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4-12
서울, 이름만 들어도 꿈과 낭만 그리고 성공을 보장해 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물론 대한민국의 수도라는 상징적 의미도 있지만, 경제, 문화 등 거의 모든 활동이 서울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늘 바쁘게 돌아가는 서울에서 잠시 눈을 돌려보면 우리가 몰랐던 곳에서도 활발히 문화 활동은 이루어지고 있다.
왜 우리는 서울이라는 좁은 울타리 안에서 갇혀 있었던 걸까?
출판사 ‘추르추르’를 운영하는 진나래 대표는 그동안 서울에만 집중되었던 포커스를 자신이 나고 자란 인천으로 옮겨왔다.
그곳에 있을 때는 몰랐지만, 다시 돌아오고서야 비로소 알게 된 인천의 매력과 지역아티스트들이 만들어가는 로컬문화를 <새러데이 인천> 한권에 담아냈다.
서울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인천만의 로컬 문화가 궁금해졌다.
<새러데이인천>, 추르추르프레스, 2019 / <새러데이 인천> 프로젝트팀: 박가인(에디터), 이지혜(디자이너), 진나래(편집장), 최수진(에디터)
추르추르 진나래 대표
안녕하세요. 출판사 ‘추르추르’ 소개 부탁드려요. 혹시 ‘추르추르’가 고양이 간식 ‘추르’인가요?
실은 말씀드리기 부끄러운 정도로 별 의미 없이 쉽게 지은 이름입니다. ‘출’’판’의 각 글자를 조금 더 발음하기 쉬운 ‘추르추르’와 ‘판판’으로 나누어서, 성격이 다른 일들을 나누어 하고자 했습니다.
예를 들어 잡지나 커피테이블북, 만화나 드로잉북, 또는 물성이 강한 책 등의 것들은 추르추르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판판’의 경우 아직 성격이 불명확하지만, 예술 및 인문사회, 디지털매체를 이용한 출판물, 영상, 또는 그 외 다양한 창작방식을 포괄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고양이 간식 ‘츄르’와 발음이 유사한 것 역시 저희 출판사를 ‘추르추르’로 이름 짓는 데에 결정적인 배경이 된 것도 사실이에요!
‘간식’이라는 저희의 모토와도 상통하고, 저도, 제 주변에도, 대체로 고양이를 키우고 있거나 좋아합니다.
지금까지 어떤 책을 만드셨나요?
처음은 저의 <피아노를 위한 소곡>이란 책을 만들었습니다. 80~90년대를 풍미한 피아노 교육 열풍을 겪은 당사자의 경험을 모은 작고 가벼운 책입니다.
많은 분이 아시겠지만 80~90년대에는 피아노를 배우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내용의 뉴스가 나오기도 할 정도로, 피아노 교육이 열풍이었답니다. 그것이 교육을 통해 중산층으로 진입하기 위한 일종의 ‘코드’였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백과사전이나 과학동아전집, 세계문학전집, 이런 것들처럼이요. 그래서 저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피아노에 대해 애증과도 같은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우리들의 추억 또는 애증을 담았습니다.
두 번째로 만든 <이주민 패션매거진>은 박가인 작가의 작업이에요. 또래 이주민들의 패션 코드를 사진으로 아카이빙한 사진집입니다.
작가가 친구들이 옷을 잘 못 입은 사람들을 가리켜 ‘외노자처럼 입는다’고 놀리는 말에 문제를 느껴 시작했다고 해요.
그래서 소위 ‘외노자’로 불리는 국내 체류 산업연수생들을 만나고, 특히 옷차림에 신경을 쓰는 또래 이주민 패션피플을 찾아 스트리트패션 화보처럼 만든 작업입니다. 다들 나름의 패션 코드가 있고, 각자의 취향을 존중하자는 것이죠.
이주민을 타자화하기보다는 같은 또래 젊은이로 인식한 작업이라는 점에서 저희 추르추르와 결이 맞다고 생각했어요.
세 번째로 저의 <K의 가족사>라는 책입니다. 아직 유통이나 홍보는 하지 않았어요. 납북된 할아버지에게 쓰는 여행엽서 모음집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번 <새러데이인천>을 출판사 자체 기획으로 제작하였습니다. 앞의 세 권의 책이 현대미술 작가들의 프로젝트 결과물을 ‘추르추르’에서 펴낸 것이라면, <새러데이 인천>은 지역의 작가들과 아트씬을 소개하고자 자체적으로 기획한 프로젝트입니다.
향후 더 많은 작가, 창작자들의 출판 결과물을 함께 하고자 하며, 로컬아트 매거진 역시 지속하고 싶어요.
<피아노를 위한 소곡>, 진 인이 나래, 추르추르프레스 2018
<피아노를 위한 소곡>과 <이주민 패션매거진> 등 일반 출판사에서는 보기 힘든 주제의 책입니다. 주제 선정과 책 작업 과정이 궁금합니다.
둘 다 현대미술 작가들이 기획한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다소 다르게 여겨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피아노를 위한 소곡>은 일시적 피아노교습소를 열고 교습 광고에 응답한 이들과 지인들의 이야기를 담았어요. 그러니까 책만이 아닌, 일시적 교습소를 열고 인터뷰를 하고, 그러한 모든 과정이 하나의 프로젝트입니다.
<K의 가족사> 역시 여행 과정을 추적한 미행사진을 포함하는 등, 결과물만이 아닌 그 책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이 모두 하나의 프로젝트라 할 수 있어요.
<이주민 패션매거진> 역시 그러합니다. 인천 부평이나 안양 등지에서 이주민들을 만나고 그들의 패션을 스트리트패션으로 아카이빙하는 행위 자체가 중요해요. 그래서 출판을 업으로 삼아온 분들과는 다른 시선으로 책에 접근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 지점은 ‘추르추르’의 도전인 동시에 헤쳐나가야 할 부분이기도 해요. ‘추르추르’의 설립 목적 중 하나가 출판을 매개로 현대미술 프로젝트를 더 많은 이들에게 소개하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존 출판계와 책이라는 매체 자체에 대한 이해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주민 패션매거진>, 박가인, 2017, 추르추르프레스 2018
‘추르추르’의 책은 친근하지 않은 낯선 분야를 다루고 있어요. 책을 구매한 독자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몇몇 분들이 좋은 반응을 보여주셨어요. 특히 <피아노를 위한 소곡>은 우리 세대가 공유하는 추억에 기반하기 때문에 반응이 좋은 것 같아요.
<새러데이 인천> 역시 생각보다 많은 분이 후원해주시고 관심을 보이고 계셔요. 앞으로는 보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에게 평가받고 싶은데, 현재까지는 그 소통 창구가 많지 않아요.
초기이다 보니 색을 먼저 분명히 하는 것에 마음이 급하기도 합니다. 현재로서는 반응에 연연하기보다는 하고자 하는 일을 밀고 나아가야 할 때인 것 같아요.
사실 모든 매거진이 서울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소외되었던 지역과 아트씬에 집중한 이유가 있을까요?
모든 매거진만이 아니라, 많은 매체가 서울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어요. 마치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사는 것처럼요.
하지만 다른 지역들을 돌아다니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 서울 중심의 시선과 취향이 얼마나 편협한 것일 수 있는지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제가 인천에서 나고 자랐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학교 때문에 경기, 서울 지역을 전전하다 대학원 졸업 후에 다시 인천에 살게 되었어요. 월세에 지쳐 부모님 댁에 들어온 거지요.
처음에는 인천이 참 삭막하기만 한 줄 알았는데, 원도심 지역을 돌아다니고 동료 작가 분들을 만나게 되면서 생각이 달라졌어요. 명성이나 커리어에 대한 욕망, 또는 주변 시선에 대한 의식은 덜하면서도 여전히 흥미로운 작업을 하는 역량 있는 작가들이었어요.
서울, 경기 등 다양한 지역에서 활동했는데 이 곳에서 만난 작가들이 제게는 무척 소중했습니다. 이후로는 매일같이 전철을 타고 시간을 길 위에 버리면서 왜 보다 가까운 곳에 있는 매력들을 외면해왔을까, 또는 발견하지 못했을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저는 인천에서 벗어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한번 시각이 바뀐 이후, 이제는 모든 것이 특정 커뮤니티의 취향으로 보여요. 분명 우리나라 문화예술 활동들의 대부분이 서울에서 이루어지고, 사람들의 이목 역시 서울로 쏠리기는 해요.
우리 사회, 특히 문화계는 서울을 디폴트로 모든 것을 파악하려 하니까요.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서울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이 다 서울의 것도 아닙니다. 타 지역에 있다고 해서 문화예술인의 역량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요.
다만 지역의 경우 관의 문화예술 이해도가 떨어지고, 보다 소비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곳과의 네트워크, 그리고 지역의 문화를 비추는 렌즈가 부족합니다. 많은 것을 기대하지는 않아요. 다만 이 곳에, 저 곳에, 이런 사람들이, 저런 사람들이 있다는 그것 정도는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추르추르의 로컬아트 프로젝트가 다양한 곳의 예술과 예술가들을 바라보는 여러 가능한 렌즈 중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새러데이인천>, 추르추르프레스, 2019
<세러데이 인천> 내용 소개 부탁드려요.
우선 가장 중요하게는 인천에서 살거나 활동하는 작가들을 인터뷰한 내용이 담겨 있어요. 작가의 작업은 물론 그의 사생활, 취미, 끊임없이 아르바이트를 찾는 프리터 또는 프리랜서로서의 모습까지, 보다 허심탄회한 인터뷰를 담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이번에는 특히 동인천에 주목해서, 예술가 모임인 ‘회전예술', '멍때리기 대회'를 만든 웁쓰양컴퍼니의 웁쓰양, 그 외에도 여러 흥미로운 작업을 하는 예술가들을 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작가들로부터 인천 지역의 장소들을 추천받았어요.
이를 통해 지자체 등이 투어리즘을 위해 소개하는 장소들이 아닌, 실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그 삶을 통해 경험하는 장소와 분위기를 전할 수 있었습니다.
<새러데이 인천>은 표지부터 80년대 많은 사랑을 받은 <선데이서울>을 떠올라요. <선데이 서울>을 벤치마킹한 이유가 있나요?
현대예술 작가들을 소개하고는 싶은데, 시중의 잡지나 작가인터뷰들을 통해 보는 예술과 예술가는 어딘지 모르게 천편일률적이거나 신화화된 것으로 보였어요.
예술이 반드시 특별하거나 우리 삶과 동떨어진 것만도 아니고 소위 '아뤼스트 아우라’를 뿜어내야만 작가인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예술가에게 기대하는 특정 이미지가 있는 것 같더라고요.
예술이 반드시 무겁거나 진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게 아니에요. 반드시 재기발랄해야 할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그렇게 다양한 예술과 예술인을 비추어야 할 매체들의 다양성이 떨어진다는 점은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때로는 아주 작은 연예계 같기도, 놀이터 같기도, 가십의 장 같기도 한 예술계, 그리고 현실을 사는 예술인들의 활동과 삶을 어떻게 보다 일상에 가까운 것으로 흥미롭게 전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70-80년대 대중오락잡지 <선데이서울>을 벤치마킹하게 되었습니다.
<선데이서울>을 구해서 보았는데, 당시 대중문화와 도시문화는 선데이서울을 통해 아카이빙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더라고요. <선데이서울>을 따라갈 수는 없지만, 소위 ‘하이아트’라 불리기도 하는 현대예술을 그러한 방식으로 전하는 것을 시도해보고 싶었어요.
이를 통해 신화화된 작가이미지를 그려내기보다는 삶을 살며 작업활동을 지속하는 작가들의 일상적 고민을 인터뷰를 통해 허심탄회하게 담아냈습니다.
<새러데이인천>, 추르추르프레스, 2019
공개된 표지와 내지만 봐도 복고적인 느낌이 들어요. 디자인 콘셉트에 대해 말해주세요. 또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작업했나요?
저도 그렇고, <새러데이 인천>을 위해 함께 모인 친구들이 대체로 키치적이고 복고적인 취향을 좋아해요.
저희 디자인을 맡아주신 이지혜 디자이너도 마찬가지이고요.
특히 이번 <새러데이 인천>을 위해서는 키치스러우면서 너무 꽉 짜인 것보다는 느슨한 디자인을 원했고, 완성된 디자이너보다는 함께 하면서 같이 경험하며 실력과 스타일을 쌓아갈 수 있는 사람을 원했어요.
디자인 부분에서는 처음 콘셉트만 <선데이서울>을 제시하고, 이후 거의 전적으로 디자이너의 시도에 따랐습니다. 소제목 등도 대체로 디자이너가 선정했습니다.
잡지를 한 권 만드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요. 특히 처음으로 시도되는 잡지는 더 무게감이 클 것 같아요. 매거진을 제작하면서 어려움은 없었나요?
콘텐츠 확보가 어려웠어요.
처음에는 몇 지인들과 팀을 꾸리고, 우리가 콘텐츠를 생산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게 쉽지가 않더라고요.
첫 잡지는 부족한 부분을 제힘으로 직접 채우려다 보니, 대표 에고가 남발하는 잡지가 되어버렸어요. 제가 인사말도 하고 작가로도 소개되고 미니소설도 쓰고…
제가 넣어달라고 한 건 아니지만 어쨌거나 표지에도 등장하고… 앞으로는 잡지가 좀 알려지면 보다 다양한 작가들의 콘텐츠를 받아 채워보고 싶어요.
또한 첫 시작이라 재단 지원금을 받아 꾸리고자 했는데, 행정적인 부분에서 자꾸 제동이 걸리면서 많이 지치기도 했어요. 돈을 주니 고맙기는 하지만 도움을 받은 동시에 발목이 잡혔달까요.
대중적 인지도를 기반으로 하는 잡지가 아니다 보니 공적 지원에 기대는데, 이 공적 지원이란 것이 양날의 칼이에요. 자생의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새러데이인천>, 추르추르프레스, 2019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해요.
로컬아트 프로젝트의 다음 지역으로는 제주와 광주, 수원이나 안양 정도를 생각하고 있는데, 아직 확정은 하지 못하고 있어요.
이번에 다 담지 못한 인천 지역을 좀 더 소개하고도 싶고요. 출판사 차원에서는 다양한 매체의 출판 방식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팬시용품 같은 책에서부터 전자책, 영상과 인터렉티브까지, 매체를 폭넓게 다루고 싶어요.
폭넓은 매체를 통해 현대예술 작가를 포함한 창작자들의 흥미로운 프로젝트들을 소개하고 싶어요.
에디터_ 김영철(yckim@jungle.co.kr)
사진제공_ 추르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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