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18
지난 14일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조각페스타 2026’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대형 조형물, 공공 설치, 야외 스케일 작업, 기술 기반 조각까지- 이번 전시장은 ‘조각의 현재’를 한꺼번에 펼쳐 보이려는 야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수많은 전시 중 가장 오래 머물게 된 공간은 가장 작은 조각들로 구성된 전시였다. 바로 특별전 <품 안의 조각>이다.
이 전시는 규모로 압도하지 않는다. 대신, 물리적·심리적 거리로 관람객을 붙잡는다. 멀리서 보는 전시가 아니라, 가까이 다가가야만 읽히는 전시다.
<서울국제조각페스타 2026> 개막식 장면
<손 안의 조각> 특별전 전시 장면
이 전시는 조각뿐 아니라, 관람 방식을 디자인하고 있었다. 모듈형 선반은 자연스럽게 관람자의 속도를 늦춘다. 작품들은 일렬로 나열되지 않는다. 위, 아래, 옆, 대각선으로 흩어진다.
조각이 ‘진열’이 아니라 ‘생활’이 되는 방식
<품 안의 조각>의 첫인상은 독특하다. 화이트 큐브의 벽면이 아니라, 격자형 구조의 모듈 선반들이 공간을 채운다. 작품들은 벽에 걸리지 않고, 각자의 ‘칸’을 가진다.
이 구조는 단순한 진열이 아니다. 조각을 ‘전시품’이 아니라 ‘생활 속 오브제’처럼 보이게 만드는 장치다.
각 작품은 하나의 방을 갖는다. 각 방은 서로 연결되지만 독립적이다. 마치 아파트 단지처럼, 혹은 도시의 작은 방들처럼.
이번 전시의 디스플레이 가구는 모듈형 시스템 가구 브랜드 ‘디엘로(Deello)’의 협찬으로 구성되었다. 이 선택은 매우 결정적이다. 이 가구들은 조각을 받치는 도구가 아니라, 조각의 의미를 해석하는 구조물에 가깝다.
각 작품은 하나의 방을 갖는다. 각 방은 서로 연결되지만 독립적이다. 마치 아파트 단지처럼, 혹은 도시의 작은 방들처럼. 이 전시는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작은 조각은 작은 삶을 닮았다.”
이번 전시의 기획에 참여한 김미교 큐레이터는 전시 방향을 이렇게 설명했다.
“조각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먼저 물리적인 거리부터 줄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품 안의 조각〉은 조각을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존재로 상상해보는 전시입니다.”
이 말은 공간에서 그대로 구현된다. 작품들은 서로 경쟁하지 않는다. 눈에 띄기 위해 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관람객의 시선 높이에서 기다린다.
<손 안의 조각> 특별전을 기획한 대표 큐레이터는 김태곤 갤러리 코사 관장이다. 여기에 아넷 킴(Annette KIM) 디렉터, 김미교 큐레이터가 함께 했다.
‘소품’이 아니라 ‘작은 조각’이라는 선언
우리는 흔히 이런 작품들을 ‘소품’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전시는 그 단어를 거부한다. 여기 있는 것은 장식품이 아니다. 여기 있는 것은 ‘축소된 조각’이 아니라, ‘응축된 조각’이다.
전시된 작품들의 다양한 형상 - 유머러스한 캐릭터, 일상의 사물, 동물, 추상 형태, 팝적 오브제 등- 이 모든 것들이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조각은 반드시 엄숙해야 하는가?”
“조각은 반드시 무거워야 하는가?”
“조각은 반드시 멀리 있어야 하는가?”
<품 안의 조각>은 이 모든 질문에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아니오”라고 답한다.
전시는 ‘보는 방식’을 디자인하는 것
이 전시는 조각뿐 아니라, 관람 방식을 디자인하고 있었다. 모듈형 선반은 자연스럽게 관람자의 속도를 늦춘다. 작품들은 일렬로 나열되지 않는다. 위, 아래, 옆, 대각선으로 흩어진다.
이 구조는 ‘빠르게 훑는 관람’을 방해한다.
대신, 고개를 숙이게 만들고, 눈높이를 바꾸게 만들고, 자연스럽게 가까이 다가가게 만든다. 작품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작품과 마주치게 하는 전시다.
460여 점의 작은 세계들
이번 전시에는 154명의 작가, 460여 점의 작품이 참여했다. 숫자만 보면 압도적이지만, 공간에서는 오히려 친밀하게 느껴진다. 각 작품은 ‘큰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러나 모이면 하나의 풍경이 된다.
이 풍경은 한국 현대 조각의 또 다른 얼굴이다. 거대 담론이 아니라, 개인의 취향, 감정, 기억, 유머, 일상, 상상력이 만든 세계. 바로 그것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번 전시의 디스플레이 가구는 모듈형 시스템 가구 브랜드 ‘디엘로(Deello)’의 협찬으로 구성되었다. 이 선택은 매우 결정적이다. 이 가구들은 조각을 받치는 도구가 아니라, 조각의 의미를 해석하는 구조물에 가깝다.
조각의 미래는 ‘거대함’이 아니라 ‘관계’다
<품 안의 조각>이 이번 서울국제조각페스타에서 가장 인상적인 전시였던 이유는 분명하다.
이 전시는 조각의 미래를 스케일이 아니라 관계에서 찾기 때문이다.
작품과 관람자의 관계-
예술과 일상의 관계-
소유와 감상의 관계-
공공과 개인의 관계-
조각은 이제 광장에만 있을 필요가 없다. 조각은 얼마든지 집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아파트 거실에서, 안방에서, 서재에서도 우리는 조각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전시에는 154명의 작가, 460여 점의 작품이 참여했다. 숫자만 보면 압도적이지만, 공간에서는 오히려 친밀하게 느껴진다.
당신은 어떤 조각과 함께 살고 싶은가?
올해 15번째를 맞은 서울국제조각페스타에는 그동안 많은 특별전이 있었다. 그러나 올해 처음 선보인 〈품 안의 조각〉은 달랐다.
이 전시는 조각에 대해 일부러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조각과 살아가는 방식’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방식은 놀랍도록 설득력이 있었다.
내년에 열릴 조각페스타에서도, 또 한 번의 ‘특별한 전시’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글_ 정석원 편집주간 (jsw0224@gmail.com)
사진제공_ 김미교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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