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03
아름다운 꽃잎이 춤추며 흩날리고, 물결이 넘실거린다. 관람객의 몸짓은 작품에 반영돼 변화를 일으키고, 자연과 인간의 관계처럼 작품과 관람객은 하나가 된다. 거대한 공간 속 펼쳐진 자연의 모습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신비로운 감동을 선사한다.
자연이 주는 축복과 재난, 문명에 의한 혜택과 위기는 서로 복잡하게 연결돼 있다. 쉽게 이해되거나 정의될 수 없는 이러한 요소들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디지털 기술로 자연의 거대함과 삶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DDP에서 열리고 있는 ‘teamLab: LIFE’전이다.
<꽃과 사람, 제어할 수 없지만 함께 살다 - Transcending Boundaries, A Whole Year per Hour(Flowers and People, Cannot be Controlled but Live Together - Transcending Boundaries, A Whole Year per Hour), teamLab, 2017, Interactive Digital Installation, Sound: Hideaki Takahashi
팀랩은 2001년 활동을 시작한 아트 컬렉티브로, 아티스트, 프로그래머, 엔지니어, CG 애니메이터, 수학자, 건축가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예술, 과학, 기술, 디자인과 자연의 교차점을 모색하는 학제적 그룹이다. 예술을 통해 인간과 자연 그리고 세계와의 새로운 인식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팀랩은 그 사이에 경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물질로부터 아트를 해방시키고, 장르의 벽을 허문 디지털 기술을 통해 그 경계를 초월하고자 한다.
이들의 전시는 뉴욕, 런던, 파리, 마드리드, 헬싱키, 싱가포르, 멜버른 등 세계적인 도시에서 사랑을 받았고, 2018년 도쿄에 문을 연 아트 뮤지엄 팀랩 보더리스는 도쿄를 여행하는 이들이라면 꼭 한 번은 가보아야 할 장소가 됐다. 이 밖에도 팀랩의 전시는 세계 곳곳에서 개최돼 사랑받고 있으며 여러 도시의 뮤지엄 및 아트 갤러리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지난 9월 25일 시작된 이번 전시는 배우 전지현의 소속사 문화창고가 주최한 전시이자, 전지현과 정용진 신세계 그룹 부회장을 비롯한 유명 연예인들이 다녀간 것으로 오픈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이슈가 된 만큼 추석 연휴 찾은 전시장은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람객들로 붐볐다. 광활해진 DDP 전시공간에서는 자연과 삶의 이야기가 총 10가지의 작품을 통해 펼쳐진다.
<생명은 생명의 힘으로 살아 있다(Life Survives by the Power of Life)>, teamLab, 2020, Digital Work, 60 min (loop), Calligraphy: Sisyu
전시장에 들어서서 처음 만나게 되는 작품은 <생명은 생명의 힘으로 살아 있다>다. 팀랩이 초기부터 해온 허공에 붓글씨를 쓰는 작업 방식인 공서(空書)로 ‘生(날 생)’이 쓰여있고, 그 위에선 여러 가지 꽃과 나무가 자라며 변화한다. 나뭇가지에서 피고 지는 꽃의 모습을 통해 나와 바깥 환경이 둘이 아님을 말하는 작품으로, 평면과 입체 사이를 오가는 붓글씨를 통해 살아있음을 형상화한다.
<꽃과 함께 살아가는 동물들 II(Animals of Flowers, Symbiotic Lives II)>, teamLab, 2017, Interactive Digital Installation, Sound: Hideaki Takahashi
본격적인 전시 공간으로 입장하면 벽 전체를 수놓은 디지털 영상 <꽃과 함께 살아가는 동물들 II>을 만나게 된다. 벽에서 움직이는 무수한 꽃들은 동물의 형상을 하고 있다. 꽃에서 태어난 동물로, 꽃은 탄생과 사멸을 반복하며 동물의 형상을 만든다. 관람객은 걷고 뛰는 이 동물들과 함께 움직이며 자연의 에너지를 느낀다. 관람객이 손으로 동물을 쓰다듬으면 꽃잎은 흩어지고 동물은 사라져 버린다.
벽과 바닥에 골짜기가 흐르는 방에선 높고 낮음이 있는 입체적 지형을 볼 수 있다. 물결이 치듯움직이는 골짜기는 관람객이 움직임에 따라 요동을 더하는 <고동치는 대지>다. <꿈틀대는 골짜기의 꽃과 함께 살아가는 생물들(Shifting Valley, Living Creatures of Flowers, Symbiotic Lives)>은 꽃들이 탄생과 사멸을 통해 탄생시킨 생물들이 서식하는 입체적인 세계에서 먹고 먹히며 생태계를 형성하는 생물들을 보게 된다. 밟으면 소멸해 버리는 생물의 모습과 끝없이 변화하는 장면들을 경험하게 된다.
<고동치는 대지(Beating Earth)>, teamLab, 2020, Interactive Digital Installation
<Black Waves: 거대한 몰입(Black Waves: immersive mass)>, teamLab, 2020, Digital Installation, Continuous Loop, Sound: Hideaki Takahashi
거대한 파도가 휘몰아치는 ‘파도방’의 작품은 <Black Waves: 거대한 몰입>으로, 공간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높은 파도에 금방이라도 휩쓸릴 것만 같은 느낌이다. 팀랩이 고안한 ‘초주관 공간’ 논리가 적용된 작품으로, 파도가 밀려 들어와 표면과 내면의 경계를 흐리고, 이 둘은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전한다.
<증식하는 무수한 생명>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작은 곤충이 된 듯한 착각을 하게 한다. 아무것도 없는 땅에서 자라난 식물의 줄기에서 꽃이 피어나고, 화려하게 흩날리는 꽃들은 서서히 떨어져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이곳에선 1월부터 12월까지 총 12가지 꽃이 피고 진다. 관람객의 움직임과 손짓에 반응하는 꽃의 변화는 아름답지만 한편으론 쓸쓸하고, 그래서 더 경이롭다.
<증식하는 무수한 생명(Proliferating Immense Life)>, teamLab, 2020, Interactive Digital Installation, Sound: Hideaki Takahashi
<경계를 초월한 나비 떼, 경계 너머 태어나는 생명(Flutter of Butterflies Beyond Borders, Life Born on the Other Side)>, teamLab, 2020, Interactive Digital Installation, Endless, Sound: Hideaki Takahashi
<경계를 초월한 나비 떼, 경계 너머 태어나는 생명>의 나비 떼는 전시장의 바깥 공간 사람들의 발밑에서 태어나 유리창을 통해 전시장 안으로 날아들어간다.
수많은 나비가 날아다니는 ‘나비방’의 작품은 <경계를 초월한 나비 떼, 경계 너머 태어나는 생명>이다. 작품은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전시장 바깥 공간에서부터 시작된다. 전시공간과 DDP 배움터 복도를 연결하는 이 유리창 아래, 나비들은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발 밑에서 태어나고, 유리창을 통해 ‘나비방’ 안으로 날아들어간다. 관람객은 아름다운 나비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나비떼에 다가간다. 사람들에 의해 태어난 나비들은 사람들의 손에 의해 흩어지고 사라진다.
끊임없이 피고 지는 꽃들의 모습을 담은 <영원한 지금 연속되는 생과 사, 제어할 수 없지만 함께 살아간다>에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해가는 꽃의 종류와 모습을 볼 수 있다. 손으로 만지면 꽃이 지고, 가만히 대고 있으면 확 피어난다.
<물 입자의 우주, Transcending Boundaries(Universe of Water Particles, Transcending Boundaries)>, teamLab, 2017, Interactive Digital Installation, Sound: Hideaki Takahashi
<꽃과 사람, 제어할 수 없지만 함께 살다 - Transcending Boundaries, A Whole Year per Hour(Flowers and People, Cannot be Controlled but Live Together - Transcending Boundaries, A Whole Year per Hour), teamLab, 2017, Interactive Digital Installation, Sound: Hideaki Takahashi
마지막 방은 ‘폭포방’이다. 폭포의 물 입자는 선이 되어 공간을 타고 흐른다. <물 입자의 우주, Transcending Boundaries>로, ‘파도방’처럼 ‘초주관 공간’ 논리로 그려진 폭포다. 벽에서 떨어진 폭포는 바닥으로 흐르고, 공간 전체를 감싼다. 관람객이 벽에 다가서면 사람의 형상을 피해 물이 떨어지고, 자리에 가만히 머물러 있으면 폭포는 관람객이 서 있는 자리를 피해 흐른다.
폭포를 바라보고 있으면 그 사이로 조금씩 꽃이 피어난다. 계절에 따라 다른 꽃이 피듯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꽃이 피어난다. 물줄기는 서서히 줄어들고, 그 사이 작게 피어난 꽃은 점점 많아진다. 환상적으로 아름다운 꽃들은 공간을 가득 채울 만큼 점차 많이 피어나 흐드러지다 관람객들의 움직임에 의해 떨어진다. 이 피고 지는 꽃들은 <꽃과 사람, 제어할 수 없지만 함께 살다 - Transcending Boundaries, A Whole Year per Hour>다.
파도방을 제외한 각 방에서 만나는 작품들은 모두 인터랙티브 작품으로, 관람객의 움직임에 의한 결과물을 보여준다. 사전에 기록되거나 이전의 상태가 되풀이되는 것이 아닌,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해 실시간으로 그려지는 영상으로, 끊임없이 변화되는 장면들은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모습들이다.
8개의 공간에서 만나는 10개의 작품들은 자연과 인간, 그리고 생태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작품에 대한 설명은 전시장 곳곳에 있는 스태프들로부터 들을 수 있고, 팀랩 앱에서도 관람객이 있는 장소의 작품에 대한 설명을 제공한다. 여유를 갖고 관람한다면 시간의 흐름, 계절의 변화 등 더 다양한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삶의 지속성과 그 아름다움을 탐험할 수 있는 팀랩의 전시는 2021년 4월 4일까지 열린다. 입장료는 성인 2만원이고, 휴관일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에디터_ 최유진(yjchoi@jungle.co.kr)
자료제공_ 팀랩, ㈜문화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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