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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인터뷰

[디자인정글 라키비움] ‘중고전문가’라 말하는 ‘문화연구가’, 현태준 작가

2024-10-12

융복합적 수집기관의 한 모델인 ‘라키비움(Larchiveum)’은 도서관(Library)’, ‘기록관(Archive)’, ‘박물관(Museum)’을 합친 말로, 도서관이자 기록관, 박물관의 성격을 모두 갖는 복합문화공간이다. 디자인정글은 기록, 수집, 전시의 기능을 두루 갖춘 디자인정글만의 ‘라키비움’을 선보이고자 한다. 

 

[디자인정글 라키비움]은 수집, 기록, 전시의 기능을 갖추고, ‘수집’이라는 행위에 집중, ‘기록’을 통해 그 내용을 ‘전시’하고자 한다. 수집은 한 사람의 취향에서 비롯되는 개인적인 활동이지만 오랜 시간 동안 이어지는 수집활동은 역사와 문화를 아우르는 거대한 아카이브가 되기 때문이다. 사소한 물건에서 시작될 수 있지만 결국 귀하고 특별한 자료가 되는 수집은 시간이 더해져 결국은 특정한 장르와 연관된 학술적 연구 자료가 될 수 있다. 

 

시간과 추억을 담은 수집품, 누군가의 공과 열정이 담긴 ‘수집’을 통해 디자인정글은 역사적, 문화적으로 가치가 있는 이야기들에 주목하고자 한다. [디자인정글 라키비움]은 이러한 수집, 수집품, 수집가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 첫번째 주인공은 한국을 대표하는 장난감 수집가 현태준 작가다.  

 

현태준 작가

 

 

책 쓰고 그림 그리고 장난감 수집하는 현태준 작가


현태준 작가는 책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장난감을 수집한다. 홍대 근처에 있는 뿔랄라백화점은 그가 운영하는 ‘장난감 가게’다. ‘장난감 가게’라고는 하지만 단순한 ‘장난감’을 판매하는 곳이 아니다. 

 

뿔랄라백화점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다. 최근엔 다양한 굿즈, 특정 품목의 상품들을 모아 판매하는 가게들이 꽤 생겨났지만 현태준 작가는 누구도 이런 상상을 하지 못했을 때부터 장난감을 모았고, 15년전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이런 장소를 오픈했다. 뿔랄라백화점은 원래 박물관으로 운영이 되다 5, 6년 전쯤 ‘상점’이 되었다. 그는 “‘박물관’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부담감 때문이었을지, 1천원이라는 입장료 때문이었을지, 사람들의 발걸음이 다소 뜸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업무를 보던 친구가 있었는데 상점으로 바뀌게 되면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하더군요. 박물관으로의 성격이 좋긴 했지만 여러 가지 사안들을 고려해 상점으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일반 상점이 되고 무료관람이 되고 난 후부터는 많은 분들이 이곳에 오시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무척 많은 분들이 이곳을 찾고 계시죠.” 뿔랄라백화점은 수집가들의 성지이자 홍대의 관광코스,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가 됐다. 현재 그는 직접 뿔랄라백화점의 일을 보며 금, 토, 일요일에만 백화점의 문을 열고 있다. 

 

 

 

뿔랄라백화점 입구

 

 

없는 거 빼고 다 있는 뿔랄라백화점


그가 얼마나 대단한 수집가인지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뿔랄라백화점은 정말 온갖 물건들로 가득차있다. 손톱만한 장난감부터 대형 장난감, 각종 DVD, 빈티지 LP, 책, 신발까지 없는 것 빼곤 다 있다. 너무 많아서 그 양이 가늠이 되지 않는 정도의 규모지만 이는 그의 수집인생 40년 그 일부에 불과하다. 40년 동안의 수집품들을 그는 창고를 마련하여 모아두었다. 집에는 수집품이 하나도 없다고. “아내가 미니멀리즘을 추구해서요(웃음). 개인공간에 가지고 있는 수집품의 양은 이 매장의 약 2, 3배되는 공간을 채울 정도가 돼요.”

 

선천적으로 수집을 좋아했던 그는 중학교 시절부터 책을 모았다고 한다. 그 책을 지금도 그는 가지고 있다. “어릴 때부터 무언가 주워다 모으는 걸 많이 했어요. 어릴 때부터 방이 꽉 차 있었죠.” 그가 장난감을 모으기 시작했던 것은 90년대 후반이었다. “전국을 다니며 옛날 장난감을 모으기 시작했죠.”

 

그가 장난감을 모으게 된 데에는 98년경 갔던 캐나다 여행이 큰 계기가 됐다고 한다. “IMF로 사무실 문을 닫고 일이 없어 아내와 함께 여행을 갔어요. 빈티지샵이 있었는데 당시 우리나라에는 없던 그곳에서 어릴 때 가지고 놀았던 것들을 다시 보게 되면서 한국으로 돌아가면 이런 걸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일종의 외부적 자극이었던 것이죠.” 그렇게 그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장난감 수집을 시작했다. “그걸로 책도 쓰고 전시회도 했어요. 쌈지와 함께 ‘20세기 소년소녀관’이라는 장난감박물관을 오픈하고 약 2년 정도 후 이곳의 문을 열게 됐습니다.” 

 

 

 

수많은 장난감으로 가득찬 뿔랄라백화점

 

 

곳곳에 볼 것이 가득


뿔랄라백화점엔 그의 수집품 중 판매가 가능한 것들 ‘일부’가 전시되어 있다. 이곳엔 그의 취향을 넘어 다양한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물건들로 가득 차 있다. “오랫동안 모으다 보니 물건 보는 눈이 생겼어요. 제가 보기에 예쁜 것들만 갖다 놓고 있어요. 예쁘지 않은 건 취급하지 않아요. 제 취향과 별개로 손님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이 한 20% 정도 되는 것 같아요. 그중 남성취향이 약 40%, 인형이나 소품 등이 20%, 나머지가 책과 잡동사니들로 이루어져 있죠.”

 

뿔랄라백화점에선 그가 모은 수많은 물건들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곳곳에 붙어있는 안내문구들을 살펴보는 재미도 크다. ‘상대가 사준다고 할 때 거절하는 것은 상대의 마음을 거절하는 것~ (프랑스 철학자, 앙드레 러블리미숑)’, ‘살까.. 말까…. 살까… 말까… 에잇! 사야지!!’, ‘사주면 멋쟁이 말리면 니는 거시기’와 같은 문구들이다. ‘보신 후, 꼭 제자리에….(아저씨 힘듬 ㅠㅠ)’, ‘갑자기! 파트너가 뒤에서 껴안는 경우가 있습니다(같이 보는 척..) 흐흐… 아이들도 있으니 삼가해주세요’와 같은 그가 겪는 고충을 재치 있게 표현한 문구들도 있다. 텍스트와 그림 모두 그가 직접 그리고 쓴다. 

 

뿔랄라백화점을 차리기 전 90년대에 그는 디자인사무실을 운영했었다. IMF 이후 디자인사업을 접고 개인사업을 시작하며 만화를 그리고 책을 썼다. 그가 만화가, 일러스트레이터로 알려진 것은 이 시기부터였다. 3년에 걸쳐 쓴 <뿔랄라대행진>은 그의 대표적인 저서다. 

 

 

 

백화점 곳곳에 붙어있는 재미있는 안내문. 현태준 작가가 직접 쓰고 그렸다. 

 

 

장난감 붐 이뤘던 7~80년대 


뿔랄라백화점엔 그야말로 다양한 손님들이 온다. 지나가다 궁금해서 들어오는 관람객부터 ‘찐’ 수집 마니아들까지, 연령층도 초등학생부터 50대까지 다양하다. “어떻게 알고 오는지 초등학생 손님도 많아요. 초등학생들이라도 옛날 물건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죠. 몇 십년 된 것들에 관심을 갖는 마니아 수준의 아이들도 있어요. 이 아이들은 정체가 뭐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모든 물건이 정찰제인데 흥정을 하는 초등학생들도 있죠. 장난감 문화를 누리지 못했던 60대는 거의 없고요.”

 

그는 우리나라의 장난감 붐 시기를 7, 80년대로 보았다. “60년대생부터가 이런 장난감 문화를 접했는데요, 저 때는 정말 장난감이 많이 나오던 시기였어요. 붐이었죠. 장사도 잘됐고요. 문방구에 뭐가 참 많았습니다. 문방구 안이 딱지, 구슬, 프라모델 같은 것들로 꽉 차 있었죠. 학용품도 장난감 같은 것들이 많았고요. 만화 같은 게 그려져 있는 책받침,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 수 있는 자동차 모양의 지우개 같은 것들이요. 매일매일 새로운 것들이 쏟아져 나오는 때였어요. 70년대부터 80년대 말까지 그렇게 많던 것들이 88올림픽이 끝나면서 줄어들게 됐어요. 일본 제품 카피를 많이 했었는데 저작권법으로 인해 공장들이 물건을 만들어내지 못했던 거였죠. 그때부터 비디오게임이 들어왔고 아이들은 장난감을 갖고 노는 대신 게임을 하기 시작했어요.”

 

뿔랄라백화점에서 판매되고 있는 가장 저렴한 물건은 단 돈 500원. 판매되고 있는 가장 고가의 물건은 오래된 옛날 로봇으로 가격은 80만원 선이다. “제가 좋아하는 건 손님들도 좋아하더라고요. 그래서 더러 판매하기에 아까운 물건도 있지만 미련을 갖지 않고 그냥 팔아요. 물건은 제가 굳이 모으려고 하지 않아도 계속해서 끊임없이 들어오거든요.”

 

 

 

뿔랄라백화점에선 장난감뿐 아니라 책, DVD 등 다양한 물건을 볼 수 있다.

 

 

장난감 수집의 대가 


우리나라에서 ‘수집’하면 ‘현태준’이기 때문에 수집을 하던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연락을 한다. “수집을 하시다가 마음이 바뀌어 수집을 중단하시는 분들에게 연락이 와요. 정리해야겠다 싶을 때 저에게 가져오시죠. 그럼 물건을 고르지 않고 모조리 다 삽니다.”

 

그는 수집에 관한 특별한 에피소드도 많았다고 했다. “한번은 꿈에서 어떤 물건을 구하는 꿈을 꿨는데 다음날 그걸 구한 적이 있어요. 최근엔 갑자기 너무 무서운 거예요. 옛날에 인형 같은 데에 귀신이 들어간다는 그런 말이 있었잖아요. 불현듯 그런 느낌이 드는 거였죠. 창고에 들어갈 때마다 등골이 오싹해져서 한동안 창고에 못 들어간 적도 있어요. 밤엔 안 가고 아침이나 낮에 가고요. 그냥 있나 보다 인정하고 극복을 했죠. 그런 적도 있지만 좋은 기억이 더 많아요.”

 

요즘에도 그는 여전히 수집을 하고 있지만 그만큼 정리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분류별로 정리를 하고 사진을 찍고 있어요. 책을 쓰기 위해서예요. 그 일이 요즘 하는 일의 80%정도인것 같아요. 수집은 할 만한 것만 하고 있지만 그래도 그 양이 일년에 한 트럭 넘는 정도인 것 같아요.”

 

 

 

다양한 크기와 가격대의 장난감들을 만날 수 있는 뿔랄라백화점

 

 

목적이 뚜렷한 수집 활동


그는 요즘 미미, 쥬쥬, 바비와 같은 마론인형을 수집한다. 소녀문화에 관한 책 집필을 위해서다. “옛날 인형들은 300만원씩 할 정도로 고가로 가격이 형성되어 있어요. 책을 쓸 때 꼭 필요해서 모으고 있죠.” 자신의 취향이 아니지만 그가 이런 수집을 계속 하는 이유는 책 때문이다. “20년 전부터 계획한 것이 있어요. 책을 쓰는 것인데요, 10권 정도의 책을 시리즈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소녀들의 놀이 문화에 관한 책입니다.” 글만 가득한 책 대신 실물 이미지를 통해 이해를 높이고 재미를 주어 접근성을 높이는 책을 쓰는 것이 그의 계획이다. 이를 위해 그는 수집뿐아니라 잡지 광고를 참고하고 업계 종사자들, 직접 그 물건을 가졌던 사람들을 취재한다. 

 

추억이 가득한 물건들을 수집하고 선보이면서 우리의 기억과 추억을 소환하는 그는 애초부터 수집의 목적이 있었다. 그는 자신을 ‘중고전문가’라고 말하지만 그의 진짜 모습은 수집을 통해 문화연구를 하는 ‘문화연구가’가 아닐까. 

 

앞으로 그의 계획은 책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아티스트들과 함께 협업해 아티스트들의 제품을 모아 판매하는 플랫폼을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다. “나이가 드니 반짝거리는 게 좋더라고요. 그런데 다양하지가 않아요. 남자들 액세서리는 대충 해골 바가지 아니면 중세 분위기를 내는 것이 대부분이죠. 좀 다른 형식의 액세서리를 선보이고 싶어서 직접 준비하고 있어요. 아마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디자인을 만나실 수 있을 거예요.” 40년간 수집으로 쌓아온 경험과 식견을 총동원해 써낼 수집에 관한 새로운 책, 그리고 ‘물건 볼 줄 아는’ 수집전문가가 선보일 새로운 디자인이 무엇일지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인터뷰어_ 정석원 편집주간(jsw@jungle.co.kr)
에디터_ 최유진 편집장(yjchoi@jungl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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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에디터
감성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디자인, 마음을 움직이는 포근한 디자인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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