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28
신윤복의 그림 속을 거닐고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탐험하는 듯한 경험을 선사하는 전시가 DDP에서 열리고 있다. 간송미술관의 ‘IMMERSIVE_K, 구름이 걷히니 달이 비치고 바람 부니 별이 빛난다(구달바별)’라는 제목의 전시다. 전시의 제목 ‘구름이 걷히니 달이 비치고 바람 부니 별이 빛난다’는 간송미술관의 설립자 간송 전형필 선생이 광복 후 남긴 예서대련 “雲開千里月 風動一天星”, 일제 강점기를 지나 광복의 시대를 맞이한 기쁨을 표현한 문장에서 따온 것이다.
'구름이 걷히니 달이 비치고 바람 부니 별이 빛난다' 전시 입구 공간
‘구달바별’은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우리나라의 국보와 보물 등 주요 작품들을 활용한 몰입형 미디어 아트전시로, 간송미술문화재단의 우리 문화유산 지적재산권(IP)을 활용한 이머시브 & 인터랙티브 미디어아트 콘텐츠를 통해 간송컬렉션의 가치와 의미를 오감으로 느끼며 체험할 수 있도록 기획됐다.
전시명 앞에 붙은 ‘IMMERSIVE_K’는 우리 문화유산의 글로벌 확산을 위한 간송미술문화재단의 새로운 미디어 브랜드로, 이번 전시는 ‘IMMERSIVE_K’의 첫 번째 전시다. 지금까지 간송미술관은 DDP 개관전 ‘간송 전형필’(2014)부터 시작해서, ‘바람을 그리다’(2017) 등을 통해 미디어아트를 선보여왔으며, 간송메타버스뮤지엄(KMM)을 통해 <훈민정음 해례본>, <혜원전신첩> NFT를 발행하고 메타버스 게임을 만들기도 했다. 이번 전시는 간송미술관이 시대, 장소, 매체를 넘어 우리 문화유산을 알리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며 쌓아온 경험들의 집약체이기도 하다.
전시는 총 1462 ㎡(411평)의 공간 안에서 펼쳐진다. 8개의 전시실, 2개의 인터미션 공간, 체험존으로 구성된 전시에서는 99점의 간송미술관의 국보, 보물 및 주요 작품이 등장한다. 키네틱아트, 모션그래픽, 라이다 센서 등의 다양한 미디어아트 기술력을 통해 디지털 콘텐츠로 구현된 작품들은 관람객과 상호작용한다. 짚 멍석이 깔린 바닥을 걸으며 정선이 담은 금강산을 바라보고, 겹겹의 베일을 헤치며 신윤복의 미인도 속 미인을 만나며, 그네를 타면서 300년 전 조선의 골목길에 자리한다. 추사의 먹이 퍼지는 공간에서는 묵향도 느낄 수 있다. 이번 전시에는 전문조향사들의 참여해 각 공간에 컨셉에 맞는 향기를 설치했다.
전시 전경
심연에서 빛으로 백성을 이끌어 평등한 우주를 연 <훈민정음 해례본>을 시작으로, 정선을 따라 절경을 걷는 <해악전신첩>과 <관동명승첩>, 찰나의 매혹적인 순간의 아름다운 여인의 자태를 통해 역동적인 에너지를 느끼게 하는 <미인도>, 시공간을 뛰어넘어 인간의 욕망과 아름다운 삶의 관계들을 담은 <혜원전신첩>, 깨달음을 비추는 빛과 시간 <계미명금동삼존불입상>, 30대와 70대 정선이 붓끝으로 그려 낸 금강산의 시간 <금강내산>, 어둠을 뚫고 피어나는 부드럽지만 강인한 생명력 <삼청첩>, 먹빛 파도가 춤추는 <추사 김정희> 등으로 전시는 이어진다. 전시의 뛰어난 완성도는 놀라운 몰입감을 선사한고, 깊은 밀도로 관람객을 압도한다.
DDP 뮤지엄 전시 2관에서 2025년 4월 30일(월요일 휴관)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를 통해 간송미술관 전인건 관장은 하나의 문화로 자리한 K-Pop, K-Food처럼 K-Culture인 우리 문화유산들이 국경과 세대, 시간과 장소를 넘어 널리 알려지기를 바란다.
간송미술관 전인건 관장
새로운 방식으로 간송 전형필 선생의 문화보국 정신을 이어가고 있는 간송미술관 전인건 관장을 만났다.
Q. 간송미술관은 어떻게 탄생했나.
간송미술관의 시작은 일제강점기 때였던 1938년이었다. 간송은 일제강점기 동안 곡해, 왜곡되고 훼손됐던 우리 문화를 언젠가 찾아올 광복이후 복원시켜 문화적인 자긍심을 갖도록,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리고자 했다. 문화 연구를 위한 실천적인 기반을 만든 것이라는 표현이 가장 정확할 것 같다. 바로 ‘문화보국’이다. 문화보국은 간송의 스승이셨던 위창 오세창 선생이 주창했던 것으로, 스승과 제자가 완성해낸 형태라 보면 된다.
간송은 사람을 키우는 것에도 집중했으며, 연구 중심으로 이끌어 나갔다. 그리하여 1965년 한국민족미술연구소가 만들어졌다. 5년 이상 연구에 대한 발표가 학술 전시의 형태로 만들어졌는데 그것이 보화각의 봄, 가을 정기 전시였다. 당시 삼불 김원룡 선생의 제안으로 간송미술관이라는 이름으로 모양을 갖추게 되었고, 일반공개를 시작한 것은 간송이 돌아가신 후 1971년부터였다.
간송 전형필
간송미술관
Q. 대구간송미술관도 개관을 했다.
7~80년대에는 일반 대중들이 간송미술관에 많이 오지 않았다. 관련 분야에 대해 공부하는 학생들, 교수들 정도가 간송미술관을 찾았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변화가 시작됐다. 일반 대중들의 발걸음이 늘어났다. 기폭제가 있었다고 본다. 2008년 방영했던 SBS드라마 <바람의 화원>이었다. 2011년 ‘풍속 인물화전’을 열었다. 우연이었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드라마 속 미인도를 간송미술관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알려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간송미술관을 찾았다. 입장을 위한 줄의 길이가 1킬로미터에 달할 정도였다. 당시는 봄과 가을 2주씩 연 4주만 오픈을 했던 때로, 이후 서울, 경기권이 아닌 타 지역의 많은 분들의 전시 관람 요청이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많은 수요를 소화하고, 영속성을 위해 2013년 간송미술문화재단이 만들어졌다. 문화보국이라는 것은 결국 우리 문화유산들을 알려 문화적 자긍심을 찾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를 위한 목표 중 하나가 지역 거점이었다. 많은 제안들이 들어오기도 했다. 여러가지 과정을 거쳐 10여 년의 준비 끝에 지난 9월 3일 대구간송미술관이 개관하게 됐다.
대구간송미술관
Q. 얼마전 대구간송미술관의 개관전 ‘여세동보’가 끝났다. ‘여세동보’는 어떻게 기획이 됐나.
‘세상과 함께 보배삼아’라는 부제가 있다. 이는 성북동 보화각 상량식 때 위창 오세창 선생께서 각을 해 주신, 정초석에 새겨져 있는 글이기도 하다. ‘천추의 보물들이 여기 모여있으니 세상과 함께 보배삼고 자손 대대로 보존하자’는 것이 보화각이 만들어진 이유이고, 대구간송미술관 즉, 지역 거점이 만들어진 이유다. 가깝게 다가가서 더 많은 분들이 향유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하는 의미 그 자체를 담은 전시였다.
대구간송미술관 개관기념전 여세동보 전시 포스터 이미지
'여세동보'전의 풍경
Q. 전시에 대한 반응이 뜨거웠고, 많은 관람객의 방문으로 대구간송미술관이 ‘2024 한국 관광의 별’에 선정되기도 했는데.
훈민정음 해래본, 신윤복의 미인도와 월하정인, 청자상감운학문매병 등 국보와 보물급 지정문화유산 40건 97점과 간송 전형필의 26건 60점 등 총 66건 157점이 소개됐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84년만에 처음으로 서울 바깥에서 전시가 됐다. 3개월이라는 전시 기간 중 전국 22만 4천여 명의 관람객이 전시를 찾았다. 대구 경북 지역 외의 분들도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그만큼 수요가 컸음을 실감했다.
Q. 이번 전시 ‘구달바별’에 대해 소개한다면.
이번 미디어아트 전시는 간송미술관이 지금까지 시도해온 IP 확장 사업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조향사와의 협업, <미인도>의 플로팅 스크린은 2016년도에 시도를 했고, <훈민정음>에서 볼 수 있는 영상, 음향 믹스 작업은 2014년이 이미 시도했던 것이다. 금강산 폭포가 떨어지는 것 역시 ‘바람을 그리다’전에서 선보였었다. 이번 전시에는 그동안의 전시들의 대한 오마주 장면들이 포함되어 올드팬들이 찾아보시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간송미술관’에 대해 올드한 이미지를 떠올리는 분들이 계시다. 하지만 그 이미지는 점차 변화하고 있다. 문화유산은 보존이 최우선이다. 우리의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미래 세대들의 것이기 때문에 보존이 가장 우선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시간이 갈면 갈수록, 전시가 거듭되면 될수록 손상을 받게 된다. 조명, 습도 등 공간적, 시간적인 제약으로 인해 전시가 어렵다. 하지만 이 미디어, 디지털을 통해 그러한 공간적, 시간적 제약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 동시에 여러 곳에서 전시도 가능하다.
여기에 바로 우리가 지향하는 바가 있다. 우리 문화 유산에 대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것이다. 문화재를 알리는 데에 있어 그보다 강력한 툴은 없다. 문화유산과 개인들간의 관계, 퍼스널 커넥션을 맺어 드리는 것이 우리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지점을 목표 지향점으로 삼았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 문화예술을 알리기 위한 결정판이 바로 지금, 오늘의 이 전시인 셈이다.
지속가능성을 고려했을 때 ‘미래 세대’라는 키워드는 떼려야 뗄 수 업다. 미래의 세대가 좋아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 그들이 좋아하는 미디어로 접근한 것이다. 그들이 좋아하는, 옳다고 생각하는 철학으로 접근을 해야 한다. 나아가 K-헤리티지를 알릴 수 있는 가장 편하고 즐거운 포맷이라 생각한다.
'구달바별' 전시 전경
Q. ‘K-헤리티지’를 통해 우리의 문화유산을 우리 미래 세대뿐 아니라 세계에 알리고자 하는데.
고려청자의 경우 최초로 그 형태를 만든 것은 송나라였지만 전 세계에서 가장 잘 만든 것은 고려였다. 이러한 예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리는 어떤 포맷이 주어지든 그 분야에서 세계 최고를 만들어냈다. 그것은 창의성을 바탕으로 한다. 최초를 뛰어넘어 최고를 만드는 것이 우리 DNA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K-팝, K-드라마, K-무비 등을 통해 그들은 우리가 왜 다른 지를 궁금해한다. 그것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그것이 바로 21세기 문화보국의 형태라 생각한다. 누구나가 우리의 문화 유산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 문화에 대해 이해하는 것, 그 안에서 마땅히 느껴야 할 문화적 자긍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간송이 꿈꾸셨던 부분이자 간송미술관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구달바별' 전시 전경
Q. 전시의 디지털 미디어 작품들의 완성도, 밀도가 무척 높다. 타 디지털미디어 아트 전시와는 확연히 차별화되어 있는데.
키워드가 ‘IMMERSIVE’다. 무조건 크다고 해서 몰입이 되는 것이 아니다. 1차원적인 몰입에 머물 뿐이다. 정말 에워싸는 듯한 느낌의 완성도를 내기 위해 크게 신경 썼다. 3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고, 그러한 고민이 온전히 녹아들어가 있다. 이번 전시를 위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디지털 미디어 전문가 집단들이라 평가받는 팀들과 협업을 했다.
일제강점기 시절의 어려움을 뚫고 다시 되찾은 빛, 달과 별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어두운 곳에서 미디어를 통해 빛나는, 빛으로 새롭게 써내려 간 우리 문화유산의 이야기다. 대부분의 미디어아트가 서양 IP로 이루어지는 반면, 이 전시는 순수하게 우리의 문화유산의 IP로 작업이 됐다. 이러한 전시를 ‘IMMERIVE_K’라는 브랜드로 펼쳐낸 것이다.
Q. 전시 이후의 계획은 무엇인가.
브랜드의 시리즈를 계속해서 펼쳐 나가고자 한다. ‘IMMERSIVE_K’가 바로 그러한 우리 의지의 표명이다. 간송의 콘텐츠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모든 문화유산 콘텐츠를 다 아우르고 싶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국가나 뜻이 있는 분들의 도움이 많이 필요하다.
인터뷰어_ 정석원 편집주간
에디터_ 최유진 편집장
사진제공_ 간송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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