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23
No.1 노나메 김하나, 호조 권순호 (1부)
2010년대 초반에 있었던 대(大) 사건. 단연코 카카오톡을 필두로 한 SNS 메신저의 등장이었다. 40글자로 제한된 문자메시지에 '^-^', '*ㅅ*', ';_;'라며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았다. 캐릭터 이모티콘은 등장하자마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만국 공용어가 되었다. 이 시장의 출발점에 두 명의 작가, 카카오 프렌즈(Kakao Friends)의 아빠 호조(hozo)와 메리비트윈(Merry Between)의 엄마 김하나(노나메; noname)가 있었다.
특정 시절을 추억했을 때 기억나는 캐릭터가 있다. 그때 그 시절 수요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캐릭터들 중에서도 지금까지 남아 있는 캐릭터들은 많지 않다. 현재까지 활동하는 캐릭터들이 존재할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작가와 팬을 이어주는 시장의 비즈니스다. 작가가 표현한 것과 팬이 원하는 것이 시장에서 만나 시너지 효과가 난다. 마치 생명체의 신체에 산소와 영양분이 공급되려면 따뜻한 피가 원활하게 돌아야 하는 것처럼, 기업의 비즈니스는 캐릭터가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살아갈 생명을 불어넣어 준다.
호조는 짓궂은 표정으로, 김하나는 천진한 표정으로 모두 자신은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공통적으로, 두 작가는 당시 사람들은 잘 몰랐지만 발전 가능성이 높았던 초기 시장에 먼저 진입해서 캐릭터 콘텐츠를 내놨고, 즉각 대중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이를 단순히 촉이 좋다거나 선점효과를 누렸다고만 치부할 수 있을까? 그들은 주관적 느낌을 전달하면서도, 누구보다도 객관적으로 시장의 평가를 받아왔다. 시장의 흐름을 읽은 전략가이자 자신의 스타일로 도전했던 승부사였다.
우리는 호조의 스튜디오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전반적으로 매우 순조로웠다. 세 마리의 고양이가 호기심을 보이며 각자 편한 자리에 앉아 우리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찻잔이 비워지면 호조는 다시 차를 끓여내며 이야기를 이어갔고, 김하나는 눈을 반짝이며 호조의 스튜디오를 관찰하며 내가 놓친 부분들을 채워주었다. 그때 알았다. 두 인터뷰이(interviewee)는 초보 인터뷰어(interviewer)인 나를 적절한 순간에 티 내지 않고 도와주고 있다는 것을. 그들과의 인터뷰에서 충만함을 느낀 순간, 이들이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지 납득할 수 있었다.
노나메(noname) 김하나 작가와 호조(hozo) 권순호 작가
(서변) 호조 작가, 김하나 작가와 함께 인터뷰를 하게 되어 기뻐요. 제가 작가님들을 인터뷰하는 원동력은 바로 '덕심'이에요. 제 장래희망 중 하나가 '성공한 덕후'이기도 하거든요. 작가님들은 일하는 원동력이 뭔가요?
(호조) 당연히 돈을 벌기 위해서 일하죠. 돈을 버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저는 가급적이면 좋아하는 작업을 하면서도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내 작업을 알리고, 느낌을 전달하고, 공감을 받고, 인정을 받고 싶었어요. 그렇게 하면서 돈까지 벌면 그것만큼 좋은 일이 없으니까요.
(하나) 저는 작업하는 순간이 좋아요. 캐릭터들이 제 손에서 태어나고 생명력을 갖는 그 자체로 재미있죠. 돌이켜보면 회사에 다닐 때는 책임감이 조금 더 컸어요. 메리비트윈을 성공시킨 이후 보통통이 작업을 할 때는 부담감에 울면서 그림을 그렸던 날도 있었지만, 요즘 혼자 일하기 시작하면서 아무런 부담 없이 캐릭터를 만들 때의 순수한 몰입감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즐겁습니다. 캐릭터가 살아 움직이는 과정이 재밌고 팬들이 실시간으로 반응을 보여주면 감사한 마음이 들어요. 뿐만 아니라 제 캐릭터들이 사랑받는 만큼 그에 합당한 보상이 돌아오는 것도 좋고요.
호조(hozo) 권순호 작가
(서변) 두 작가님의 공통점은 많은 사람들이 그 시절을 기억할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었다는 점이에요. 지난 시간, 두 분이 어떻게 일해왔는지 알고 싶어요.
(호조) 게임회사 디자이너로 일을 시작했어요. 그 게임의 아바타 디자인을 맡았죠. 한 1~2년 정도 근무하다 보니 "내 그림을 그려야겠구나!"라는 결심을 하게 됐어요. 왜냐하면, 단지 회사 디자이너로서 제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성장을 하기 위해 이 회사를 몇 년 다녔다가 저 회사로 이직을 한다는 건 소모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성장하려면 결국 자기 그림이 있어야만 한다고 봤던 거죠.
호조가 2003년 '호조넷'을 오픈하고 연재한 추억의 '호조툰'
요즘은 인스타그램과 같이 SNS 계정을 만들어서 그림을 올려서 알리는 게 쉽지만,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내 그림을 온라인에 게시하려면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 수밖에 없었죠. 도메인도 사고, 서버도 사고, 플래시(flash)로 홈페이지를 만들었어요. 지금 쓰는 '호조넷'(www.hozo.net)이 바로 그때 샀던 도메인이에요. 그리고 제 이름 '호조'를 넣어서 '호조툰'이라는 카툰을 그렸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인기가 많았고, 패러디도 많이 됐어요. 독자 중 한 명이 포털에 올리기 시작하면서 '호조툰'이 주목을 받다 보니 조인스닷컴에서 연재 제안도 왔어요. 한 편당 벌었던 돈은 크지 않았지만, '이게 통하는구나…' 싶어서 신기했어요. 그러다 싸이월드에서 '호조툰'으로 미니홈피 스킨을 제작해보자고 제안이 왔습니다.
(서변) 기억이 나요. 시니컬 토끼 등이 나오는 미니홈피 스킨도 유명했어요. 굉장히 깔끔했던 것 같은데.
(호조) 처음에는 '호조툰'에서 내가 재미있다 싶은 내용을 녹여서 스킨을 만들었는데 잘 팔리지 않았어요. 왜 그럴까 하고 사는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봤어요. 내 입장에서는 재미있다고 한 게,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림은 웃겨도 막상 사고 싶냐고 물어보면 머뭇거릴 수밖에 없는 거예요. 미니홈피만의 감성을 연출해야 하는 거였어요. 과감하게 어느 한 포인트만 살리자고 마음먹었고, 다른 부분은 모두 날렸어요. 그랬더니 판매량이 최상급으로 가더군요.
호조의 싸이월드 미니홈피 스킨 초기작(좌). 이후 호조는 매체의 특성과 수요자 감성을 분석해 캐릭터 '시니컬 토끼'를 살려 심플하게 디자인(우)했고, 그야말로 대박을 쳤다.
노나메(noname) 김하나 작가
(서변) 수요자의 반응을 얻기 위해 매체의 특성과 감성에 맞게 디자인한 게 중요했던 것 같은데, 이 점은 이모티콘 캐릭터 비즈니스에서도 마찬가지죠?
(하나) 이모티콘을 출시하면 시장에서 바로 반응이 나타나요. 통하는지 아닌지는 보면 알아요. 처음 이모티콘과 캐릭터를 작업했을 때는 ‘내가 아는 감정이 그냥 감정이 아니구나’ 해서 연구를 많이 했어요. 단순히 즐겁다, 화난다 이런게 아니라 세부적인 감정의 스펙트럼을 이해해야 했고, 어떻게 표현돼야 시장의 수요자들이 반응하는지 알고 싶었어요. 제가 처음 이모티콘 작업하던 10년 전 즈음엔 호조 작가님의 카카오프렌즈와 라인 캐릭터들이 선구적이었어요. 가장 잘된 케이스는 호조 작가님의 카카오 프렌즈 캐릭터니까, 그 캐릭터들을 종이에 프린트해놓고 인형놀이하듯이 하나씩 오려서 감정의 스펙트럼대로 카테고리를 잡아서 분류하며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연구했죠.
비트윈(Between)에 재직하며 '메리비트윈' 시리즈를 만들던 시절의 김하나 작가
(서변) 하나 작가님은 '메리비트윈' 이후, 독립해서 '노나메(noname)'로 활동하고 있어요. 재밌게도 그 뜻은 '이름이 없다'라는 건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하나) 한 회사에서 '메리비트윈'을 만들고 8년 동안 함께 성장도 많이 했어요. 뿌듯했죠.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의 작업물에 대한 갈증이 컸어요. 캐릭터 비즈니스가 시장에서 반응을 얻고 수익을 내는 과정을 총괄하면서 캐릭터 비즈니스로 제대로 평가를 받고 보상을 받고 싶다는 소망도 컸어요. '메리비트윈' 없이도 내가 얼마나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지 맨몸으로 부딪혀 보고 싶었던 거예요. 그래서 순수하게 익명의 개인으로 도전을 해보기로 한 거예요. 그게 노나메의 시작이었습니다.
처음에 '냥모티콘'을 카카오 이모티콘 스튜디오에 제출했을 땐 과연 성공할까 궁금했어요. 그런데 첫 달에 정산금으로 1천만 원 이상의 금액이 통장에 들어오는 거예요. 한 번은 요행이지 않을까 의구심이 들었지만, 두 번, 세 번 그 이상의 경험들이 반복되면서 '내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재능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잘 되면 '아, 통했구나!' 하면서 좋아하지만, 마냥 잘되기만 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럴 땐 무엇이 어떻게 왜 수요자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는지 분석하고 개선점을 찾아서 다음 작업에 반영하려고 합니다. 실패 역시 성공으로 가는 과정이니까요.
노나메 김하나 작가의 이모티콘 시리즈. 냥모티콘에서 시작해 깡총티콘 꽁냥티콘, 곰곰, 총총 및 우리는 연애중 남친, 여친 버전 시리즈까지 이르렀다.
“유의미한 데이터들이 쌓이면 새로운 프로젝트를 할 때 도움이 돼요”
서유경 변호사
(서변) 두 작가님의 공통점은 자신의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강렬한 소망이 있었고, 시장에서 성공해봤다는 건데요. 재밌게도 모두 발전 가능성이 높은 초기 시장에 먼저 들어가서 선점효과를 누렸어요.
이미 발견되어 시장성이 검증된 시장에 진입하는 건 쉬워요, 살아남는 게 어렵지. 하지만 두 작가님은 달랐어요. 사람들이 잘 모르는 새로운 플랫폼 시장에 먼저 들어갔고, 자기 작품을 만들었고, 사람들이 그 플랫폼을 이용할 때 좋은 콘텐츠를 먼저 제공했던 거예요.
(호조) 저는 운이 진짜 좋았어요. 자발적으로 그 시장에 들어가서 노크했던 건 아니었고, 모두 먼저 제안을 받았기 때문이죠. '호조툰'이 싸이월드 미니홈피 스킨으로 이어졌고, 스킨이 카카오톡으로 이어진 거죠. 카카오톡에서 이모티콘 콘텐츠를 구하고 있었는데, 마침 웹툰 작가들을 관리하던 케이코믹스라는 회사와 연이 닿았고, 싸이월드 미니홈피에서 스킨으로 만들었던 이미지들을 살펴보면서 이모티콘 작업을 제안한 거죠. 아무래도 미니홈피 스킨에서 매출을 올렸던 데이터가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신뢰가 있었을 거예요. 유의미한 데이터들이 쌓이면 새로운 프로젝트를 할 때 도움이 돼요.
카카오프렌즈. 왼쪽부터 어피치(apeach), 프로도(frodo), 제이지(JayG), 무지 앤 콘(muzi & con), 네오(neo), 튜브(tube) ⓒ 카카오
(하나) 저도 정말 운이 좋았어요. 2010년 초반, 많은 디자인과 졸업생들은 대기업의 UI(User Interface) 또는 UX(User Experience) 분야의 디자이너가 되기를 지망했어요. 저 역시 사실 대기업에서 합격 통보를 받아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스타트업에서 이모티콘과 캐릭터로 방향을 잡았던 거죠. 미래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작업하는 그 순간이 즐거웠어요. 즐기다보니 잘 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시장에서도 반응이 오더라고요. 발전 가능성이 높은 초기 시장에서 작업을 통해 성과를 증명해냈고, 시장의 발전과정을 지켜본 경험을 토대로 시장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출 수 있었던 거예요. 이 모든 과정이 운이 좋았고 그래서 감사한 마음도 들어요.
(서변) 지금까지 해왔던 비즈니스 중 특별하게 좋았던 경험은 무엇인가요?
(호조) 좋았던 경험들이 많죠. 강연이나 인터뷰를 하면서 그동안 해왔던 일들을 한 번씩 정리하는데, '아, 이게 다 이런 기회를 만들기 위한 과정이었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을 때가 있어요. 물론 프로젝트 중에서 금전적으로 잘 되고, 안 되고의 차이는 있지만, 무엇 하나 중요하지 않았던 경험은 없는 거예요. 당시에는 심각했지만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 생활을 했던 것도 결과적으로는 좋은 터닝포인트(turning-point) 였어요. 회사를 경험하고 난 상태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는 것은, 애초부터 프리랜서로 일하는 것과 전혀 다르죠. 일의 시작과 끝, 순서를 알고 갈 수 있기 때문에 더 많이 생각하고 판단해서 결정할 수 있었어요. 이런 맥락에서 가장 좋았던 경험은 아무래도 카카오에서의 경험이었고, 제가 또 다른 포지션으로 갈 수 있었던 계기가 되기도 했죠.
(하나) 스타트업에서 8년 동안 일했던 경험이 정말 특별하죠. 선하고 똑똑한 친구들과 일했던 경험은 제가 좋은 창작자로 성장할 수 있는 귀한 자극이 되어 주었고, 무엇보다도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기쁨을 알 수 있었어요. 특히 맨 처음 작업했던 기본형으로 들어가는 동그란 이모티콘 프로젝트와 메리비트윈 첫 출시일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이모티콘이 무엇인지, 캐릭터 작업이 얼마나 몰입감이 있는지 알게 해준 작업들이었죠. 출시 후에 유저 반응도 좋아서 매일 사람들 반응을 살펴보며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를 기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 프로젝트였어요. 퇴사 후 온라인 클래스를 런칭했던 것도 좋은 경험이었어요. 그 전까지는 제 작업물로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면, 온라인 클래스의 경우 제가 잘하는 일로 누군가를 직접 도울 수 있겠구나 싶더라고요. 제 강의를 듣고 이모티콘을 출시했다는 후기가 들려오면,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이 이렇게도 쓰일 수 있구나 싶었죠.
못하는 걸 밀어내고 잘하는 걸 밀어보자, 거기에 위트를 첨가해서.
호조(hozo) 권순호 작가
(서변) 모두 운이 좋았다고 말씀하시네요. 시장의 흐름을 잘 읽는 것은 비단 개인의 능력뿐만 아니라 운도 중요한 것 같아요. 한편, 시장성을 위해서 개성과 스타일을 희생하는 경우도 있는데 두 분은 개성과 스타일이 뚜렷하단 말이죠.
(호조) 결과물을 내놓았을 때 "호조답다", "호조스럽다"라는 평가를 받는 게 좋아요. 제 스타일이란 사실은 제가 스스로 쳐 놓은 울타리라서 때로는 스타일에 갇힐 때도 있어요. 시장에서 프로젝트가 성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스타일이 없어져서는 안 되는 거예요. 가령, 특정한 시기에 유행하는 스타일이 있고 그게 잘 나간다 싶어서 조바심이 나서 막 따라 하다 보면 점점 자기만의 색깔이 사라지는 거예요.
내 스타일이 뭔가 하면, 2000년대 초반에 단지 내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생각해서 '호조툰'을 그렸는데, 사람들이 알아서 '엽기동화'라는 타이틀을 붙여줬어요. 엽기스럽다고 하는데, 그게 시장성이 있다고 봤어요. 왜냐하면 당시 온라인 그래픽 시장에서는 크게 벗어나지 않는 반듯한 이미지들이 많았는데, 이 부분을 'B급 감성'으로 건드려주면 주목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예상했던 거죠. 원래 미술 정규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고, 누가 봐도 안정적으로 잘 그리는 그림은 제가 못하겠더라고요. 내가 못하는 걸 밀어내고 잘하는 걸 밀어보자. 거기에 위트를 첨가해서 차이점을 만들어보자. 그렇게 하다 보니 제 스타일이 잡힌 거죠.
호조 특유의 개구진 감성으로 표현된 가수 싸이(PSY)의 대표적인 이미지
“캐릭터로 제일 먼저 마음이 움직여야 하는 사람은 바로 저예요”
노나메(noname) 김하나 작가
(하나)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캐릭터가 과연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가?"라는 점이에요. 캐릭터로 제일 먼저 마음이 움직여야 하는 사람은 바로 저예요. 제 기준으로 봤을 때 "이거 좋다!", "이건 정말 돈 주고 사고 싶어!", "내가 쓰고 싶어!"라는 생각을 들때까지 작업해요.
저는 제 스타일보다 대중의 취향에 맞추는 게 좋다고 생각하면서 작업을 해요. 물론 김하나라는 한 사람이 작업을 하는 거니까 제 스타일이란 게 아예 없을 수는 없어요. 하지만 저는 제 캐릭터들이 한가지 스타일로 보이지 않도록 신경 써요. 각각의 독립된 캐릭터들이 그 자체로 스스로 시장 안에서 활동하면 좋겠다 싶은 바람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캐릭터를 구상할 땐 기존의 작업들로부터 분리하고 다른 감성을 부여하려고 하고, 타겟층도 다르게 설정하려고 해요.
그럼에도 한 가지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면, 제 작업이 누군가를 불편하게 할 여지가 있지는 않은지 수시로 체크해요. 작업을 하다 보면 작가가 가진 통념들이 그대로 반영되기 쉬운데 때로는 제 의도와 다르게 해석될 때도 있어요. 메리비트윈 캐릭터 중에 베이지색 시골 고양이가 화장하면 하얀색 도도한 도시 고양이가 되는 컨셉의 캐릭터가 있었어요. 화장 전후 달라지는 모습을 캐릭터화하고 싶었는데 해외 유저 피드백 중에 이 캐릭터가 인종차별적이라고 하더라고요. 단일 민족의 모두가 비슷한 피부색을 가진 한국에서 나고 자란 저는 피부색이 민감한 소재일 수 있다는 데 무지했던 거예요.
10년 동안 제 작업이 많은 사람에게 보일수록 다양한 사용자 목소리를 들어오면서 제 의도와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것을 배웠어요. 커플 이모티콘의 경우 너무 무섭게 화내는 표현은 애인에게 쓸 수 없다거나 타격감이 좋은 표현의 경우 너무 폭력적이라는 피드백이 오기도 해요. 강렬하거나 과격한 감정 표현이 누군가에게는 재밌을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불편함으로 받아들여 지기도 하죠. 저는 제 작업이 다정하고 편안했으면 해요. 특히 이모티콘은 불특정 다수의 대중들을 만나기 때문에 작업하는 제가 그럴 의도가 아니더라도 맥락이나 각자의 경험에 따라 어떤 표현들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어요.
(서변) 누구에게나 불편하지 않은 감정이란 건 존재하기 어렵지 않을까요?
(하나) 100%의 무균실을 만들겠다는 게 아니라 많은 이모티콘 작가 중에서도 누군가는 그런 노력을 하는 사람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은 거예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만큼 작가가 가져갈 책임이라 생각해요. 그게 제가 지향하는 지점이기도 하고요.
“크게, 그리고 멀리 가는 것이 중요하고,
그렇게 하려면 서로 양보하는 부분도 필요하죠”
서유경 변호사
(서변) 회사에서 경험도 길었던 만큼, 캐릭터 비즈니스에 대한 관점도 복합적일 것 같아요. 창작자로서 경험만 가지고 있으면 회사를 이해하기 어렵고, 회사에 다닌 경험만 있으면 창작자를 이해하기 어려울 테니까요.
(하나) 회사에서 캐릭터 비즈니스를 총괄하는 매니저로서 일했던 건 정말 좋은 경험이었어요. 캐릭터를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공감해주고 사랑을 해주어야 비즈니스를 할 수 있거든요. 캐릭터 이모티콘을 내면서 인형을 만들기 위해 펀딩(funding)을 한 적이 있어요. 놀랍게도 기대치를 훌쩍 넘어서 약 1억 원 정도의 금액이 순식간에 모이더라고요. 그만큼 캐릭터를 사랑해주는 팬들이 있었다는 거고, 캐릭터가 이모티콘에서 머무르지 않고 더 나아가 인형 등 다른 상품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거예요. 회사를 다니면서 캐릭터를 기획해서 제작하고, 상품화하고, 팝업스토어도 해보고, 다른 브랜드 회사와 콜라보도 해보고, 매출도 관리해보고… 이 모든 경험은 비단 개인이 잘나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개인으로서 하기에는 부담스럽고 리스크도 커요. 캐릭터가 성장하려면 원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고, 회사와 함께 일하는 게 필요해요. 꾸준하게 피드백도 구하면서요.
(호조) 단순히 개인이 할 수 있는 일과 조직적으로 함께 할 수 있는 일은 규모적 측면에서도 그렇고 영향력적 측면에서도 분명히 다릅니다. 선택의 문제이겠지만, 저는 개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되, 좋은 회사와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을 늘 했어요. 실제로 해왔던 일도 그렇고, 하고 있는 일의 상당수를 회사와 함께 하고 있어요. 궁극적으로 좋은 결과를 내는 게 중요하지. "사실은 내가 무조건 다 했다" 이렇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협업을 해서 내가 가진 장점을 부각하고 회사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은 도움을 받고요. 크게, 그리고 멀리 가는 것이 중요하고, 그렇게 하려면 서로 양보하는 부분도 필요하죠.
“내 스타일이 통하는 시장에서 제일 잘하는 걸 목표로 삼아서 꾸준하게 작업하는 거예요”
인터뷰를 지켜보던 호조 작가의 고양이들
(서변) 시장에서 선택을 받는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나요? 그리고 시장에서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하나) 단순하지만 카카오톡 이모티콘 샵을 잘 관찰해요. 매일 새로운 플레이어가 나타나고, 새로운 이모티콘이 출시되고, 순위가 실시간으로 변경되죠. 잘 관찰하면 그 나름의 흐름이 있고, 그 흐름을 읽으려고 해요. 소비군도 취향에 따라서 나뉘어요. 엽기나 코믹을 좋아하는 소비군도 있지만 정말 예쁜 걸 좋아하는 소비군도 있어요. 완성되지 않고 아예 덜 그려지고 거친 스케치를 좋아하는 소비군도 있죠. 수요자들이 이모티콘을 쓰는 건 카카오톡으로 대화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싶은 거예요. 무조건 잘 그려진 그림이 그 감정을 잘 표현하는 게 아니에요.
이때 중요한 건, 제가 과연 어떤 소비군의 감정과 취향에 맞출 수 있는지 정하는 거예요. 저는 호조 작가님 스타일을 따라 할 수가 없어요. 호조 작가님을 좋아하는 소비군들이 바라는 게 있을텐데, 제가 그 소비군들을 타깃(target)으로 삼으면 잘할 수가 없어요. 그냥 흉내내기, 따라 하는 것밖에 안 되고, 그 소비군의 마켓에서는 선두를 잡을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내 감정과 취향으로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소비군을 정하고, 그 안에서 내가 어떤 캐릭터를 내놓았을 때 잘 통하는지 파악하죠. 내 스타일이 통하는 시장에서 제일 잘하는 걸 목표로 삼아서 꾸준하게 작업하는 거예요.
(호조) 기업에서 캐릭터 작가를 찾아오는 이유는 뭘까요? 만약 캐릭터가 없어도 잘되는 사업이라면 굳이 캐릭터 작가를 찾아올까요? 그렇지 않아요. 기업이 대중적 비즈니스를 해서 매출을 내고 싶은데 대중들의 감성에서 멀어져 있다 싶을 때 캐릭터의 힘을 빌리고 싶어 해요. 즉, 기업이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숙제가 있고, 그 숙제를 풀기 위해 캐릭터를 선택했고, 그 캐릭터를 제가 만들어주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천재도 아니고 그 사업의 내용을 다 아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 기업이 대중들과 얼마만큼 거리가 있는지 현재 상황을 정확하게 진단해서 솔루션을 제공하듯이 캐릭터를 만들 수 있겠어요? 대중적 공감대를 잡아서 기업의 사업을 활성화시키고 매출로 이어 내야 하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어요. 그 와중에 나만의 스타일도 지켜야 해요. 정답이 없는 게임을 하면서,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최선의 답을 찾아가야 하는 거죠. 물론 일이 잘 풀리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데,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지옥이 따로 없어요. 실패했을 때의 책임감을 늘 생각하고, 리스크를 항상 안고 가는 거예요.
(서변) 시장에서 성공해본 경험이 있지만, 늘 성공이 보장된 건 아니에요. 그만큼 새로운 창작에 대한 부담과 불안함도 있을 것 같은데요.
(호조) 누가 봐도 잘 그렸다기보다는 느낌이 있어야 해요. 느낌에 대한 판단, 이걸 말로 표현하려면 참 애매해요. 이게 바로 느낌이라고 딱 정의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작업이 힘든 거예요. 상황에 따라서 퀄리티가 너무 높지 않게, 오히려 퀄리티를 떨어뜨려야 통하는 경우도 있어요. 무조건 좋은 걸 다 넣고 더하기만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빼야 할 때도 있고요. 이걸 빼야 하는지, 더 뺐을 때 느낌이 살아나는지 계속 시도해봐요. 그래서 저는 지금도 작업할 때는 시험을 보는 것 같아요. 매번 작업을 할 때마다 이 느낌이 맞을까 해서 떨리기도 하죠. 고민을 거듭해서 시안을 만들고 이메일로 발송할 때, 담당자에게는 "시안이니까 편하게 봐주세요~"라고 말은 적지만요(웃음). 세상은 계속 변하고, 콘텐츠를 보는 세대도 변해요. 옛날에 통한 게 지금도 통한다고 볼 수 없으니, 자신할 수 없죠.
(하나) 저는 플랫폼과 계약으로 만족스러운 수익을 얻고, 캐릭터 비즈니스 역시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게 감사해요. 하지만, 이제 무엇을 원동력으로 삼아서 성장해야 하는지 그게 고민이에요. 작업은 꾸준하게 하는데, 옛날만큼 속도가 나지 않을 때가 있어요. 옛날의 저는 돈을 잘 벌지는 못했지만 작업 속도도 정말 빨랐고, 날이 잘 제련된 칼날과도 같이 예리했어요. 지금은 원하는 수익을 얻고 있지만, 이에 안주해서 칼날에 녹이라도 슬면 어떻게 하나 싶은 고민이 들어요. 세상은 바뀌었는데, 나의 예리함이 더 이상 힘을 못쓰면 어쩌나 싶죠. 그래서 그 다음 나의 성장을 위해서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걸 고민해요.
호조의 캐릭터는 나의 청소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김하나의 캐릭터는 내가 대학생이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각각 삶의 이야기의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프리즘을 통과한 빛줄기들이 다양한 색깔로 분해되는 것처럼, 나의 울고 웃었던 대화 속에서 굳이 말로 할 필요가 없었던, 또는 말로 하기 어려웠던 감정을 표현할 때, 나는 그들의 캐릭터를 대리인으로 삼았다.
캐릭터가 힘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플랫폼에서 비즈니스적으로 이용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작가의 창작력과 수요자의 욕구는 시장에서 만나서 상승효과를 발생시켰고, 기업은 산업적 비즈니스로 발전시켰다. 수요자가 운전자고, 작가가 자동차라면, 기업은 자동차에 연료를 주입해주고 도로를 마련해주었다. 이렇게 삼위일체가 마련돼야 캐릭터는 독자적인 생명력을 가지고 콘텐츠를 생성하며 플랫폼에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다.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를 위해 작가는 기업과 법률적 관계, 즉 '계약'을 맺어야 한다. 호조와 김하나는 그러한 계약을 수 십 번이나 경험해왔다. 두 작가는 기업에서 오랜 경력을 쌓았기에, 단순히 창작자 입장뿐만 아니라 창작자와 기업의 관계에 관해 복합적이고 종합적으로 고려할 수 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는 만큼, 상대방도 원하는 게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 누가 얼마를 더 가져가고 덜 가져가는 승패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윈-윈(win-win)하는 계약을 원한다.
이어지는 인터뷰 2부에서는 캐릭터 비즈니스를 위한 계약과 협상에 관해 서변이 법률가의 관점에서 호조, 김하나와 보다 실질적인 이야기를 나눠본다.
'내일, 인터뷰' No. 2_ 노나메 김하나, 호조 권순호(2부) "정당한 협상 합당한 보상, 캐릭터 비즈니스 윈윈 전략"
글_ 서유경 변호사(법률사무소 아티스 변호사 ·변리사)
사진_ 이준범(스튜디오 관조)
이미지 제공_ 호조 작가, 김하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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