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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정글 에세이] “우리는 왜 아직도 ‘변기’라는 말을 쓰고 있을까”

2026-03-15

충북 음성에 있는 인터바스 박현순 회장을 만났다.
그가 만든 공간의 별칭이 무척 흥미롭다. 사람들은 그곳을 ‘변기왕국’이라고 부른다. 말 그대로 화장실과 변기를 주제로 꾸며 놓은 작은 테마파크다.

 

40년 동안 기업을 운영하며 오직 화장실 설비 하나에 인생을 걸어온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나니 자연스럽게 화장실 이야기가 길어졌다. 전시된 수많은 변기들을 둘러보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문득 하나의 질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사람들은 그곳을 ‘변기왕국’이라고 부른다. 말 그대로 화장실과 변기를 주제로 꾸며 놓은 테마파크 같은 공간이다.

 

 

 

‘우리는 왜 아직도 변기라는 말을 쓰고 있을까.’

 

생각해 보면 화장실이라는 말은 이미 한 번 변화를 겪었다.
옛날 우리 선조들은 화장실을 ‘뒷간’이라 불렀다. 집 뒤쪽에 있는 간(間)이라는 뜻이다. 조금 점잖게 말하면 ‘변소’였다. 이름만 들어도 냄새가 풍겨오는 것 같은 단어들이다.

 

그러다가 수세식 화장실이 등장하고 생활환경이 달라지면서 어느 순간 ‘화장실’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다. 원래는 화장을 고치는 방이라는 뜻이었지만, 지금은 누구도 그 어원을 떠올리지 않는다. 우리는 그냥 화장실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변기’라는 말은 그대로 남아 있다.

 

변기(便器)라는 단어.
글자를 그대로 풀어 보면 ‘대소변을 담는 그릇’이라는 뜻이다. 말의 느낌만 봐도 어딘가 거칠고 불편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사용하는 가장 일상적인 물건인데, 이름만 들으면 왠지 냄새가 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매일 아침 그 위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물건의 이름은 여전히 ‘변기’다.

 

이 단어는 분명 ‘변소’ 시절의 언어다. 
쪼그려 앉아 용변을 보던 시절의 언어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다른 시대다. 좌식 변기가 보편화되었고, 비데와 온열 기능, 자동 세정 기능까지 갖춘 스마트 위생기기가 등장했다. 기술은 이렇게 달라졌는데 이름은 그대로다.

 

왜일까. 궁금증이 더 생겼다.

 

아마도 너무 오래 사용하다 보니 아무도 의문을 갖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언어는 습관이 되면 쉽게 바뀌지 않는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물건,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는 물건의 이름이 여전히 ‘변기’라면 조금 아쉽다. 조금 더 따뜻하고, 조금 더 생활에 가까운 이름이 있으면 좋겠다. 우리가 언어를 너무 오래 방치해 온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해외여행을 다니면 이상한 습관이 하나 있다.
어느 공간을 가든 화장실을 꼭 들여다본다. 호텔이든 미술관, 박물관이든 공항이든 마찬가지다. 화장실이 어떻게 꾸며져 있는지가 궁금하다.
이번 아프리카 여행에서도 나미브 사막의 ‘부시 토일렛‘을 흥미있게 들여다 보았다.

 

공간의 품격은 화장실에서 드러난다.
그래서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그 나라의 문화 수준을 보려면 화장실을 보라.”

 

실제로 그렇다. 화장실은 그 사회의 위생 수준과 디자인 감각, 그리고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까지 드러내는 공간이다.

 

요즘 한국의 화장실 문화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깨끗하고 안전하며 기술도 뛰어나다. 일본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발전한 화장실 문화를 가진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일이 있다.

 

이제 이름도 바꿔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물건,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는 물건의 이름이 여전히 ‘변기’라면 조금 아쉽다. 조금 더 따뜻하고, 조금 더 생활에 가까운 이름이 있으면 좋겠다. 우리가 언어를 너무 오래 방치해 온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름 하나 바꾼다고 세상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언어는 문화를 담는다. 우리가 어떤 말을 쓰느냐는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보여준다.

 

“문명은 화장실에서 시작한다.”

 

이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인류의 위생과 도시 문명은 화장실의 역사와 함께 발전해 왔다. 그리고 우리의 하루 역시 화장실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이렇게 묻고 싶다.

 

그 하루의 시작을 함께하는 물건의 이름을, 우리는 언제까지 ‘변기’라고 불러야 할까.

 

어쩌면 새로운 이름 하나가 우리의 화장실 문화를 한 단계 더 끌어올릴지도 모른다.

 

‘변기’를 대체할 새로운 이름 공모전을 정부에 건의해 볼까, 잠시 그런 생각도 해 보았다.

 

글, 사진_ 정석원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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