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25
J 작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일러스트와 함께 전하는 이야기그림 작가다. 작업을 한지는 대략 4년정도 됐다. 활동은 주로 인스타그램을 통해 한다. 인스타그램 DM을 통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걸 그림과 이야기로 새롭게 풀어내고, 인스타그램을 통해 작품을 선보인다. 하지만 작품을 널리 알리기위한 새로운 플랫폼에 늘 목마르다.
유명 매거진에 연재를 하기도 했지만 현재는 잠시 중단된 상태다. J 작가는 작품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혼자서는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C 작가는 일상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려 인스타그램을 통해 선보이는 인스타툰 작가다. 2020년부터 인스타그램을 통해 자신이 겪는 일상의 다양한 일들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대중에게 그림을 보여주고 있다. 광고툰을 통해 수익을 내기도 하고 캐릭터를 그리면서 굿즈를 판매하거나 이모티콘을 발표하기도 한다. 자신이 드로잉을 하면서 그림에 대해 낭독하는 유튜브도 운영한다. 하지만 늘 작품 발표의 기회는 적다. 개인적으로 관심있는 글쓰기에 대한 발표의 장은 더 많지 않다.
“작품을 알릴 수 있는 창구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뿐 아니라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비전공지인 탓에 작가들과 소통하고 싶은 욕구가 강한데 그럴 만한 플랫폼이 많지 않다”고 말한다. C 작가가 원하는 것은 작품을 알릴 수 있는 창구뿐 아니라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함께 감상하고 이야기 나누며 소통할 수 있는 장이다.
K 작가는 독일에서 미디어 아트를 전공했다. 미디어 아트를 비롯해 다양한 영상 작업을 하고 단편영화를 제작하기도 한다. 외국에서 열리는 단편영화제나 국제영화제에서도 여러 번 수상했다. 하지만 한국에선 작품을 알릴 기회가 많지 않았다.
“수상 소식이나 작품을 한국에 알리고 싶어도 지인들 외엔 딱히 알릴 수 없고 유튜브를 통해 알리는데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 K 작가의 설명이다.
이들의 공통된 의견은 작품을 장기적으로 널리 알릴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하다는 것.
그래서 디자인정글은 이러한 작가들의 작품 발표의 기회를 마련하고 소통의 장을 펼치기 위한 창구로 [디자인정글 작가들의 스토리]를 진행하고자 한다. [디자인정글 작가들의 스토리]는 신진작가를 발굴할 뿐 아니라 기존에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더욱 널리 알리고 꾸준한 작품 연재를 통해 작가들에게 작품 발표의 기회를 주고자 기획됐다.
그 첫 번째 이야기로 이야기그림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조은별 작가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조은별 작가 interview
조은별 이야기그림 작가
작가님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야기그림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조은별입니다. ‘이야기그림’은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스토리와 그림으로 결합해서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로 만드는 작업을 말합니다.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일러스트와 짤막한 글이 결합된 형태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저를 포함한 MZ세대의 친구들은 텍스트보다 이미지로 메세지를 받아들이는 세대라고 해요. 그래서 이런 세대에게 좀 더 효과적으로 이야기를 전달하고 공감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서 이야기그림을 기획하고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기억의 기록
‘이야기그림’이라는 장르가 흔한 장르는 아닌데요.
‘이야기그림’이라는 장르는 제가 혼자 생각한 장르인데요. 전 저를 ‘이야기 그림’ 작가가 아니라 ‘이야기그림’ 작가라고 정의해봤습니다. 그림으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만들어본 건데요. 여기서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 있지만 우리가 관심을 갖지 않았던 이야기, 제가 관심을 갖고 더 알고 싶은 이야기를 의미하는 거예요. 특히 저는 ‘기록’이라는 의미에서 이야기그림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이야기가 모여서 사회의 이야기가 되고, 사회의 이야기가 모여서 국가의 이야기가 된다고 생각해서 개인의 사소하면서도 작은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이야기를 기록한다는 점에서는 아카이빙과 같은 것이 아닌가 말씀하신 분들이 있는데, 아카이빙은 있는 그대로 가감없이 기록한다는데 의의가 있다면 제가 하려는 이야기그림은 저의 시선으로 본 울림이 있는 이야기를 담아내는 작업이라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언제, 어떻게 작업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저는 미국에서 미술사를 전공했어요. 학교에서 미술사 공부를 하면서 항상 생각해왔던 것이 있었는데요. 오래 전, 과거에 살았던 예술가들의 그림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 때 당시의 역사와 사회성을 알려주는 것을 보면서 ‘개개인의 이야기가 사회와 국가, 더 나아가서 세계의 역사를 알려주는 창구가 될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학교를 마친 뒤에 한국으로 들어와서 어떻게 하면 개인의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기록할 수 있을까 생각했죠.
개인의 이야기를 모아서 한 마을의 이야기를 만들고, 마을의 이야기들을 모아서 한 나라의 이야기를 구축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어요. 개인의 이야기는 한 사람의 일상을 기록하는 일이 대부분입니다. 특별하지 않은 소소한 일상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한 방법으로 그림을 시작했는데요, 어떤 그림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이다 보니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담고 싶었고, 그런 그림체를 만들기 위해 지금도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기억의 기록
작업의 소재는 어떻게 찾으시나요?
처음에는 저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집했어요. 이러한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인스타그램에 온라인 전시를 기획했습니다. 그랬더니 인스타그램으로 DM을 보내온 분들이 계셨어요. 또, 개인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하시는 분들이 여러가지 방법으로 사연을 보내주시기도 했죠. 이렇게 해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게 됐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로컬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돼서 다양한 지역을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로컬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일에 관심이 생겨서 지금은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이야기를 수집하는 작업도 하고 있어요.
기억의 기록
어떤 활동들을 해오셨나요?
선구마을 다이어리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집해서 인스타그램으로 온라인 전시를 계속 해오다가 목포에서 진행됐던 로컬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면서 오프라인 전시를 처음으로 진행하게 됐어요. 목포의 선구거리에서 오랫동안 상점을 운영해온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이야기그림으로 만들고 ‘선구마을 다이어리’라는 이름으로 전시회를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그 해 가을과 겨울, ‘북킹 페스티벌’과 ‘나는중구에삽니다’라는 제목으로 중구 사람들의 일상과 삶을 담은 이야기그림 전시회를 진행하기도 했죠.
2020년에는 ‘기억의 기록’이라는 코로나시대를 기억하는 예술인들과 작업을 함께 하고 서울시민청에서 전시를 하기도 했는데요, 저는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열 두 분의 어른들을 인터뷰하고 이야기그림을 그려 전시를 했습니다. 서울과 목포의 어른들의 이야기였는데, 전시회에 오신 분들이 열 두 어른들의 이야기를 통해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전해왔습니다. 이렇게 모인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어서 <별똥별이 내게 온다면>이라는 이름으로 책을 내기도 했어요.
목포 고양이 캐릭터 개발
현재는 지역의 이야기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어요. 지난해 시작한 목포지역의 이야기그림 작업을 계속하는 중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의 이야기를 다양하게 콘텐츠화하는 작업을 병행하는 중입니다. 그중 하나가 목포에서 만난 고양이들에 관한 OSMU 작업으로 ‘항구도시의 낭만고양이’라는 콘텐츠를 기획해서 엽서책을 비롯한 다양한 굿즈를 제작하고 유통하는 작업까지 도전하는 중입니다.
지금은 목포지역의 로컬 서점과 상점에서 판매를 시작해서 반응을 보고 있어요. 지역에 관심을 갖다 보니 지역 콘텐츠가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역의 대표적인 관광지를 제가 직접 그림으로 그리고 굿즈 제작으로 연결하는 작업을 시도하는 중이에요.
<엄마의 레시피를 훔쳤다>
또한 엄마와 제가 같이 동거하면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소설과 레시피가 포함된 퓨전북으로 담은 <엄마의 레시피를 훔쳤다> 작업도 진행하고 있는데요, 지금 현재 펀딩이 진행중이에요.
작업을 하시면서 가장 힘드셨던 때가 있다면?
우리 이웃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해야 하니 이야기를 들려줄 분들을 만나는 일이 제일 중요하고 또한 첫 시작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처음에 선구거리 어른들을 만날 때는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했어요. ‘뭐 하러 이런 귀찮은 일을 하려고 하느냐’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기억의 기록 프로젝트를 할 때는 이상한 아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어요. 제가 친화력이 좋은 성격이 아니라 처음 대면할 때 가장 힘들었죠.
하지만 어르신들과 인터뷰를 진행하다 보면 금방 마음을 열어 주시고 잘 대해주세요. 어르신들의 이야기그림 그리는 것이 좋은 건, 살아오신 이야기가 풍부해서 그릴 내용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금방 마음을 열고 친해질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3년 정도 진행하다 보니 이제는 어르신들께 먼저 농담을 건네기도 해요. 저도 많이 달라지고 있는 것 같아서 즐겁습니다.
특히 목포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사투리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어요. 제가 지역에 살아본 적이 없고 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라 말씀하시는 내용을 이해하기가 힘들었어요. 처음에는 내용을 받아서 쓰다가 나중에는 양해를 구하고 녹음을 했어요. 그리고 녹음을 수십 번씩 반복해서 들으면서 무슨 말인지 문맥을 통해 이해를 하기도 했고, 정말 모르겠는 말에 대해선 지역 토박이 어른께 도움을 구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이젠 서울에서 지나가다가 목포 사투리가 들리면 반가운 마음도 듭니다. 제 고향은 아니지만 지역과 점점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어요.
가장 보람 됐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선구마을 다이어리’ 전시회를 할 때 이야기그림의 주인공인 어르신이 오셨는데, 본인 그림을 보고 나서 눈물을 글썽이며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나는 지금껏 보잘것없는 일만 했고, 그래서 보잘것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이 그림을 보니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고맙다고 몇 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선구거리에서 그물 판매만 50년 가까이하신 분이었는데, 시간이 날 때마다 거리에 앉아서 그물을 꿰매는 모습이 무척 감동적이었어요. 춥거나 더워도 늘 같은 자리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계시는 분인데, 저는 그분의 성실함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선구거리의 어르신들이 수십 년째 한자리에서 장사를 하고 계셔서 목포가 항구도시로 남아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그분들이 모두 주인공이 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선구마을 다이어리’를 하게 된 거예요. 그리고 정말 그날은 그분들이 주인공이 됐습니다. 전시회를 통해 평범한 분들도 주인공이 되고, 선구거리 어른들 개개인의 이야기들이 모이니 항구도시를 항구도시 답게 하는 사회의 이야기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됐습니다. 그날의 그물가게 사장님의 이야기가 저를 이야기그림 작가로 만든 것 같아요. 생각도 하지 않고 지나친 사소한 이야기가 특별해질 수 있다는 걸 모두에게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에디터_ 최유진(yjchoi@jungle.co.kr)
사진제공_ 조은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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