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30
디지털 시대의 우정이란?
인류는 오래 세월 동안 우정(friendship)이라는 주제를 두고 문학작품으로 이야기하고 역사와 철학으로 논하는데 많은 잉크를 흘려가며 기록하고 읽고 공감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한 평생 동안 어떤 이는 친구들 사이에 둘러싸여 풍성한 사교 관계를 누리며 살아가고, 또 어떤 이는 언젠가 앞에 나타날 진실한 친구를 그리며 우정에 목말라하며 살아간다. 인간이란 필연적으로 타인으로부터 자극과 영감을 받고 인정을 구하고 싶어 하며, 생의 난관이 닥치면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우정을 나누는 친구들 사이에는 상대방을 향한 순수한 존중감과 신뢰가 오간다. ⓒ Photodisc.
정직, 진실, 공감, 신뢰 - 이 모든 숭고하고 고매한 가치가 응축된 가치
친구란 인생의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생의 최고점과 위기를 함께 나누면서 함께 성장하며 우리의 인격이 원숙해지게 해주는 존재라고 정의된다. 진정한 친구 사이에는 형언하기 어려운 애정, 존경, 친밀, 신뢰의 감정이 상호적으로 오간다. 누구의 강요 없이 함께 시간을 보내고 인생 경험을 공유하며 내면에 간직한 생각과 의견을 교환하는 순수히 자발적인 관계가 우정이다.
여자는 깊은 마음속 비밀스러운 감정과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으로, 남성은 여러 경험과 활동을 함께 하는 것을 통해서 우정을 느낀다고 알려져 있다. 과거 아날로그 시절, 사람들이 친구에게 바쳤던 시와 그림 앨범. ⓒ Museum Abtsküche, Heiligenhaus. Photo: Stefanie Kösling.
작가 제스 스콧(Jess C. Scott)은 그녀의 사이버펑크 소설 〈인생의 이면(The Other Side of Life)〉에서 ‘친구는 내가 선택한 가족’이라고 했다. 부모와 자식, 상사와 부하같이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운명적으로 주어진 관계에 얽혀있는 개인은 위계 관계가 암묵적으로 강요하는 권력과 권위에 복종하며 역할과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반면 우정은 동등한 한 개인이 다른 개인을 대하는 가장 평등한 관계이기도 하다.
역사와 사회의 진화에 따라 인간의 사고방식과 생활상은 변했다. 그러나 우정이란 가치관에는 숭고함과 소중함이 깃들어있다. 고대와 중세 우정은 두 개인 간의 솔직하고 충직한 우정이, 인간의 이성과 감성이 강조됐던 계몽주의와 낭만주의 시대에는 진지하고 연민이 넘치는 정열적 우정이 높이 평가됐다. 과거 우정이 철학자들과 대문호들의 사색의 주제였다면, 오늘날에 와서 우정은 사회학과 심리학자들이 관찰하는 사회문화적 현상으로 진화했다.
낭만주의가 유행하던 19세기, 유럽인들은 자기가 아끼는 친구의 사진이나 머리카락을 보관해두고 들여다보면서 애틋한 우정의 감정을 간직했다. ⓒ Museen für Kulturgeschichte, Museum August Kestner, Hannover und Deutsches Historisches Museum Berlin, Foto: Stefanie Kösling.
대문호 괴테와 시인 실러의 각별했던 우정과 협업은 19세기 독일 ‘바이마르 고전주의’ 문학을 잉태시켰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유태인 대니 하이네만을 홀로코스트로부터 구출해준 독일인 콘라트 아데나우 간의 진한 우정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그런가 하면 인생 최대의 경쟁자인 적수가 보다 위대한 업적과 성공으로 인도해주는 둘도 없이 소중한 스승이 되어주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는 특히 스포츠 분야에서 경쟁하며 활동하는 프로 선수들 사이에서 볼 수 있는데, 예컨대 1970년대 테니스 챔피언 비에른 보리(Bjorn Borg)가 그의 조기 은퇴의 결정적 화근이었던 최강 적수 존 매캔로(John McEnroe)와 베스트 프렌드가 됐다는 후일담은 영화 〈보리 대 매켄로〉에 잘 묘사된 바 있다.
친한 친구와 가장 많이 하는 활동 중 하나인 함께 사진 찍기. 시대와 문화가 변했을지언정 친구의 얼굴을 기록해두고 간직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인류 공통적인 친밀 행위다. ⓒ Museum für Kommunikation Frankfurt. Photo: Stefanie Kösling.
친구는 어디서 만나지? - 활동 반경 넓히기
인터넷 모바일 디바이스와 소셜미디어가 탄생하기 이전인 아날로그 시대, 사람들은 귀중한 우정이란 관계를 찾기 위해 사회적 공간으로 나갔다. 영유아기 부모와 가정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유치원, 학교, 교외활동, 이웃을 통해서 친구를 만난다. 직업세계에 진출한 직업인은 직장과 일 관계에서, 친구관계를 탐험하고 싶은 젊은이들은 종교단체, 사교시설, 동아리활동을 통해 새 친구를 만나고 우정을 키워나간다.
“친구가 되고 싶은 마음은 빨리 생기지만, 우정은 오래 익는 과실처럼 긴 시간이 필요하다”고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듯이, 우정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소통하는 두 친구 간의 적극적인 의지와 노력이 있을 때라야만 유지된다.
고대와 중세 사람들은 교감의 징표로써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와 편지를 주고받고 선물을 보내며 우정을 나눴다. 20세기 이후 통신기술의 발달과 함께 편지 대신 전화가 가장 인기 있는 소통과 우정 가꾸기의 수단이 됐다. 디지털 시대인 오늘날, 사람들은 인터넷 사이버 공간과 소셜미디어 플랫폼에서 우정의 뜰을 키우고 가꿔나가고 있다.
인간사의 모든 중요한 관계가 그러하듯, 우정도 적극적이고 꾸준한 연락과 소통의 노력이 있어야만 지속되며, 이는 디지털 시대에도 변함없다. ⓒ Museum für Kommunikation Frankfurt. Photo: Stefanie Kösling.
소셜미디어는 요즘 현대인들에게 친구를 많이 만들고, 나를 좋아해 주는(Like) 친구를 모으고 인맥관리를 하라고 독려한다. 소셜미디어가 21세기인의 디지털 얼굴이자 정체가 된 지금, 우리는 더 많은 친구를 모으고 더 많은 친구들로부터 ‘호감’을 얻는 사람이 되기 위해 우리의 신상과 이력을 정리하고, 보다 예쁘고 앳되고 매력적으로 보이는 얼굴 표정, 몸 포즈, 말투와 목소리로 우리 자신을 세상에 공개한다. 하지만 ‘좋아요’ 버튼을 눌러준 그 사이버 친구들이 진정한 친구들일까?
진정한 우정이냐, 인맥관리용 네트워킹이냐?
외모가 출중하고 사회적 자원을 가진 사람을 친구로 두고 싶은 마음은 인지상정이리라. 세상만사가 디지털화된 21세기 디지털 시대, 과거 보다 친구 만들기와 친구 관리가 쉬워졌다. 또 그런 만큼 디지털화된 친구 관리 문화는 자칫 현대인들을 ‘보기 좋으면 그만’이라는 외모지상주의와 수 백 명의 가상세계 속 지인들과 가짜 친구들의 풍요 속에서 내면의 공허, 불안감, 자괴감, 고독이라는 어두운 뒤안길로 내몰기도 한다.
문화와 연령대를 불문하고 충직한 친구가 있는 사람은 외로운 사람보다 정신적 행복도가 높고 신체적으로도 건강하다. 〈바닷가에서(Am Meer)〉 ⓒ Photo: Susanne Uhl.
아날로그 시대든 지금 같은 디지털 시대든 상관없이, 사람들은 지인 관계(acquaintanceship)를 우정 관계라고 오해하곤 한다. 흔히들 자기가 속해있는 무리와 또래집단 속 구성원들을 친구라고 부르곤 하지만, 교내에서 인기가 많은 학생이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진실한 친구가 없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흔히 친구라 부르는 자들 대다수는 친구(friend)가 아닌 지인(acquaintance)일 뿐이다.
21세기 테크는 현대인들의 사회적 고립과 고독감을 달래줄 것을 시도한다. 예컨대, 노인과 어린이들은 반려용 인공지능 로봇과 친분을 나누고, 가상현실 안경은 함께 하고픈 공간과 친구들을 가상현실에서 만날 수 있게 해준다고 기약한다. 정말 테크는 많은 현대사회 속에서 자꾸만 상실되어가는 참된 우정 결핍 현상을 해결해 줄 수 있을까?
디지털 시대의 새 친구 반려용 소셜 로봇. Neue Freunde ⓒ Robotelf Technologies Co. 시대의 흐름과 함께 변해온 인류의 우정 지키기 문화를 고찰해 보는 문화전시회 ‘네가 좋아!(Like You! Freudschaft digital und analog)’전은 독일 프랑크푸르트 커뮤니케이션 박물관(Museum für Kommunikation Frankfurt)에서 2019년 9월 1일까지 열린다.
우정이 우리 인간에게 유독 소중하고 유익한 이유는 상대방과의 상호적 주고받기(give-and-take)와 갈등(conflict)을 거치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더 깊고 신뢰하는 관계로 성숙시켜주기 때문이다. 로봇과 인공지능이 인간의 감정과 지각을 이해할 수 있는 그날이 온다 해도 우정이란 ‘네 잎 클로버처럼 찾기 어렵지만 가지면 행운’인, 개인 대 개인 사이 꽃 필 수 있는 드문 복(福)으로 남을 것이다.
글_ 박진아(미술사가·디자인컬럼니스트, jina@jinapark.net)
All images courtesy: Museum für Kommunikation Frankfu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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