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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스칸디나비아 디자인 이야기] 레고 하우스를 가다

2020-09-04

덴마크의 작고 소박한 도시 빌룬드(Billund).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레고(LEGO)의 고향이자 본사가 있는 곳이다. 원래 목수였던 창업자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얀센(Ole Kirk Christiansen)이 1932년 레고를 탄생시킨 역사적인 지역이며, 지금은 전 세계 여러 나라에 오픈한 레고 월드(LEGO world)의 원조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레고(LEGO)’라는 이름의 유래는 덴마크어로 '재미있게 놀다'라는 뜻을 가진 'LEG GODT'를 줄인 것이며, 회사 이름인 동시에 완구 이름이기도 하다. 초기에는 나무를 깎아 블록을 제작했으나 1940년대에 플라스틱을 이용한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면서, 블록 완구 계열에서 지금과 같은 독보적인 위치에 오르게 되었다. 지금과 같은 형태의 블록은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얀센의 아들 고트프레드가 고안했다고 한다(출처: 위키피디아).

 

이번에 소개하려는 레고 하우스(LEGO HOUSE, legohouse.com)는 지난 2017년 오픈했다. 사실 레고 하우스는 필자가 덴마크의 놀이터 디자인 회사인 몬스트럼(Monstrum)과 토크 세션을 진행하면서 알게 되었다(당시 몬스트럼은 레고 하우스에 들어갈 놀이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게다가 레고 하우스의 건축은 개인적으로도 팬심이 있는 덴마크 건축회사 BIG(Bjarke Ingels Group)이 맡았다고 하니 더욱 기대가 되었다. 그들이 말하는 건축의 주요 콘셉트 ‘레고 블록이 만들어낸 구름’이 실제 레고 하우스에 어떻게 녹아들어 있는지 궁금해졌다.  

 

거대한 레고 블록 21개가 모여 하나의 구름 형상을 이루고 있는 레고 하우스 ⓒ LEGO


설계를 총괄한 건축사무소 BIG이 말하는 비하인드 스토리

 

 

레고 하우스는 특이하게도 주택가 한가운데에 들어서 있다. 지역 사회와 어우러지는 공간을 기획한 것이다. 건물의 외관은 블록 형상의 특성상 계단식으로 설계되어 있어 동네 아이들이 오르내리며 노는 놀이터 역할을 한다. 주변에는 휴식 벤치와 테이블, 분수대, 모래 놀이공간 등도 세심하게 구성되어 있어 꼭 레고 하우스 티켓을 구매하지 않더라도 지역 주민들이 언제든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방문한 날도 피크닉을 즐기는 동네 주민들을 여럿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런 순기능들을 굳이 누가 설명해 주지 않아도 ‘아, 그렇구나’ 하고 이해가 되더라는 것, 부연 설명 없이 의도가 고스란히 전달되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가장 설득력 있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레고 하우스 정문으로 들어서면 빨강, 노랑, 파랑, 녹색 등의 컬러별로 구분 지어진 체험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방문객들은 컬러별로 구분된 공간을 자유롭게 오가며 다양한 체험을 하게 된다. 수천, 수만 개의 레고 블록으로 완성된 공룡 전시실, 체험관 중앙에 설치된 나무 형상의 레고, 끊임없이 쏟아지는 물줄기를 표현한 레고 폭포, 방문객 사진을 레고 픽셀 작품으로 변형시켜 보여주는 갤러리 체험관 등 그야말로 제한 없는 상상력의 공간은 오감을 즐겁게 해주었다. 과연 어떻게 이 많은 레고 부품을 조립했을까, 어떻게 저 부분을 표현했을까, 제작자의 아이디어와 감성, 그리고 수고로움이 함께 엿보였다.

 


레고 하우스 최상층에 자리 잡은 공룡 존 ⓒ LEGO

 

중앙계단을 따라 올라가면서 거대한 레고 나무 (LEGO tree)를 감상할 수 있다 ⓒ LEGO 

 


레고 하우스의 모든 장소, 즉 블록 내 공간은 높은 천정고와 개방 구조로 상당히 쾌적하다. 실내에 있지만 전혀 답답함이 없고 서로의 공간들은 마치 서로 소통하듯이 연결되어 있어 눈을 즐겁게 해준다. 특히 건물의 각 층에서 연결되는 야외 테라스와 놀이터는 레고 하우스의 실내 공간과 자연스럽게 이어져서 마치 실내와 야외가 구분 없이 설계된 듯한 느낌을 준다. 무엇보다 야외 테라스의 놀이터 설계는 세계적인 놀이터 디자인 회사인 몬스트럼이 참여해 주목을 받았다. 단순 놀이기구 설계가 아닌 특별한 스토리를 담고 있는 구조물과 소품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어른들마저 함께 놀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레고’라는 브랜드 이미지와 정말 찰떡궁합인 협업 사례이다. 

 


컬러로 구별되는 다양한 경험존을 통해 방문객은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 LEGO

 

 

레고 하우스 테라스에 설치된 놀이터. 놀이터를 전문으로 디자인하는 몬스트럼의 작품이다. ⓒ Sangwoo Cho

 

 

레고 하우스 지하층에 위치한 히스토리 컬렉션(History Collection)도 오래 머무른 공간이었다. 어두운 전시 공간에 지금까지 레고의 역사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나의 발길을 사로잡은 곳은 바로 초창기 레고 모델들이 전시되어 있는 섹션이었다. 투박한 나무로 만들어진 레고, 클래식하고 레트로적인 감성이 물씬 나는 예전 레고 모형들은 어쩌면 지금의 그것보다 훨씬 더 감성적이며 아름다웠다. 지금의 플라스틱이 전하지 못하는 따뜻한 소재의 느낌과 친근함 때문이었던 것 같다. 당시의 생산 공정과 방식을 고려한 디자인, 설계 방식도 인상적이었다. 전시 공간을 한바퀴 돌고 나면 현재의 레고 형태가 나오기까지 역사적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고 동시에 미래를 준비하는 그들의 이야기도 엿볼 수 있다.

 


레고 하우스 히스토리 컬렉션에 전시된 초창기 레고 샘플들 ⓒ Sangwoo Cho

 

레고 본사 디자이너가 본인이 설계한 제품을 직접 설명해 준다. ⓒ LEGO 

 


디자이너로서 흥미로웠던 공간도 있었다. 바로 레고 본사 디자이너가 직접 본인이 디자인한 작품을 설명해 주는 방이었다. 이날은 레고 스타워즈(Lego Star Wars) 시리즈의 새로운 출시 모델을 담당 디자이너가 소개하고 있었는데, 스케치 과정부터 아이디어 전개, 최종 양산 제품의 상세 설명까지 꽤 디테일하게 설명해 주었다. 토이 디자이너(Toy designer)라는 특별한 분야에서 일하는 디자이너들의 작업 과정을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기회였다. 

 

끝으로 소개하려는 곳은 미니 셰프(Mini Chef)라 불리는 패밀리 레스토랑이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바로 ‘메뉴를 주문하고 받는 과정’이다.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으면 메뉴판과 레고 블록 봉투(?)를 갖다 준다. 메뉴판을 펼치면 본인이 먹고 싶은 메뉴에 해당하는 블록 모양과 컬러에 대한 설명이 되어 있고, 원하는 메뉴를 조합한 메뉴 블록(Menu block)을 만든다. 그리고 테이블마다 설치된 기계에 넣으면 요리 준비가 시작된다. 요리가 완료되면 주문한 메뉴의 컬러가 표시되고 담당 무인 로봇이 전해주는 음식을 벋으면 된다. 예를 들어 ‘당신이 주문한 스테이크 요리는 노란색 로봇이 전달해 줄 겁니다. 그 앞으로 가서 기다리세요” 하는 식이다. 새로운 경험이 주는 과정은 그야말로 임팩트가 강한 법. 음식의 맛은 물론 주문 과정, 요리 과정,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마지막까지 레고만의 감성이 묻어나는 스토리텔링이 인상적이었다. 

 


레고 하우스 내의 레스토랑. 미니 셰프 코너 ⓒ Sangwoo Cho

 

레고의 아이덴티티가 적용된 다양한 안내 문구와 사인들 ⓒ Sangwoo Cho

 

취재에 도움을 준 레고 하우스의 PR 매니저, 트린 니센(Trine Nissen) ⓒ LEGO House 

 


변화, 진화 그리고 성장


최근 레고는 스웨덴 가구업체 이케아(IKEA)와 브릭 제품 '비글레크(BYGGLEK)'을 출시했다. 'BYGGLEK'는 스웨덴어로 'building play(건축놀이)’의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이케아는 이 제품을 ‘창의적인 사람들을 위한 키트’라고 설명한다. 레고와 이케아, 조립(Assembly)과 창조(Creation)라는 두 브랜드의 공통분모를 영리하게 적용한 사례다.



비글레크 소개영상 

 

 

단순한 장난감 시리즈에서 시작된 덴마크의 레고. 하지만 오늘날의 레고는 더 이상 단순한 장난감 브랜드가 아니다. 레고 월드, 레고 하우스 등의 오프라인 공간을 통한 경험 마케팅을 진행함과 동시에 아키텍처, 크리에이터, 스타워즈, 듀플로, 프렌즈, 마인드 크래프트 시리즈 등 연령대와 성별을 고려한 다양한 라인업을 구축하고 있다. 또한 ‘레고 디지털 디자이너(Lego Digital Designer)’ 프로그램을 통해 사용자가 직접 제품 개발에 참여하기도 한다. 이케아, 닌텐도 슈퍼마리오 등과의 혁신적인 협업 프로젝트 역시 시장에서의 기대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한때 심각한 경영위기를 겪었지만 변화와 진화라는 키워드로 다시 살아난 레고. 1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기업이 끊임없는 변화와 진화를 선택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안주를 뒤로한 그 일련의 과정에는 고통이 따르기 때문이다. 

 

오늘의 레고는 과거가 아닌 미래를 바라보고 있다. 이번에 소개한 레고 하우스에서도 그들의 뚜렷한 비전을 엿볼 수 있었다. 

 

우리의 삶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변화와 진화의 순간들,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수도 있다. 


글_ 조상우 객원편집위원(www.sangwooch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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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우 디자이너
현재 북유럽 스웨덴에서 산업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삼성전자 모바일 디자인 그룹 책임 디자이너, 소니 모바일(Sony mobile) 노르딕 디자인 센터를 거쳐, 현재 스웨덴 컨설팅 그룹 시그마 커넥티비티(Sigma connectivity), IoT 부문 수석 디자이너로 근무하고 있다.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근원지에서 살아가며 느끼는 경험들을 바탕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www.sangwooch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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