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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커피향이 만개하고 아트북이 흐드러진 공간, VOOK’S gallery

2006-12-19


거리를 디자인하는 것은 단지 보기에 아름다운 건물들만은 아니다. 아무리 외관이 화려하고 이국적이거나 전통적이라고 해도 그 안에 담겨있는 것들에 의해 문화적 공간이냐 아니냐의 기로에 서게 되기도 한다. 인위적인 디자인의 요소를 가미하지 않은 인사동이 서울을 대표하는 문화 거리로 꼽히거나 많은 이들이 디자인 발상의 근거지로 삼고 있는 것은, 이 거리가 오랜 시간 동안 축적해온 문화예술적인 컨텐츠 때문일 것이다. 지난 몇 년간 상업 공간으로의 변모라는 꾸준한 의혹에도 불구하고 인사동은 새로운 개념의 공간으로의 변신을 지속적으로 꾀하고 있다. 이를 주도하는 것은 젊은 감각으로 무장한 복합적 문화공간들이다. 상업공간과 갤러리를 과감하게 결합시킨 쌈지길 외에도 갤러리와 북카페 등 다중적 의미의 문화공간인 VOOK’S갤러리는 인사동의 새로운 명소로서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취재| 남궁경 기자 (knamkung@jungle.co.kr)

VOOK’S는 디자이너들이 인사동을 방문하게 만드는, 하나의 주요한 컨텐츠 공간이다. 이 공간을 뭐라고 칭해야 정확한 설명이 될까. 패널을 두르면 갤러리, 패널을 치우면 아트 북 도서관, 테이블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차를 마실 수 있으니 카페. 이 복합적인 문화 공간이 생긴지 2년여, 이제는 입소문에라도 한 번쯤 그 존재를 들어보았을 법하다.

김호근 교수(서울예대 문예창작과)가 인사동에 마련한 VOOK’S는 세계의 미술, 사진 등 비쥬얼한 책들만을 비치, 판매하는 공간. books가 아닌 vooks인 이유는 visual book shop의 줄임말이기 때문이다. 전시와 이벤트도 정기적으로 열려 대안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이곳을 가득 채운 책들은 김호근 교수가 외국 여행 중 수집한 것들로, 국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다양한 종류의 아트북들이 목록을 차지하고 있다. 흐드러지게 꽂혀 있는 그 모습만 보아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흐뭇한 기분이 들 정도다. 하물며 담긴 내용뿐 아니라 그 자체로도 아름다운 모양새를 띄고 있는 아트북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볼거리이자 이곳의 가장 중요한 인테리어 요소다.

아는 사람은 다 안다지만 막상 들어서면 다른 카페들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조용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그냥 나가는 사람들도 간혹 보인다. 하지만 처음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마주치는, 흔치 않은 분위기에 괜시리 압도되어 주눅들 필요는 없을 듯. 이곳은 일반인들에게도 아트북을 접할 수 있는 훌륭한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미술, 디자인업계의 종사자들에게는 새로운 감각과 정보를 수혈할 수 있는 곳이다. 비싼 값을 치르지 않고서도 쉽게 구할 수 없는 해외의 아트 북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사동을 근거지로 활동하는 화가들이 자주 찾는 이곳에서는 미리 신청한 단체들의 세미나와 소모임이 종종 열리기도 한다.

20대의 젊은 학생들부터 점잖은 노교수와 예술가들에 이르기까지, 이곳을 찾는 이들은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책과 갤러리, 그리고 카페에 더해 이곳을 규정할 수 있는 요소를 하나 덧붙이자면, 그것은 바로 사람들이 될 것이다. 마냥 아트북을 접해보고 싶었던 치기 어린 젊은이, 혹은 조용한 음성으로 책을 두고 대화를 나누는 지긋한 이들의 모습은 이곳 VOOK'S에서는 하나의 작품이 된다.

종합 예술 공간으로서의 Vooks의 역할은 이들이 계획하고 있는 여러 프로젝트에서 두드러진다. 현재 계획하고 있는 굵직한 프로젝트는 두 개로, 하나는 젊은 작가 프로젝트, 나머지 한 개는 헌책방 프로젝트다.

젊은 작가들이 데뷔하는 것은 분야를 막론하고 쉽지 않은 일이다. 젊은 작가들의 개인전을 개최함으로써 이들을 지원하는 것이 젊은 작가 프로젝트의 요지.

실제로 이곳에서 젊은 북아트 작가 최옥희의 개인전 개최 이후, 그가 중국에서 전시회를 한다는 소식을 듣기도 했단다. 최옥희의 작품은 여전히 북스의 구석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작고 깜찍해서 문득 가방에 넣어 가버리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는 메뉴책과 모빌 등등이 그것. 젊은 작가 프로젝트는 아직까지 홍보가 많이 되지 않았지만, 누구든 작가 데뷔를 원하는 젊은 예술가들이 포트폴리오를 들고 찾아오는 것을 환영한다고.

또 하나의 프로젝트인 '헌책방 프로젝트'는 인사동의 활성화 방안의 일환으로 김호근 교수가 기획한 것. 내년 1,2월 경에 인사동 골목에 헌책방 거리가 생길 예정이다.

외국에서는 절판된 책을 레어rare북이라고 칭하며 오히려 그 가치가 높아지는 데 비해 한국에서는 오래 된 책의 가치를 몰라주는 것이 보통. 헌책방이 하나의 소중한 문화로서 인정받게끔, 오래된 골목 인사동에서 오래된 책의 거리를 만드는 것이다. 인사동 거리를 채우던 전통차의 향기, 그리고 옥수수 찹쌀호떡 익는 냄새와 함께 헌책방에서 퍼져 나올 은은한 문화의 향기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이 모든 얘기를 들려준 이는 VOOK'S의 매니저 김재훈씨. 김호근 교수의 제자로 시를 전공한 그는 VOOK'S를 지키는 매니저이자 관훈미술기획의 편집자이기도 하다. 마침(?) 출장으로 자리를 비운 김호근 교수를 대신해 VOOK'S와, 계획하고 있는 여러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은 그. 자칫 정적으로만 비칠 수 있을 VOOK'S가 젊은 감각을 끊임 없이 수혈받을 수 있는 것은 그의 존재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 친절하고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의 폭도 넓어 갤러리의 마담으로는 제격이다. 너무나 많은 자료 앞에 왠지 망연자실해진다면 그에게 조언을 구해 보는 것도 좋겠다. 이에 더해 평일, 혼자 이곳을 찾아 평화롭지만 한편으로는 적적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면 용기를 내어 말벗을 신청해도 좋겠다는, 귀뜸.

VOOK'S에서 12월 만날 수 있는 전시로는 20일부터 30일까지 열리는 <비움> 이 있다. 20일에는 오프닝 퍼포먼스로 지리산 가수 고명숙의 소리가 열린다고 하니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오후 6시까지 이곳을 방문해 보는 것이 좋겠다. 내년 첫 달에는 마광수 교수의 전시회가 열린다고. 자세한 정보는 02)737-3283에 문의하시길. (www.galler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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