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11
[디자이너 토크 Designer Talk]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지난해를 뒤로하고 새로운 2021년을 맞이했다. 설레는 기대와 동시에 두려움이 우리를 맞이한다. 전례 없는 펜데믹의 상황은 우리에게서 많은 것을 가져갔다. 모두가 힘들고 지루한 시간들을 견뎌내고 있다. 동시에 그 시간은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들을 함께 보여주기도 했다. 이제 우리가 마주할 미래는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
지난 2017년부터 3년간 진행해 온 ‘디자이너 토크’ 세션을 돌아본다. 지금까지 30여 명이 넘는 북유럽의 디자이너, 브랜드들과 함께 했다. 우리에게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북유럽 디자인 브랜드와 크리에이터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했다. 부디 독자 여러분들에게도 흥미로운 인사이트가 되고 있기를 바란다.
2017년부터 진행해온 ‘디자이너 토크’ 세션을 통해 만난 북유럽의 크리에이터들
올해의 첫 ‘디자이너 토크’는 ‘북유럽에서 만나는 한국인 디자이너’ 특집으로 기획되었다. 다른 지역에 비해 북유럽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디자이너의 수는 그리 많지 않고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렇기에 더욱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그들의 이야기를 조명할 계획이다.
그 첫 번째 시리즈로 북유럽 스웨덴에서 가구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최근식 디자이너(kunsik.com)와 토크 세션을 진행했다. 스웨덴 남부의 아름다운 해안도시 말뫼(Malmö)에 위치한 그의 스튜디오를 찾았다.
북유럽 스웨덴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가구 디자이너 최근식(우측)과 함께
디자이너 토크 세션에 온 것을 환영한다. 본인 소개를 부탁한다.
반갑다. 스웨덴 말뫼를 기반으로 한국과 스웨덴을 오가며 활동 중인 가구 디자이너 최근식이라 한다. 2015년 말뫼에 독립 스튜디오 겸 아틀리에를 설립해 현재까지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우리의 일상과 관련된 다양한 사물을 디자인의 관점에서 때로는 공예적 관점에서 해석한 작업들을 하고 있다.
가구 디자이너가 된 배경이 있다면 소개 부탁한다.
어릴 때부터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초등학교 수업 시간에 태극기함을 만드는 과목이 있었는데 톱과 널빤지를 가져온 아이는 나밖에 없었다(대부분 친구들은 문방구에서 태극기함 조립세트를 사 온 것으로 기억한다). 지방에 살았지만 건축업을 하시던 아버지를 따라 서울의 건축박람회 등도 몇 번 따라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본 어마어마했던 자재들이 인상적으로 남아있다.
무엇이 하고 싶다는 생각은 군대에서 처음 하게 되었다. 당시 여자 친구였던 아내가 실내 건축학과를 다니고 있었는데, 하고 있던 과제들이나 가끔 들려주는 디자인 스토리들이 굉장히 재미있어 보였고, 나도 그런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디자인 관련 서적에서 본 이탈리아 디자이너들의 가구와 오브제의 느낌이 좋았다. 그들이 다니던 학교(Politecnico di Milano)를 찾아 (산업 제품) 디자인 공부를 시작했고, 졸업 후 우연한 계기로 일하게 된 첫 직장도 가구 브랜드를 론칭하는 곳이었다. 그 이후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면서도 가구 작업은 꾸준히 발표해왔다.
당시 겉으로만 봐서는 구조를 알 수 없던 잘 만들어진 북유럽 가구들의 제작 방식이 궁금해진 나는 2012년 스웨덴으로 떠났고 카펠라고든(Capellagården)이라고 하는 예술공예학교에 입학해 장인들로부터 전통가구 제작 방식을 배우며 캐비넷메이커 과정까지 마쳤다.
Facet ⓒ Kunsik
The Mirror ⓒ Kunsik
For Pencil ⓒ Kunsik
작업 시 추구하는 디자인 철학이나 배경이 있다면.
진행하고 있는 디자인 작업들은 시작점에서 볼 때 두 가지 방향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사용성과 생산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을 하는 경우와, 다른 하나는 양산을 크게 고려하지 않은 채 넓은 범위로 가능성을 열어두고 오브제를 만들어내는 경우다.
첫 번째의 경우에는 사용할 사람과 그 작업이 놓일 공간을 상상하며 디자인을 시작한다. 평소에 생활하며 불편하다고 생각했던 점들을 메모해 두고 그것을 해결하려는 아이디어를 넣기도 한다. 미의식이 배경에 있지만 편안함, 생산방법, 합리적인 가격, 보관과 운송의 용이점 등 다양한 부분을 입체적으로 생각하게 되며, 이를 바탕으로 논리적으로 설계된 프로세스를 진행하게 된다.
두 번째의 경우는 <The Mirror>처럼 특정한 감정을 주제로 삼고 사물로 그것을 표현하거나 <Facet>이나 <Ihop Glass Vase>처럼 제작 과정의 공예적 특성을 최대한 살려 작업을 하는 것이다. 신선한 형태를 연구하고 재료를 실험적으로 사용해 보는 등 가능한 모든 부분에 제한을 두지 않으려 한다. 특정 분야를 정하지 않은 채 자유롭게 감정을 사물을 통해 표현하는 것은 매력적인 과정이다.
두 방향의 작업은 각각 시작점이 다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과물 역시 두 가지로 명확히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종종 감정에서 시작했던 디자인이 양산을 위한 디자인의 스케치가 되기도 한다.
다양한 해외 공모전과 전시에서의 활약이 돋보인다. 기억에 남는 수상작과 전시가 있다면.
최근 <The Mirror> 작업으로 ‘Wallpaper Design Awards 2020’ Winner of Best Reflection을 수상했다. ‘Wallpaper Design Awards’는 디자이너 스스로가 지원해야 하는 공모전의 형태가 아닌, Wallpaper에서 그해에 눈여겨봤던 작업을 선정하는 방식이어서 더욱 기억에 남는다.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좀 놀라기도 했다.
작년 여름 한국에서 열었던 개인전 ‘Farming: 일상의 감각’도 기억에 남는다. 경리단길 갤러리 ERD의 제안으로 열게 된 전시였다. 작업물들이 공간 안에서 편하게 녹아들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었다. 작업물들을 한 군데 모아 두고 나열하는 형식의 전시를 구성했는데 반응이 꽤 좋았다. 스스로도 그동안 해왔던 작업들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의미가 있던 전시였다.
Mirrored Mirror ⓒ Kunsik
작품 중 <The Mirror>, <Kangaroo Table>, <Pond Table>에서 보이는 디자인 언어가 인상적이다. 작업 시 아이디어 구상과 제작 과정 단계의 특별한 과정이 있는지 궁금하다.
사용성을 염두에 두고 제품을 디자인하는 경우 아이디어 스케치로 시작한다. <캥거루 테이블>은 아이가 있는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왔을 때 겪었던 경험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친구들이 사용하는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며 작업을 진행했다.
이런 식으로 사용성을 고려한 가구를 디자인할 때는 공간의 범위를 생각하고 구체적인 상황들을 계속 떠올리면서 스케치를 해나가는 시간을 충분히 갖는다. 스케치로 개략적인 형태가 나오면 목업(mock-up) 작업으로 구체적인 형태를 다듬는다. 1:1 목업을 통해 실제 테스트를 거치며 수정하기를 반복한다. 그 후 프로토타입 제작을 진행하는데, 현재 작업실에 작은 기계실과 공구들이 있어서 웬만한 사이즈의 가구는 스튜디오 안에서 프로토타입을 직접 만들면서 디테일을 점검한다. 이 과정이 있기 때문에 제작 방식까지 구체적으로 고려하게 되고, 원하는 최종 형태까지 도달하는 시간도 단축할 수 있다.
디자이너가 제작 방식을 잘 이해한다면 생산처와 커뮤니케이션할 때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또한 아트피스 개념의 작업을 하더라도 표현의 효과는 작업 방식과 연결되기 때문에 제작 방식과 재료의 성질을 잘 이해하는 것은 많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The Mirror>, <Pond Table>처럼 감정에서 시작된 작업들은 생각하는 주제를 자유롭게 표현한다. <The Mirror>의 경우 거울이 갖는 반전과 반사의 이미지뿐 아니라 거울 앞 사물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하는 것을 담는 투영의 이미지를 거울의 원형이라고 생각했고 가죽이 에이징되는 과정이 그것을 표현하도록 한 작업이다. <Pond Table>은 비가 온 후 깨끗하진 아스팔트에 물이 고여 주변 건물과 하늘이 비치는 모습을 가구의 형태로 담은 작업이다.
시간을 갖고 일상 속에서 재밌다고 느껴졌던 모습과 상황을 깊숙이 들여다보려 한다. 작은 것들도 꼭 메모해 두는 습관이 있는데 그것을 다른 시각으로 생각하고 때로는 엉뚱하게 발전시켜 보는 과정을 좋아한다.
넓은 의미에서 감정에 대한 만족감까지도 디자인의 실용성으로 보는 시각에 동의한다. 감정에서 출발한 작업들이 완전 실용성을 배제한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그렇게 감정에서 출발한 작업들이 넓은 의미로 해석되어 놓이길 바란다.
Kangaroo Table ⓒ Kunsik
Pond Table ⓒ Kunsik
작품에 활용되는 나무 소재는 평범하지만 다루기 쉽지 않은 소재다. 주재료를 나무로 쓰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나무라는 재료 자체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캐비닛 메이킹을 배우면서 나무를 깊이 알게 되어서 나에게는 그만큼 디자인을 표현하기에 수월한 재료이자 익숙한 재료가 되었다. 게다가 스웨덴에서 캐비닛 메이킹을 배울 당시에도 나무 관련 제작 업체나 재료상들을 접할 기회도 많았기에 상대적으로 많은 작업들을 나무를 주재료로 하여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다양한 재료에도 관심이 많다. 바이오 플라스틱(Bio-plastic)으로도 작업을 했었고, 지금은 유리나 텍스타일, 철 등의 디자인도 만들 수 있는 생산처들을 알게 되어 다양한 작업을 늘려 나가고 있다.
작업실 한 켠에 정리된 목재들. 재질부터 색상까지 다양하다
스튜디오 한쪽 벽면을 가득채운 작업 도구들
스케치 작업 중인 최근식 디자이너
대부분의 제작 과정이 스튜디오에서 진행된다.
캐비넷메이커(Cabinet Maker)와 가구 디자이너(Furniture Designer)의 차이점이 있는가.
캐비닛 메이커는 전문적인 가구 제작에 중점을 두고 있다. 디자이너의 경우 가구가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에 대한 전체적인 고민을 해야 하는 것 같다. 하나의 가구가 완성되기 위해선 이 두 분야의 유기적인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얼마 전 아디다스(Adidas)와 협업을 진행했다. 소개를 부탁한다.
아디다스 오리지널스 서울 플래그십 스토어를 리뉴얼하며 그 공간을 위한 가구 디자인을 의뢰받았다. 나의 경험과 아디다스와 접점이 될 수 있는 주제를 찾아 작업을 시작했다. 내가 살고 있는 스웨덴 말뫼와 플래그십 스토어가 위치하고 있는 한국의 서울, 이 두 도시의 모습과 거리 문화를 주제로 하여 두 가지 가구 컬렉션을 디자인했던 작업이다.
‘Boarding Furniture’는 말뫼에 있는 스타플베드파켄(Stapelbäddsparken)이라고 하는 스케이트보드 파크의 모습을 정제된 형태의 가구로 만들었고, 클래식한 디테일을 추가하여 완성했다.
‘SE Bridge Collection’은 서울의 남과 북을 연결하는 다리 교각의 디테일을 모티브로 알루미늄 구조로 재구현하여 만들었던 작업이다. 한강 다리를 건널 때마다 보던 서울의 모습이 인상적이라고 생각했다. 알루미늄이라는 재료를 사용해 차가운 도시의 이미지를 만들고 싶었다.
아디다스 플래그십 스토어를 위한 Boarding Furniture ⓒ Kunsik
가장 기억에 남는 혹은 도전이 되었던 프로젝트가 있다면 소개 바란다.
스웨덴 남부 디자인 활동을 관할하는 기관인 포름 디자인 센터(Form Design Center)의 초대로 ‘What Matters’라는 그룹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있다. 10팀의 디자인 스튜디오를 선정하고 10팀의 신소재를 개발하고 있는 재료 공학자들을 선정해 각각 팀을 이루어 결과물을 만드는 프로젝트였다. 그 결과물은 아인트호벤에서 열리는 ‘Dutch Design Week’때 그룹 전시로 발표되기도 했다. 나는 스웨덴 룬드대학교(Lund University)의 바이오테크놀로지(Biotechnology dep.) 연구팀과 협업을 진행했다. 당시 교수님이 연구하는 자연분해가 가능한 바이오 플라스틱에 대한 물성을 깊고 길게 설명해 주셨는데, 아무래도 과학자의 접근과 디자인적인 접근의 차이 때문에 초반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플라스틱 하면 일반적으로 동일한 형태로 대량 생산되는 가치가 낮은 제품이라는 이미지가 떠오를 것이다. 환경오염의 주범이라는 오명을 가지고 있는 플라스틱을 친환경으로 접근한 바이오 플라스틱의 존재처럼, 나도 플라스틱이 기존에 가졌던 이미지와 반대되는 개념의 작업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플라스틱을 스튜디오에서 직접 녹이고 수작업으로 형태를 만드는 방법을 선택했고, 자연을 담는 화분을 디자인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시행착오도 겪으며 지속적으로 교수님을 만나 상의하고 다양한 테스트를 하며 방법을 찾았다. 작업실에서 우드 몰딩을 만들고 녹인 플라스틱에 컬러를 입히며 손으로 반죽해서 각각 고유한 색상과 형태를 주어 화분을 완성했다. 플라스틱 원재료를 직접 다루며 마감 작업까지 모두 스튜디오에서 진행되었던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Dutch Design Week, Eindhoven, What Matters 전시 ⓒ Kunsik
북유럽에서 활동하는 가구 디자이너로서 느끼는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은 어떤 의미인가.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은 사물과 사람의 관계가 디자인의 디테일로 나타나는 것 같다. 단순히 컬러나 스타일로 정의되는 것보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가 디자인으로 보인다. 기존에 단순히 생각했던 깔끔하고 정제되고 실용적이라는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특징에서 점차 디자인 영역이 확장되고 아트의 영역과 섞이면서 다양한 스타일이 동시에 성장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은 컨템퍼러리한 작업들이 이들의 디자인 카테고리 안에서 공존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가구 디자이너가 되고자 하는 후배 디자이너에게 조언 부탁한다.
디자이너는 사고가 유연해서 늘 열려있어야 하지만 자기 작업 스타일에 있어서는 타협 없이 완고함을 갖는 이중적인 면이 필요한 것 같다. 특히 자신의 이름으로 운영되는 독립 스튜디오를 생각하고 있다면 트렌드와 전략적인 면을 일단 벗어나 자기가 정말로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찾는 게 가장 중요하다. 누구든 할 수 있는 말이지만, 누구나 해내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걸 찾았다면 자기만의 스타일이 알려지는 데까지는 정말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그 긴 시간 동안 본인의 스타일을 놓치지 않고 작업을 꾸준히 발전시키며 입체적으로 자신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들을 만들어야 한다. 나도 아직 그 인고의 선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비전은 무엇인가.
스스로의 영역을 계속 넓혀가면서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더 발전시키고 싶다. 현재도 화병이나 안경, 아트 작업과 공간 디자인 등의 다양한 영역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영역을 제한하지 않고 작업들을 계속 이어나갈 생각이다.
물론 가구의 영역은 나의 중점적인 분야라 보다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성장시키려 한다. 얼마 전에는 우리 생활과 일상에 밀접한 디자인을 모아 컬렉션 방식의 브랜드인 ‘k o k i r i‘ 일명 ‘코끼리 가구’를 만들었다. 한 번에 한 가지 디자인을 생산하여 발표하고 판매하는 방식이다. 현재 세 번째 디자인까지 발표가 되었고,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작업을 진행하는 중이다.
동시에 스스로의 감정에서 출발한 디자인들도 꾸준하게 스케치하고 있다. 이 작업들을 모아 올해 5월에 전시를 계획 중이다. 사용성이나 생산에 무게를 두지 않고 제한 없이 표현할 수 있는 이런 작업의 비중을 지금보다 더 늘려나가려 한다. 이런 표현 작업들을 지속적으로 해나가다 보면 희석되지 않은 스튜디오의 색깔을 조금 더 분명하게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for Projekt Produkt ⓒ Kunsik
Eyewear design - of human - for Projekt Produkt ⓒ Kunsik
Ihop Vase ⓒ Kunsik
통로(通路), 그리고 성장
어떤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받는다는 것은 결코 단 몇 문장으로 정리될 만큼 간단하지 않다. 단순히 오랜 시간을 해왔다고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것도 아닐 터. 결코 시간에 비례하지 않는 타이틀이다. 그렇다. 밀도가 중요하다. 세밀하며 치밀한 작업들의 경험치가 한 장 한 장 쌓여가며 비로소 ‘전문가’라는 명찰이 붙게 되는 것이다.
가구라는 오브제를 만드는 최근식 디자이너와 이야기 나누며 이 ‘전문가’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그는 전문가의 반열에 오르기까지 오랜 시간 다방면으로 공력을 들여왔다. 그가 만든 작품들을 천천히 손으로 쓰다듬어 본다. 이음새를 지나치는 매끈한 표면과 유려한 선들, 그리고 나무의 따뜻함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그 감각에 그가 쌓아온 오랜 시간들이 투영된다.
일상생활에서 마주하는 가구의 진정한 의미는 ‘스며듬(permeate)’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마치 물감이 스며들 듯이 그 공간 속에 묻힌다. 당신에게 사용될 때에 비로소 조용히 드러나는 것.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가구라는 오브제의 모습이다.
그의 작품들이 그랬다. 자연스럽게 공간에 스며들며, 나를 봐달라 아우성치지 않는다. 공간 속에 존재하지만 드러나지 않으면서 동시에 드러난다. 참 쉽지 않은 이야기지만 그는 의외로 쉽게 풀어가고 있었다.
모두 각자가 원하는 전문가의 분야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길로 들어서든지 반드시 지나야 하는 통로가 있다. 그 통로는 아주 좁고 꽤나 길기 마련이다. 바로 ‘노력과 인내’라는 길이다. 이것은 엔젤라 더크워스(Angela Duckworth)가 쓴 책 <그릿(GRIT)>에서 언급한 ‘끝까지 해내는 힘’과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우리 디자이너들이 귀 기울여할 이야기다. 크리에이티브의 분야야말로 끝까지 해내는 힘이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지루하고 견디기 힘든 통로 끝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다음 문을 열 수 있다. 한 가지 반가운 소식은 그 통로를 지나는 동안 우리는 폭발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이다. 성장이 보장되어 있는 길이라면 들어설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글_ 조상우 객원편집위원(www.sangwooch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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