
처음 프로젝트를 시작한 건 제가 디자인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전공과 직업이 꼭 같아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인터뷰를 하며 인생을 꼭 직업에 맞추어서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졸업을 하면 보통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데요, 저도 그랬지만, 인터뷰 후에는 어떤 곳에서, 어떤 분위기에서, 어떤 기후에서, 어떤 사람들과 살지를 더 생각하게 됐어요.
지금은 외국에서 사는 것을 유력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지난 7월에 과테말라로 봉사활동을 다녀왔는데, 사람의 삶에 기후가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걸 인식하게 됐어요. 어느 나라에서 살지는 여기저기 돌아다녀 보며 살펴봐야 할 것 같아요. 최근에 여행을 했는데, 이번 여행도 그런 생각의 일환이었고요.
하지만 막상 외국에 나가려고 하니 디자인을 해야만 하더라고요. 직업을 갖기 위해서는요. 아마 디자이너로 처음 외국 생활을 시작하고, 계속해서 다른 일을 할 수 있을지 시도해볼 것 같아요. 혹시 디자인을 하는 데도 제 생활과 삶이 즐겁다면 계속 디자인을 할지도 모르지만요.
“디자인을 전공하면 모두 디자이너가 되어야 할까?”
책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저도 여러 경험을 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는데요. 그래서 처음 기획의도와는 조금 다른 것도 있고 추가된 것도 있지만, 처음에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로 대답을 대신하고 싶어요. 제가 지난 4월에 인터뷰 시작하면서 했던 셀프 인터뷰의 내용이에요.
“세상에는 다양한 길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저 자신도 그거에 대해서 안도하고 싶었어요. 저 자신은 디자인을 안 할 거다라는 말을 밥 먹듯이 달고 살았지만, 사실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나 같은 고민을 했던 사람들, 특히나 선배들은 만난 적도 없고 이야기를 들은 적도 없어서 마음 한편에는 불안함이 있었거든요. 그리고 학교에 다니면서 보이지 않는 울타리가 있다고 느꼈어요. 그 누구도 강요하지 않지만, 그 울타리 때문에 울타리가 처진 길을 가야 하고, 그 길에서 이탈하려고 하면 스트레스받고, 고민할 수가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 울타리를 허물고 싶은 건 아니지만, 옆에 다른 길도 만들어 놓고 울타리 옆에서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에게 소리치고 싶었어요. ‘친구야! 여기 다른 길도 있으니까 울타리 밖도 한번 봐봐!’라고 말이에요.”
에디터_ 최유진(yjchoi@jungle.co.kr)
사진제공_ 이재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